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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기 Apr 06. 2022

친구의 이십 년 단골 돈가스집 방문기

기록하는 2022년│Episode 63│2022.04.05

돈가스를 정말 좋아하는 친구가 있다. 대학교 1학년 때 만난 친구다. 그 친구와의 대학시절 추억을 떠올려보자면 (조금 과장해서) 학교 쪽문 근처 돈가스집에서 돈가스를 먹은 기억뿐이다. 당시 학교 쪽문에는 '돈앤까'와 '하이루'라는 돈가스집이 두 곳 있었다. 친구를 만나면 그 두 곳 중 어디 갈지를 정했을 뿐, 무엇 먹을지를 정한 기억이 없다. 돈가스-생선가스-치킨가스-냉모밀을 번갈아 먹다가 너무 질려서 차라리 학식을 먹자고 하면 친구는 학식에서 돈가스 메뉴를 먹었을 정도다. 


오늘도 친구와 그때 먹은 돈가스 이야기를 했다. 평생 먹을 돈가스를 너 덕분에 대학교 때 몰아서 먹었다는 내 말에 친구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추천해줄 돈가스집이 있다고 한다. 증산역 근처에 20년 단골 돈가스집이 있다는 것이다. 내가 새절역 근처에 사니 한 번 가보라고 했다. 내 기억에 친구 본가는 방화동이고, 지금 살고 있는 곳은 하남인데 어떻게 이곳에 단골집이 있다는 것인지 의아했다. 


내 의문에 친구는 길고 긴 이야기를 시작했다. 요약하자면


1. 친구는 초등학생 때까지 합정동에 살았는데 합정동에 이 돈가스집의 분점이 있었다. 친구의 최애 돈가스 집이라 거의 매일 갔다. 친구가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간 후에도 합정동 분점으로 자주 방문했다. 그런데 친구가 군대에 간 사이, 합정동의 분점이 없어졌다. 너무 슬펐던 친구는 수소문했고, 본점을 운영하던 사장님이 증산역 근처에서 돈가스 집을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설마 하고 와봤는데 맛이 똑같았고, 친구는 정말 행복했다. 그래서 대학교 때부터 이곳으로 돈가스 먹으러 왔다. 분점 다닌 것부터 하면 이십 년이 넘었고, 본점에 다닌 것만 해도 십 년이 넘었다.

2. 친구가 돈가스를 좋아하게 된 계기가 초등학교 때 먹은 이 돈가스 때문이다.

3. 현재 하남에 살고 있는데 이 돈가스 때문에 한 달에 한 번 이상 한 시간 넘게 차를 타고 와서 먹는다.


친구가 돈가스를 좋아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정도로 진심인 줄은 몰랐다. 게다가 친구가 돈가스를 이렇게 좋아하게 된 이유가 이곳의 돈가스 때문이라니. 안 가볼 수 없었다. 친구의 이야기를 들은 후부터 내 가슴은 뛰기 시작했다. 언제 한 번 가보라는 친구의 말에 오늘 당장 가볼 거라고 했다. 남편은 재택근무 중이고, 7시부터 남편의 중국어 수업이 있는 날이다. 가능한 시간은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았다. 다음으로 미루기엔 당분간 가능할 날이 없었다. 지도로 검색해보니 회사에서 자전거로 돈가스집까지 10분이 걸린다고 한다. 집에서 돈가스 집 역시 자전거로 10분이 걸린다고 한다. 남편에게 계획을 공유하고 6시 15분에 돈가스집에서 만나기로 한다. 따릉이 이용권을 미리 구매하고 칼퇴를 준비한다.


여섯 시 땡. 바로 일어나 뛴다. 다행히도 회사 바로 앞에서 따릉이 대여가 가능하다. 자전거를 타고 달린다. 6시 15분. 돈가스 집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너무 힘들지만 그건 괜찮다. 도착해서 이제 돈가스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가장 기본 돈가스와 기본+생선+함박스테이크가 하나씩 나오는 정식을 주문했다. 수프가 나오고 곧이어 돈가스가 나온다.

돈가스는 맛있었다. 충분히 맛있는 맛이었다. 돈가스는 바삭했고, 사과를 넣어 사장님이 직접 만드셨다는 소스는 새콤달콤했다. 20년 동안 이곳을 다닌 친구를 떠올리니 더욱 맛있게 느껴졌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먹어본 돈가스 중에 최고로 맛있던 것은 아니었다. 너무 기대를 했던 탓일까,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돈가스의 종류가 아니었기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아마도 자전거를 타고 너무 힘들게 달려가서 식욕을 잃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땠냐고 묻는 친구에겐 최고로 맛있게 먹었다고 대답했다. 거짓말을 했다기보다는 조금 과장해서 대답했다. 친구의 단골집을 가볍게 여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곳을 나에게 알려주면서 행복해했을 친구의 마음을 깨고 싶지 않았다. 맛있었다는 나의 말에 친구는 또 신이 나서 이 돈가스집 소스의 특징에 대해 한참 설명해줬다. 생각해보니 그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최고의 돈가스를 먹은 것 같다.  


이 돈가스 집이 집 근처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게 부럽다고 말하는 친구다. 20년 된 단골집이 있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인 것 같다. 이곳이 앞으로도 계속 친구의 추억을 지켜주고, 친구 역시 이곳에서 계속 추억을 쌓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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