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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기 Apr 08. 2022

그러면 안 되는데 남편에게 짜증을 냈다

기록하는 2022년│Episode 64│2022.04.06

오늘은 남편의 축구 동아리 모임이 있는 날이다. 집 근처 구장에서 7시 시작이라 시간이 얼마 없다. 남편의 계획은 집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차를 타고 구장에 가는 것이다. 빠르게 업무를 마무리하고 나왔다. 서둘러 나오다 보니 업무를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한 기분이다. 조금 찝찝하다. 곧 도착할 버스를 놓치면 시간에 쫓기게 될 것 같아 뛰기 시작한다. 겨우 뛰어 버스를 잡아 탔다. 가뿐 숨을 몰아 쉬다가 갑자기 내가 왜 이렇게 서둘러야 하나 싶다. 시간에 쫓기다 보니 마음까지 촉박해진 것이다. 그래도 이왕 가기로 한 것 늦지 않게 다녀올 수 있도록 조금 더 서두른다. 배가 고파서 남편에게 저녁은 어떻게 할 것인지 묻는다. 


"9시에 끝나면 집에 와서 밥 먹을 거야? 나 먼저 먹을까? 기다릴까?"

"오늘 10시까진데? 자기 배고프면 먼저 먹고, 아니면 간단히 먹고 이따가 야식 먹어도 되고."

"왜?"

"응? 구장을 3시간 예약했어. 지난주에 자기한테 물어봤는데 괜찮다고 해서 예약했는데?"


아. 남편이 이야기했던 것이 얼핏 스쳐간다. 분명 나는 그때 기분이 좋았을 테고, 남편의 건강을 위해 운동을 권장하고 있었을 거다. 3시간이나 하라고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동안의 여러 사례를 돌아봤을 때 분명 내가 그러라고 했을 테다. 남편의 말에 짜증과 민망함이 동시에 올라온다.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축구를 왜 3시간이냐 하냐는 말이야."


전혀 묻지 않는 태도로 남편에게 묻는다. 왜 3시간이나 하는지 궁금한 것이 전혀 아니다. 무슨 축구를 3시간이나 하는 건지 따지는 거다. 따질만한 것도 아닌데, 그냥 짜증이 난다고 따져버리는 것이다. 기분이 상했다. 상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데 그냥 상했다. 짜증이 난다. 즐겁게 오가던 대화가 한숨에 끊겼다. 내 눈치를 살피는 남편에게 빨리 집에나 가자고 한다.


집에 와서 문을 열었는데 집에 더럽다. 어제의 우리가, 이틀 전의 우리가 어지러 놓은 것들이다. 가까스로 삼켰다고 생각했던 짜증이 도로 다시 난다. 옷을 갈아입는 남편을 옆에 두고 들으라는 듯이 일부러 큰소리를 내며 집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쿵. 쾅. 쿵. 쾅. 중간중간 깊은 한숨도 곁들인다. 한 번 짜증이 나니 계속 짜증이 난다. 놀 땐 같이 놀았는데, 왜 치우는 것은 나 혼자인가. 나는 이런 집이 견딜 수 없는데, 남편은 아무렇지도 않은 건가. 나만 보이는 건가. 할 일들이. 이렇게 집안일하려고 결혼한 건가. 따위의 생각들도 올라온다. (그렇다고 평소에 나 혼자 집안일을 하는 것도 전혀 아니다. 오히려 남편이 부담하는 부분이 더 많다. 나는 그냥 해야 할 일들의 일부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 스스로 어이가 없었다) 남편은 옷을 갈아입다 말고 나와 내 눈치를 다시 살핀다. 축구 다녀와서 금방 치울 테니 우선 쉬고 있으라는 남편의 말에 그럼 나는 자기가 축구 다녀올 동안 이렇게 돼지우리 같은 곳에 있으란 말이냐고 쏘아붙인다. 남편은 그런 것은 전혀 아니라며 축구를 가지 않았으면 좋겠냐고 묻는다. 그런데 그건 또 아니다. 나 때문에 남편이 하고 싶은 것을 못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또 계획이나 일정을 망가뜨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럼 어쩌란 말인가.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중적인 마음이 쏟아진다. 모르겠다. 난 그냥 왜 인지 모를 것에 짜증이 났고, 그게 남편의 축구 때문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축구 때문이 아닐 테다. 월요일에 한 남편의 회식 때문일 수도 있고, 그냥 내 마음의 문제일 수도 있다.


겨우 짜증을 억누르고 남편에게 물 한 병을 챙겨주며 조심히 잘 다녀오라고 한다. 눈은 마주치지 않는다. 목소리 역시 냉랭하다. 그냥 혹시라도 남편이 축구하러 갔다가 내가 신경 쓰여서 조금이라도 집중하지 못할 것이 걱정되어 아주 최소한의 표현을 한 것이다. 남편은 알겠다고 조심히 다녀오겠다고 한다. 그리고 나는 그대로 침대에 누워버렸다. 


나도 안다. 내가 이렇게 찌질하고 별로라는 것을. 나는 왜 그럴까 정말. 결혼 준비를 하면서 결혼 교육을 받았다. 그때 나 스스로 다짐한 것은 딱 두 개였다. 나를 바꾸자. 그리고 남편은 내게 제일 소중한 사람이니 가장 귀하게 대하자. 그런데 아니다. 편하다는 이유로, 내가 짜증을 내도 받아주고 나를 위로해주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라는 이유로 이렇게 대하는 것이다. 배우자로서도, 그냥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도 참 별로인 모습이다. 


남편에게 짜증을 내버리고 계속 마음이 좋지 않았다. 마음이 좋지 않으면 미안하다고 빠르게 사과하면 되고 용서를 구하면 되는데 이상하게 아직까지 제대로 사과하지 못했다. 평소 미안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나인데. 왜 그럴까. 나는 왜 이럴까. 남편에게 별 이유 없이 짜증 내버린 내 모습이 사실 너무 창피해서 일기에 남기지 않고 넘어갈까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성하는 의미로 쓴다. 조금 더 정신 차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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