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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기 Apr 12. 2022

마늘 120쪽에 꽂힌 엄마표 건강밥상

기록하는 2022년│Episode 67│2022.04.09-10

지난주 어느 날 엄마가 가족 카톡방에 장문의 카톡을 올렸다.


"건강혁신 식단 공유합니다~ 이 식단이 혈액 자체를 맑게 회복시켜서 각종 암이나 혈관 질환 등을 예방 및 치료할 수 있다고 하더라. 앞으로는 이 식단을 최대한 따라보려고 하니 적극 참여 바래요. 구체적인 식단은...(증략)... 마늘 : 원칙적으로 하루 120쪽(익혀서. 생으로 먹으면 간에 무리가 갈 수 있음). 매일 운동 반드시 하고, 햇빛 하루 두 시간 이상 직접 쬘 것."

"마늘 120쪽?? 하루에???"


운동이야 매일 하면 당연히 좋을 테고, 햇빛도 많이 보면 당연히 좋을 테다. 마늘 역시 몸에 좋겠지만 하루에 120쪽이 가능한 섭취량인가. 그동안도 엄마는 어디선가 건강 관련 정보를 얻어서 카톡방에 공유해주곤 했는데, 이번 마늘을 주로 하는 건강혁신 식단은 꽤 놀라웠다. 어쨌든 엄마의 길고 긴 카톡을 요약해보자면 지인이 굉장히 효과를 본 건강혁신 식단이 있는데, 이 식단이 몸에 몹시 좋다. 그래서 앞으로는 이렇게 식사를 해볼 예정이고, 우리가 와도 특별한 음식 없이 그 식단대로 밥을 준비할 예정이라는 것. 그리고 이 식단은 우리 가족이, 특히 내가 적당히 건강해질 때까지(=내가 볼 땐 분명 살인데 엄마는 결코 살로 인정하지 않는 내 몸의 부기가 다 빠질 때까지) 해 볼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 전에도 어떤 식재료에 꽂혔다가 안 먹기를 반복했던 엄마라 이러다 말겠지 싶었는데 일주일 넘게 매일 저녁 건강 밥상 사진이 카톡방에 올라왔다. 이번에는 꽤 오래가는 듯하다. 요새는 꽤 열심히라고 했더니 엄마가 답한다. 냉장고에 늘 있는 식재료들이고, 또 너무 간편해서 차려먹기 편하다는 말. 그리고 다른 식단에 비해 진짜 몸이 좋아진 것 같다는 말. 그리고 이번 주 용인에 오면 이대로 먹을 것이라는 말까지 다시 한번 덧붙였다.


주말이 됐다. 용인으로 향한다. 엄마 집에 갈 때마다 늘 맛있는 것을 먹는다. 내 요리 실력에 대한 기대가 전혀 없어서인지 엄마는 늘 한상 가득 차린다. 제철 식재료를 메인으로 새로 무친 나물과 맛있는 밑반찬들로 꽉 찬다. 그래서 맨날 말로는 "엄마 힘든데 뭐 하러 이렇게 해."라고 하면서도 맛있어서 남편과 늘 잔뜩 과식을 하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오기도 전부터 건강 식단대로 간단하게 먹을 예정이라고 하니 왜인지 조금 아쉽다.


- 토요일 저녁 : 각종 쌈, 두부+마늘+버섯 구운 것, 주꾸미 볶음


- 일요일 점심 : 비트+오렌지+채소 샐러드, 마늘+숙주+해산물 볶음, 청란+바나나+토마토+아보카도


진짜 건강한 식단이다. 맨날 말로는 고기가 몸에 안 좋으니 안 먹을 거라고 말하면서도 언제나 고기가 있었던 엄마 밥상에 정말 고기가 없었다. 대신 구운 마늘과 볶은 마늘, 그리고 채소들이 가득했다. 단호해진 엄마가 놀랍다. 밥은 당연히 맛있었다. 건강할 뿐 맛이 없는 음식들은 아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자꾸 허한 기분이 든다. 분명 배불리 잔뜩 먹었는데도 이상하게 헛헛하다. 엄마한테 말하니, 그것 역시 심리적인 것이라며 조금만 이겨내면 괜찮을 거라고 한다. 엄마도 식단 3일 차 때 양념갈비가 정말 먹고 싶었는데, 그 순간을 벗어나니 고기 생각도 잘 안 나고 오히려 이 음식들이 더 당긴다고 했다. 진짜 단호해진 엄마의 모습이 새삼 또 놀랍다. 그러고 보니 엄마의 얼굴이 뽀얀 것이 환하다. 주름이 사라진 것 같고 피부가 맑다. 식단의 효과인가 싶다.


계속 헛헛해서 일요일 점심을 먹을 때까지만 해도 남편과 저녁에는 기름진 것 잔뜩 먹자고 계획했다. 그런데 막상 집으로 돌아오니 주말 동안 먹은 두 끼의 건강한 밥상이 조금 아깝게 느껴졌다. 그 짧은 사이 가벼워진 것 같이 느껴지는 몸의 기분이 소중했다. 간단하게 양파와 마늘, 토마토를 아보카도유에 볶았다.

마늘은 겨우 10알 정도 볶았고, 이것만 먹은 것도 아니다. 밥도 먹고, 갑오징어 볶음도 잔뜩 먹었다. 그럼에도 괜히 기분이 좋다. 먹는 즐거움이 정말 큰 나인데, 생각했던 것보다 건강하게 먹는 즐거움도 있는 것 같다. 이 번 기회에서 조금은 더 건강해지고 싶다. 하고 싶은 것을 할 때 피곤하다는 이유로 미루게 되는 내 모습을 더 이상은 보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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