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고 또 여행하며.
나는 20대에 호주를 다녀온 뒤로 수많은 나라를 여행했다. 그것도 짧은 시간 안에 다녀온 여행이다. 방학에 주로 가까운 나라를 여행하고, 다녀오면 다시 다른 나라 여행을 구상했었다. 평소에는 잘 다니지 못하는 학생이었던 터라 방학이 되기만 하면, 가까운 제주도라도 여행 계획을 세워 다니는 편이었다.
그러면서 30대가 되었다.
무작정 도전도 했고, 사람들에게 상처도 많이 받았으며, 새로운 직장을 구하기도 했다. 진짜 30대가 되면 하게 될지도 모르는 결혼에 대한 고민도 잠시 한 적이 있었고, 연애에 대한 실증을 느낀 적도 있었다. 하지만 뭐 하나 즐겁지 않았고, 물 위에 기름처럼 섞이지 못했다. 마음은 안 그랬는데, 늘 그 속에 들어가 있지 못하고 늘 주변에서 맴돌기만 하는 삶의 연속이었다. 그러다 가끔 마음이 맞는 친구들을 만나게 되거나 연인을 만나게 되면 그 속에 한참을 빠져 있다가 다시금 홀로 된다는 느낌을 받을 땐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인생이 원래 그렇다고 말하기엔 주변에 사람들은 다 잘 사는 것처럼 보였고, 어딘가에 섞어 한데 어울려 사는 것처럼 보였다. 또 나만 그런가 해서 돌아보면 나 말고도 이런 느낌을 받는 사람이 많이 있었다. 잘 모르겠다. 그런 느낌이 단지 느낌에 불과해서 시간이 지나면 쉽게 사라지고 없어질 감정인지, 인생을 사는 모두가 가지는 집단적인 외로움인지 알 길이 없었다.
말해주는 이 하나 없던 시기에 나는 그렇게 방황이 아닌 방랑하기 시작했다.
서른세 살의 적지 않은 나이에 준비하는 세계 여행은 그 단어만큼이나 나에게도 생소한 이야기였다. 가까운 동남아를 여행하는 것도 벅차고 집에 돌아오면 문 밖은 위험하다 느끼는 나에겐 엄청난 도전이자 무모한 도전이라 할 수 있었다.
교제를 하고 있던 친구에게 이러한 사실을 진지하게 말할 겨를도 없이 그전에 관계 정리가 끝나 버렸고, 직장엔 이제 그만 나가는 걸로 정리했다. 나 없이도 당연히 잘 돌아가는 세상에서 한 발 물러나 또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는 딱 이 정도면 충분했다. 마치 20대에 호주를 가기 위해 휴학을 하는 것처럼 직장을 그만뒀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경비를 마련했던 것처럼 건설현장에서 인부로 일하기 시작했다. 과거의 경험을 살려 공사 현장의 정식 인부로 등록했고, 출국 날짜 이틀 전까지 현장에서 삽을 들고 일을 했다. (현금 정산이 여기보다 확실한 곳이 없었기 때문에 선택한 곳이다.)
세계여행의 첫 번째 나라는 중국 칭다오였다.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이 90일 밖에 안 되는 비자를 받아 들고 일단 중국으로 날아 들어갔다. 세상은 넓었고, 재미있는 일은 지금도 넘쳐 나는 중이다 보니 여행은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기억으로 남았고, 다시 못해 볼 경험이 되었다.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책으로만 본 곳을 직접 다녀 보기도 했다. 내가 가장 해보고 싶었던 일을 해보는 중요한 시간 되었다.
중국을 시작으로 동남아시아를 여행했고, 다음으로 인도를 포함한 중동으로 여행의 길을 잡았다. 힘들고 어쩌면 인생에 다시 있을 수 없다는 마음으로 중동에서 아프리카를 나와 중 남미를 여행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여행의 시간은 나에게 주는 휴식과 같았다. 인생의 전환점이나 변환점이 되는 시간인 것이다. 축구 선수가 전반전을 열심히 뛰고 후반전을 시작하기 전에 짧지만 달콤한 휴식의 시간을 가지는 것처럼 짧지만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을 쉬는 시간으로 가졌다.
별로 친하진 않지만 안면이 있는 친구가 이야길 했다. 나름 조언과 충고 같은 의미에서 건넨 이야기 같았다.
"나이가 이 만큼 되고 나서보니 네가 했던 여행이 얼마나 귀한 경험인지 실감이 나더라. 그렇지만 나는 못하겠어. 모아둔 돈으로 그렇게 여행을 다녔다면 지금 남은 돈도 없을 텐데, 더 좋은 가치에 투자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기도 해. 우린 결혼도 생각해야 하고, 자식 키우려면 돈도 많이 드니까. 얼마 전에 아파트를.... 그리고 요즘은 전기차 배터리 관련 주식이...."
한 귀로 듣고 흘리는 종류의 이야기다. 자신이 해 본 적이 없는 일을 비판하는 행동에 대해서는 무례하건 아니건 간에 무시해 버리는 것이 답이다. 괜히 반박하고 싶지 않았다. 돈이 없고, 결혼도 못한 게 사실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게 사실이라고 해서 그 사람의 말이 나에게 영향을 미치거나 내가 반성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서로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경험하는 순간일 뿐이었다.
33살이라면 적은 나이가 아니라고 한다. 23살이라면 해 볼만 한 일이라고 한다. 현실에서 실패하는 것이 두려워 자리는 피하고 보는 것이 아니냐고 물어 온다.
"내가 마치 현실을 피해 도망치는 것처럼 보인다면 어쩔 수 없어. "
난 누구에게도 변명하고 싶지 않고, 스스로에게 당당하니까. 내가 해 온 수많은 일들에 후회는 없으니까 말이다. 별로 친하지 않은 친구가 말하는 재산을 늘려주는 투자는 주식으로 하는 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부동산으로만 하는 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우선 자신에게 투자하는 게 어떠냐고 말하고 싶었다.
어떻게 보면 형편이 다들 고만고만하게 살아가는 중일지도 모른다. 월급으로 보면 남들보다 1-2백만 원 정도 차이가 나고, 집으로 보면 5-10평 정도의 차이가 난다. 자동차를 봐도 1천-2천만 원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이 정도의 차이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하고 남들보다 조금 부족해 보이는 삶을 살더라도 그렇게 크게 차이 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나중에 또 이야기하겠지만 우리는 스스로가 건강하고, 지혜롭게만 성장한다면 물질로 채울 수 없는 무형의 가치를 가질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2백만 원의 월급 차이가 나는 사람이랑 나를 비교해서 나아질 것이 없으며 2백만 원을 더 버는 사람도 자신보다 2백만 원 더 버는 사람을 쫓아 살아가는 중이니 어찌 보면 뒷 꽁무니만 따라다니다 끝이 날 수밖에 없는 구조 일지도 모른다.
한 걸음만 옆으로 나와서 보면 보일지도 모르겠다. 나 같은 경우는 그랬다. 세상의 톱니가 알듯 말 듯 간질거렸다. 조금만 틀어서 들어가면 세상이 돌아가는 구조에 끼어들어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을 멈췄다. 굳이 내가 거길 들어가지 않더라도 세상을 잘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도 했고, 구조 밖에서도 나의 자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만약 20,30대의 수많은 고민 중에서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꼭 이야길 해주고 싶다. 쫒아서 사는 것보다는 가끔 밖에서 어찌 돌아가는지 관망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나 자신을 먼저 돌아보고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한 확신을 먼저 가지게 되면 그다음으로 해야 할 일은 자동으로 따라오기 마련이라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