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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기 Apr 20. 2022

(가칭) 평화 사절단 '비둘기파' 조직 완료

기록하는 2022년│Episode 75│2022.04.19

회사에서 내 나이 또래 친구들을 찾기 어려웠다. 15년도 입사 후 작년 여름까지 팀은 물론이고 국(총 25명)에서 막내를 담당했다. 작년 여름에 옆 팀에 나보다 2살 어린 사람이 입사했고, 작년 겨울 또 다른 옆 팀에 나와 동갑 1명, 3살 어린 사람 1명이 입사했다. 그리고 드디어 올해 2월 우리 팀에도 나보다 어린 사람이 입사했다. 나보다 7살이나 어린 그 후배는 우리 팀뿐만 아니라 국에서도 막내다. 그 친구 덕분에 나는 6년 넘는 막내 생활을 탈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그 친구는 당분간 막내 탈출이 힘들지 않을까 싶다.


내가 나이가 먹은 건지, 아니면 회사가 조금은 젊어진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비슷한 나이 또래가 생겼다. 그리고 회사 안에서 내 동갑 친구를 찾아주고 싶어 했던 여러 선배님들의 도움과 오지랖 덕분에 동갑친구를 두 명 더 알게 됐다. 알게 됐다는 것이 서로가 서로를 알게 되어 친해졌다는 것이 아니라, "어느 부서의 누가 너랑 동갑이더라." 하는 정보 전달을 통해 말 그대로 동갑 친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어쨌든 같은 국 옆 팀의 동갑 1명, 그리고 다른 국 다른 팀의 각각 1명씩 (업무로 얽혀있지 않아 자연스럽게 만날 일이 없어 몰랐다.) 총 3명의 동갑 친구의 존재를 알게 됐다.


그 뒤로 자연스럽게 다른 국 다른 팀의 한 명과는 밥을 먹을 일이 생겼다. 연로한 조직에서 그 친구도 동갑 친구의 존재에 대한 반가움과 기대가 큰 것 같았다. 나머지 한 명과도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해보고 싶었는데 영 기회가 없었다. 이러다간 평생 밥 한 번 못 먹을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화장실을 가다가 우연히 나머지 한 친구를 만났다. 용기를 냈다. 나는 무슨무슨 팀에서 근무하는 누구누구인데, 조만간 점심 한 번 먹자고. 연락하겠다고. 그리고 나를 제외한 나머지 3명에게 연락을 돌렸다. 동갑 친구들을 찾았는데, 한 번 다 같이 모여서 밥이나 먹자고. 일단은 다들 너무 좋아했고, 빠르게 점심 약속을 잡았다.


그리고 대망의 그날이 오늘이다. 다들 뭘 좋아하는지 모르고, 심지어 처음으로 밥을 먹는 사람도 있어서 메뉴 선정이 고민됐는데, 생각보다 빠르게 의견이 모아졌다. 닭갈비다.

닭갈비가 익어가는 동안 살짝 어색한 기운이 감돌았다. 역시 너무 급했나 싶은 순간 한 친구가 물었다. 다들 MBTI가 뭐냐고. 나랑 다른 한 명은 ENFP고, 물어본 친구는 INFP고, 또 다른 친구는 ISFJ였다. MBTI 과몰입러들이 네 명 중 세 명이나 있으니 금세 활기차 진다. 그렇게 대화를 시작한 우리는 아예 말도 놓기로 했다. 이직을 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앞으로 30년 가까이 볼 사람들이다. 이 삭막한 회사에서 친구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몇 년 동안 없었던 나는 안다. 다행스럽게도 나만 친구들이 필요했던 것은 아닌지 모두 즐거워했다. 자연스럽게 다음번 저녁 약속까지 한방에 잡았다. 회사 근처가 아니라 연남동에서, 그리고 우리 중 ISFJ인 친구가 생일이라 무려 생일파티를 겸하기로 했다. 만난 지 두 번 만에 생일 파티라. 생각만으로도 재미있다.


어색하지만 어쨌든 즐거웠던 점심시간이 끝나갈 때쯤 한 친구가 묻는다. 우리 모임명이라도 하나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으악. 오그라든다고 다들 손사래 치면서도 다음번 모임까지 생각해서 만나기로 했다. 다들 웃긴 사람들이다. 나도 그렇고. 그런 것에 아예 재주가 없는 나는 집에 와서 남편한테 물었다. 남편은 9층에서 근무하고 있는 90년생들이니까 구구즈. 비둘기 관련된 것 어떠냐고 한다. 좋다. 마음에 쏙 든다. 세련되지 않고, 어딘가 촌스러우면서 옛날 느낌이 물씬 풍기는 것이 우리 회사, 그리고 나와 아주 잘 어울린다. 그리고 회사 내에서 아주 평화롭게 잘 지내고 싶은 나의 회사생활 목표와도 잘 어울린다. 내 마음대로 (가칭) 평화 사절단 '비둘기파'를 결성했다. 다음 저녁 때는 이름에 대한 의견을 꼭 내봐야지. 우리 조직의 밝은 미래를 기대해본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어휴 나 너무 구리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어쩜 좋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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