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과 끝
무모하게 도전하는 일이 꼭 젊은 날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인생은 생각보다 길고 격변하는 삶의 형태는 나이를 막론하고 닥쳐온다. 가볍게 지나가는 일도, 일생 전반을 흔드는 일도 아무런 예고 없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다만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대비와 그 일을 해결하는 노하우가 생기는 것이다.
이제는 초등학생 하나가 새 장난감을 들고 시무룩하게 학원으로 들어왔다. 나는 그 이유를 물었고, 학생은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이야길 했다.
"선생님, 제가 오늘 이걸 새로 샀는데요, 다른 건 잘되는데, 이 장난감은 잘 안 돼서 짜증 나요."
아니나 다를까 아이의 손에 들린 장난감을 받아 들고 보니 안 되는 이유가 있었다.
워낙 지금 아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장난감이라 똑같은 게 있음에도 그 친구는 색이 이쁘다는 이유로 하나를 더 산 것이다. 그래서 똑같은 두 개의 장난감이 손에 들려 있었다.
잘되는 장난감에는 허술하긴 해도 이음새가 잘 이어져 있었는데, 잘 안 움직이는 장난감에는 이음새 부분에 나사가 자리하고 있었다. 플라스틱과 금속의 나사는 서로 큰 마찰을 주어 잘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이해시키긴 어려웠고, 그냥 차이점만 설명해 줬다. 그랬더니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하고 물어온다.
잠깐 고민하다가 이걸 판매한 사람에게 가서 교환을 하는 것이 좋겠다. 아니면 마음이 많이 상했으면 환불을 요정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설명해 줬다. 나 같으면 바로 가서 따져 물었을 테지만 아이는 그러지 못하니 표정이 더 어두워졌다. (그런 아이가 귀여웠다.)
누군가에겐 쉽게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 일을 겪어 본 경험이 없는 사람에겐 아주 무서운 일이 될 수도 있고, 세상에서 제일 큰 근심이 될 수도 있다. 천 원이라는 장난감 가격이 부담 없는 나이가 되면 불량품을 뽑았구나 하고 쉽게 넘긴다거나, 잘못된 부분을 따져 물어 보상을 받아 낸다든지 하는 행동이 뒤 따를 수 있다. 하지만 초등학생에겐 아주 힘들고 걱정되는 일이 된다.
성숙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30대 중반이 되자 조금씩 달라지는 체력과 변해가는 신체능력의 저하가 조금씩 현실이 되어 다가왔다. 못하는 운동이었지만 축구를 하루종일 하고 나서도 다음날 농구를 하거나. 술을 새벽까지 마시고 나서도 회사에 정시에 출근할 수 있는 정도의 체력은 언제나 준비되어 있었다.
당연했던 일이 어느 순간 그 당연했던 일이 아주 힘든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 날이 생겼다. 심하게 풋살을 하고 나서 다음 날이면 다리를 못 움직일 정도로 알이 밴다던지, 술을 마시면 12시가 되기도 전에 집에 들어가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조금만 걸어 다녀도 숨이 차는 것은 내 체력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는 특별함 없는 노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물증이다.
청춘의 도전처럼 무엇인가 무모하게 도전하지 않으면 더 심해지는 체력저하에 정신적으로 무기력할 수밖에 없었다. 머릿속으로 고민한 하거나 생각만으로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체력의 한계는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어제보다 오늘은 확실히 늙은 게 분명하다.
운동 중에 한 가지라도 꼭 해보자는 마음으로 고르고 골라 선택한 것이 바로 수영이다. 관절에 무리가 덜 하고, 운동량이 적지 않은 운동은 수영 밖에 없었다. 그런 수영을 등록하고 디닌 지 5년 차에 들어서면서 젊은 날의 무모한 도전만 일삼았던 모습에서 지금은 도전보다도 끈기가 생긴 나를 발견했다.
제법이었다.
