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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euN 쓴 Feb 14. 2024

그저 그런 시간은.

오랜 시간 이곳에 있었던 것 마냥 포근하고 따스한 느낌을 받는다. 햇살이 그러하고 바람이 그러했다. 내 인생에 한 번쯤은 꼭 울릉도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울릉도를 다녀온 지금은 혹시나 내가 울릉도에 다녀오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울릉도에서 대단히 긴 시간을 보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내가 보고 싶었던 것과 듣고 싶었던 것과 가고 싶었던 것들에 욕구를 모두 해소했다. 그거면 중분 하다. 뭔가 대단한 여행을 하기 위해서도 아니었기 때문에 충분히 만족하는 일이다.


인터넷에 수많은 여행 후기나 여행기를 보고 이곳에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온전히 나의 여행을 할 수 있었고 우리의 여행을 할 수 있었다. 내가 가고 싶은 곳에 가고,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오늘도 역시나 우리의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우선 아침에 일어나서 각자의 시간을 가졌고, 아침을 먹을 사람은 일찍 아침을 챙겨 먹었다. 다 같이 간 여행이라고 해서 꼭 아침부터 저녁까지 같이 먹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서로의 의사를 존중하며 먹고 싶은 사람만 아침을 먹었다. 물론 간편식이나 간단히 먹는 걸로 돈을 많이 냈다느니 하는 언쟁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런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는 모두가 싫어하기 때문이다. 


외출하기 위해 준비를 마치고 모두가 밖으로 나오면서 한결 맑아진 날씨에 숙소 앞에서 시선을 멀리까지 던졌다. 숙소 앞으로 펼쳐진 바다에 배들이 한가로이 떠 있고, 하늘엔 작은 조각의 구름이 떠 다니고 있었다. 곧바로 차를 타고 나와 해안도로를 따라 바다를 돌아보기로 했다. 우린 내륙지방인 대구에 살면서 쉽게 바다를 접할 기회가 없기 때문에 틈만 나면 바다를 둘러보았다. 맑은 날씨는 정말로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말 그대로의 행운이었다. 멀리 바다 끝까지 볼 수 있음은 물론이고 큰 파도가 없어서 운전하기가 수월 했다. 뉴스를 보니 울릉도의 큰 파도는 도로를 덮쳐 지나가는 차들의 위험이 되기도 했다던데, 우린 해안도로에서 방파제로 오르는 환상적인 파도만 만날 수 있었다.


정해진 목적지는 역시나 없었고 숙소를 나와 울릉도 지도를 보며 우리가 평소에 가지 못했던 시계방향으로 울릉도를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그간 여러 해수욕장을 다녔고 많은 랜드마크를 다녔지만 온전히 운전을 하며 해안도로를 따라 바닷가를 보는 일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바닷가를 따라 만들어진 도로, 마치 자신 있게 바다를 보여주겠다는 듯한 모습으로 바닷가와 아주 가까이 붙어 있었고 창문을 열고 달리면 파도 소리가 차 안까지 들어와 마치 배를 타고 바다를 여행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운전하는 친구가 조금 고생스러웠겠지만 동승했던 우리는 그 어떤 시간보다 즐겁고 편안하고 행복했던 시간으로 기억을 채웠다.

역시나 점심은 특별할 것이 없는 울릉도에서 가장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들로 배를 채웠다. 맛집을 가는 것이 아니라 줄을 서서 기다리 지도 않았고 검색을 해서 찾아간 곳도 아니었다. 다만 길가에 보이는 '식당'이라는 이름을 보고 들어가 먹은 곳이지만 섭섭하지 않게 한 끼 든든히 먹고 나올 수 있었다. 친구들과 여행을 하는 게 또 한 번 좋았던 부분이 바로 여기에 있다. 입맛이 서로 맞지 않을 땐 생각보다 여행이 많이 어렵다. 쉽게 합의를 보고 밥을 따로 먹고 만나기만 하면 좋은데, 서로의 감정을 넣기 시작하면 끝도 없는 일이 되어 버린다. 


여하튼 우린 부른 배를 잡고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울릉도는 작아서 다녀 본 길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이번엔 처음 가는 길이었다. 

