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자기 Apr 09. 2022

소고기 하나에 마음이 스르르르르

기록하는 2022년│Episode 65│2022.04.07

국장님이 점심 한 번 먹자고 하셨다. 그게 오늘이다. 시간에 맞춰 후배와 함께 미리 예약해놓으셨다는 회사 앞 고깃집으로 향했다. 룸에 도착하니 국장님은 이미 와 계셨다. 뭐 먹고 싶은 것이 있냐고 물으셔서 메뉴판을 봤는데 가격이 생각보다 더 비쌌다. 살짝 당황해서 못 고르고 있었더니 국장님이 제일 비싼 새우살을 시켰다.

그리고는 말씀이 시작되었다. 지금 힘들겠지만 분명 더 좋은 날이 온다. 그건 장담한다. 내가 꼭 만들 것이다. 지금처럼만 열심히 하면 된다. 그리고 언제든 계속 고민해라. 와 같은 나에 대한 위로와 응원이 이야기가 이어졌다. 본인이 마주했던 역경과 고난, 그리고 그것을 극복한 방법들까지. 너무나 따뜻하고 감사한 말씀이지만 한편으로는 으레 하는 말이겠거니 하고 듣고 있었다. 나 같은 후배가 얼마나 많겠는가. 또 이런 자리가 얼마나 많겠는가. 그리고 국장님의 시대와 내 시대가 다른데 어떻게 쉽게 바뀔 수 있다고 장담하겠는가. 


나는 사람들의 따스한 말에 정말 큰 힘을 얻는다. 말 뿐이라고 해도 그 안에서 나는 용기와 희망을 찾아왔다. 하지만 그런 말들에 지나치게 의지하다가 한 번 된통 당한 경험 이후로 그런 상황이 오면 애써 몰입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국장님의 말씀을 들을 때도 '난 국장님을 좋아하지만, 국장님에게 나는 많은 후배들 중 하나다.'라는 불필요한 생각까지 하면서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대화를 나누던 중 고기가 다 익었다. 바로 한 점 먹는다.

맛있다. 기가 막힌 맛이다. 요 근래 고기를 먹지 않아서 인지 유난히 더 맛있다. 기름기가 좔좔 흐르는 것이 씹지도 않았는데 부드럽게 넘어간다. 오랜만에 느끼는 고기의 맛이다. 


갑자기 세상에 아름다워 보이기 시작한다. 애써 거리를 유지한 채 듣고 있던 국장님의 말씀이 가슴을 울리기 시작한다. 국장님의 말씀이 소고기 기름을 타고 내 마음속으로 들어온 것이다. 국장님의 위로가 으레 하는 말이 아니라 날 위한 한 마디 한 마디 같고, 그 위로가 내 마음속에서 커지더니 식사가 끝날 때쯤엔 '나는 뭐든 할 수 있다.', '세상에서 내가 못 할 일은 없다.'의 자신감 상승으로 이어진다. 뭐 고기 한 점 때문이라면 약간 과장된 전개라는 것 인정한다. 국장님이 말씀을 잘하셨고, 꽤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눴고, 나 역시 진심으로 듣고, 평소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편하게 했기 때문에 그랬을 테다. 


친구한테 이야기했더니 그건 가스 라이팅도 아니고 무슨 고기 라이팅이냐고 한 소리 한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아 웃는다. 하지만 좋은 점심시간이었던 것은 확실하다. 날씨가 유난히 밝고, 따뜻했다. 점심 식사 자체도 훌륭했다. 나에 비해 열 배는 일정이 많을 텐데도 어쨌든 이렇게 시간을 내서 밥을 먹자고 했고, 지난번에 흘러가는 소리처럼 했던 내 말을 기억해 식당을 예약했다. 새우살은 물론 깍두기 볶음밥까지 아주 맛있었다. 그리고 후식으로 달달한 딸기 아이스크림까지 먹으며 맛 잘 알의 면모를 보여줬다. 그리고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왕창 다 해버렸다. 감사함과 요즘의 고민, 그리고 불만까지. 아주 속이 시원했다. 대화를 마친 후에는 내 삶에 조금 더 집중하고 싶다는 생각과 자신감이 생겼다. 


이 정도면 꽤 좋은을 넘어 훌륭했던 점심시간이었다고 본다. 이 모든 것은 서로의 진심 어린 대화 덕분이다. 저ㅓㅓㅓㅓㅓㅓㅓㅓㄹ대로 맛있는 소고기 때문은 아니다.

작가의 이전글 그러면 안 되는데 남편에게 짜증을 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