내가 새로운 무엇인가를 쉽게 시작할 수 없었던 이유는 그 끝이 내가 생각하는 것과 틀림이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핼스장을 쉽게 갈 수 없는 이유는 분명 저렴하다고 3개월치 요금을 한 번에 내고는 일주일도 못 가고 기간이 지나버리는 일을 나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이어트나 영어공부를 시작하지 못하는 이유도 결국은 운동과 같은 결과를 이미 예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독서의 습관은 꽤나 오랜 기간 이어나가고 있었지만 그마저도 요즘은 글을 쓴다는 핑계로 읽지 못하고 있다.
이토록 단순하고 지루한 하루가 쌓여만 간다.
새로운 시작을 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진다.
우리 모두는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선택을 해야만 하는 경우가 있다. 일자리가 생겨 그 회사에 취업을 하는 순간 출근거리 때문에 차를 사야 하는 경우가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만약 멀리 있는 곳으로 이사를 해야만 하는 경우가 생긴다면 어떤 결정을 해야 할까? 혹시 가고 싶었던 두 개의 대학에 모두 합격을 했다면 어느 대학을 가는 것이 좋은 선택이 될까?
선택이라는 순간은 언제나 긴 시간을 쓸 수 없을 때가 많다. 그 짧은 시간에 선택한 결과는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나서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직장에 따라 이사를 결정하고 들어간 집이 전에 살던 곳 보다 좋지 않을 때. 중고차라도 필요하다는 마음에 샀지만 수리비가 차 값만큼 들어가 버리면 내가 이전에 했던 선택의 시간을 후회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시작과 선택은 느슨한 삶에 긴장을 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 평소에 안정적인 삶에 젖어 있었다면, 선택과 시작의 시간이 되면 많은 양의 도파민이 나를 움직인다. 높아진 스트레스와 촉박한 시간에서 오는 적절한 긴장은 무거운 부담 일지도 모르지만 색다른 환경을 제공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 환경에서 의미 있는 결정을 하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이지만 말이다.
본인의 선택의 시작은 여행이었다. 물론 여행을 처음부터 길게 할 생각은 아니었다. 하지만 여행을 시작해 보니 멈출 수 없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배낭을 멘 어깨에는 단단한 근육이 뭉치기 시작했고, 들고 간 옷은 해지기 시작했다. 신발은 사고, 버리고를 반복해서 여행 마지막에 신고 있던 신발은 멕시코에서 산 슬리퍼와 운동화 한 켤레뿐이었다. 막상 시작하는 것이 힘들었지 여행이 습관이 되어 몸에 베기 시작하니 오히려 멈추기가 더 어려운 일이 되어 버렸었다.
어렵게 시작한 여행은 내 인생에 두 번 다시 할 수 있을지 모를 중요한 선택이었다. 지금 하자고 마음먹을 수 없음을 내가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는 생각을 한다. 운동도 마찬가지다. 수영을 시작한 것도 지금 시작하라면 할 수 없는 선택일지도 모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과 시작은 그때와 시기가 적절하게 맞아 들어가야 한다.
열정만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내 환경을 기다리며 적절한 시간을 찾는다면 그 시간이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있다. 나의 환경을 내가 결정하고, 그다음엔 열정이 선택을 끌어와만 한다. 그렇게라도 일부러 준비를 한다면 인생의 긴 시간을 조금 더 특별하게 보낼 수 있다. 준비된 시간과 상황이 나를 기다려줄 이유가 없다. 내가 찾아 나서는 방법이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다. 멈춰 있던 시간을 다시 돌려 지금의 편안함과 안전함을 끝내야 한다. 모든 인생의 시간이 특별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최악의 상황으로 만들 필요는 없다.
끝을 낸다는 것은 내가 지금 누리고 있고, 안주하고 있는 그 보통의 삶을 조금이라도 끝을 내는 순간 새로운 것을 시작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균형과 조화의 삶을 위해서라도 지금 끝내야 하는 것을 용기 있게 끝내야 한다. 설령 그 끝을 미리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시작하는 순간만큼은 가장 용기 있는 사람일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