생각보다 카페는 아주 좋은 위치를 가지고 있었다. 뒤로 보이는 산은 울릉도의 상징인 고릴라를 한층 더 돋보이게 하고 시진을 찍으면 배경 때문인지, 아니면 크기 때문인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현실성 없이 사진에 나오는 것 같다. 크기도 크기지만 산과 어울려 있으니 야생의 모습이라 해야 될 것만 같았다. (물론 전혀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말이다.)


카페 울라,


이곳은 위치적으로 아주 좋은 곳이다. 북면 추산리라는 곳에 있는데, 여기가 코끼리 바위가 있는 곳이다. 그 옆엔 작은 구멍바위도 있는데, 이 두 바위를 보기 위해서도 이곳을 들렀다가 가는 사람도 있다. 카페는 생각보다 좋은 평이 없었다. 우린 그저 커피 한잔을 마시기 위해 이곳을 방문했던 것이고, 큰 고릴라를 만날 수 있다고 해서 이곳을 방문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아주 비싼 커피값에 눈살이 찌푸려진다고 했다. 메뉴들이 맛은 없고 가격은 가격대로 비싼 나머지 사람들의 마음을 얻지는 못한 것 같았다. 네이버나, 카카오 후기를 보더라도 좋은 후기를 찾기는 어려울 정도였다. 다들 전망이 좋다거나 울릉도 고릴라를 한 번쯤 보러 오는 것 같은데, 우린 나름 만족한 편이라 여론에 동조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울릉도에서 좋은 추억을 만들려고 카페를 방문했을 텐데, 누구보다 좋은 커피를 합리적인 가격에 마시고 싶었을 텐데. 좋은 전만을 보려고 이곳에 방문했을 텐데 그 부분은 아쉬웠다. 


내 의견이 어떻든 가게 안에 사람들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도 가득했다. 다 마신 사람들이 그렇게 오랫동안 앉아 있는 것도 아닌데, 늘 가게 안엔 사람들로 붐비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람들보다 더 많은 수의 새로운 사람들도 계속 들어왔다. 그래서 붐비기만 했던 것이다.

사람이 가득한 카페가 이곳의 특징은 아니다. 여기엔 울릉도 북섬에서 볼 수 있는 시시각각의 변화 속에서 잠을 잘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이다. 즉, 이곳은 숙소를 운영하고 있는데 숙소가 바로 카페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여름의 가격은 조금 무리를 해야 할 정도로 비싼 숙소지만 겨울철은 생각보다 가격이 저렴하기도 해서 한 번쯤은 머무르기 좋은 곳이다. 


사진으로만 봤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보이는 바다의 풍경과 코끼리 바위의 모습은 이곳에서 하룻밤을 지낼 수 있는 필요조건이 된다. 꼭 이곳에서 자야 하는 건 아니지만 하루정도 머무르며 추억을 만드는 것은 어쩌면 생각지 못한 특별한 시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암튼 이곳의 커피와 빵은 나름의 선방이었으나 우리 네 명의 음료 중에서도 조금 갸우뚱하는 메뉴가 있었다. 시그니쳐와 커피를 못 마시는 친구의 논-카페인 음료 중 절반은 맛있었지만 절반은 조금 아쉬운 맛이긴 했다. 하지만 정원의 풍경과 사람들 사이에서 느끼는 여행의 맛은 있었다. 심지어 우리가 들어오는 순간 자리가 나는 행운을 얻을 수 있었기에 기다림 없이 시간을 즐길 수도 있었다. 이 모든 걸 합하여 점수를 매긴다면 조금은 점수가 올라간다. 


만약 여행을 하다가 그저 그런 순간이 온다면 가끔 북적거리는 장소로 나를 넣어놓는 것도 방법일지 모른다. 내가 여행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게 된다. 모두가 그런지 알 수 없지만 분주하고 시끌 거리는 곳에 나만 홀로 남겨진 느낌이 드는 순간 주변이 고요해짐을 느낀다. 순간적일 수도 있고, 꽤 오랜 시간을 그렇게 보낼 수도 있지만 나에겐 귀중한 시간이 된다. 


누구에게나 그저 그런 순간은 없다. 두근거림과 덜 두근거림이 있을 뿐이다. 심장이 빨리 뛰는 순간도 있고, 심장이 아주 편안한 시간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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