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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기 Apr 19. 2022

연애 때의 그 설렘은 어디로 갔을까.

기록하는 2022년│Episode 74│2022.04.18

남편은 요즘 평일 저녁에 바쁘다. 화요일과 목요일에는 중국어를 배우고, 수요일에는 축구를 한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여유롭게 함께 할 수 있는 저녁은 월요일과 금요일뿐이다. 보통 금요일에는 누군가가 함께 하는 약속을 잡게 되니 남은 건 월요일뿐이다. 보통의 월요일 저녁이라면 퇴근 후 얼른 집으로 돌아가 한주의 출발을 위해 체력을 보충하겠지만 요즘엔 월요일마다 외식을 한다.


오늘은 연남동으로 향한다. 선배한테 추천받은 <중화복춘>에 가보기로 했다. 4월부터 차 없이 다니고 있어 오랜만에 공항철도를 탔다. 홍대입구에 도착해 3번 출구로 나오니 연트럴 파크는 푸릇푸릇하고 사람들이 가득하다. 다른 세상 같다. 원래 가려고 했던 식당은 예약을 안 하고 왔더니 이용 불가라고 한다. 아쉽다. 오랜만에 이런 동네에 와서 그런가. 기본적인 예약 및 이용 가능 여부 확인조차 깜빡했다. 급하게 틀어 양꼬치집에 간다. 양꼬치를 시키고 하얼빈 한 병을 시켰다. 

양꼬치를 구우며 남편은 비장하게 말한다.


"나 오늘 2차도 갈 거니까 각오해."

"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과연..."


2차를 갈 거라는 남편의 굳은 다짐과는 다르게 양꼬치가 익어갈수록 남편의 눈도 피곤함으로 가득 찬다. 차오르는 피곤함이 보인다. 피곤할 테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피곤하다. 결국 2차 대신 옥수수국수를 하나 시켜 나눠 먹고 집에 가기로 한다. 합정역까지 걸어가기로 한다. 합정역에서 6호선을 타면 새절역까지 한 번에 간다. 합정역까지 걸어가는데 그새 새삼 많이 바뀌었다. 남편과 자주 가던 횟집도 없어지고, 삼겹살집도 없어졌다. 꽤 오랜 시간에 걸쳐 변했겠지. 하지만 차 타고 목적지만을 향해 가다가 걸어가면서 이렇게 골목 구석구석 보니 그 바뀜들이 더욱 크게 느껴진다.


합정역에 도착해 내려가는데 남편과의 연애시절이 떠오른다. 연애 때 합정역에서 종종 헤어지곤 했다. 남편은 불광역으로, 나는 약수역을 향해 반대의 지하철을 타곤 했다. 헤어지기 아쉬워 몇 번의 지하철을 떠나보냈는지 모른다. 그러다 결국 같은 방향 지하철을 타고 한참 돌아가기도 했다. 결혼 후에는 당연히 헤어짐 없이 같은 방향으로 탄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남편과 연애 때 이야기를 나누며 집에 왔다. 애틋한 헤어짐 대신 같은 길을 걸어 같은 곳을 향한다. 집에 도착해서 나는 <얀쿠브레>에서 사 온 디저트를 꺼내고 남편은 커피를 내린다.

연애 때의 그 설렘은 어디로 갔을까. 문득 그때의 설렘과 두근거림이 그립게 느껴진다. 헤어짐이 아쉬워 극한의 체력까지 끌어 쓰던 그 시절. 남편과 헤어지고 집에 돌아와 눕자마자 잠들던 그때의 나. 연애 때의 그 마음이 그리워 마음이 싱숭생숭 해진다. 


그러다가 문득 바지만 입고 열중해서 커피를 내리고 있는 남편을 보니 이것은 이대로 더 좋다. 따뜻하고 편안하다. 남편과 함께 하는 지금 이 순간이 당연하고 익숙하다. 두근거리는 설렘은 없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설렘이 사라진 자리에는 대신 확신이 생겼다. 평생 남편과 함께 지금처럼 웃고, 행복할 것이라는 확신. 그리고 믿음. 이 순간이 당연해지기까지 꽤 많은 시간과 서로의 노력이 필요했다. 돌아보니 웃음이 난다. 연애 때의 설렘은 사라진 것이 아니다. 다른 모양의 사랑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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