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곳으로 온기를 가져갑니다.
공항에 올 때마다 떠오르는 기억은 첫 비행기를 탔던, 호주로 워킹 홀리데이를 떠났던 때이다. 호주로 바로 가는 비행기 표가 너무 비싸 일본 '나리타공항'을 경유해야 했고, 대기 시간만 해도 8시간이 넘는 긴 여정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세상 어리바리한 20대에 떠난 첫 비행 후, 지금까지 나는 생각보다 많은 비행기를 타며 여행을 했다.
이제는, 혹여라도 짐을 잃어버릴까 잠도 못 자고 가방을 두 손으로 꼭 부둥켜 안은채 의자 한쪽에 앉아 있거나, 비행기를 놓칠까 봐 공항에 4-5시간 전에 도착해서 기다리지 않는다. 이젠 출발시간 2시간 전에 도착하는 버스를 타고 인천 공항으로 간다. 도착하자마자 체크인을 하고, 간단하게 출입국 심사대를 거치고, 게이트 앞으로 간다. 특별히 사야 하는 물건이 없다면 면세점을 이용하지도 않는다. 그냥 비행기가 게이트에 연결되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문득, 첫 비행기를 타기 위해 찾았던 김해공항이 떠오른다. 나이가 있어서(?) 제주도 수학여행 세대는 아니었고, 가족여행도 경북 의성에 계시는 할아버지 댁으로 가는 게 최고의 여행이었다. (휴가라기보다 거기 가면 과수원 일이랑 밭에서 고추를 따야 했지만...)
그 시절 우리 가족 누구도 비행기를 타 본 적이 없었기에, 버스나 기차를 타고 아들을 공항에 혼자 보낼 수 없었나 보다. 맞벌이로 늘 바쁜 부모님께서 나를 공항으로 데리고 가는 방법은 그날 일을 하셔야 했던 아버지의 영업용 택시를 타고 가는 방법이 최고의 선택이었다. 길을 아는 사람 하나 없고, 당신들도 가 본 적이 없는 곳으로 아들을 보내기에 나 만큼 두려웠을 것이다. 아무리 돌아오는 날짜가 적힌 표를 보여드려도 어머니는 그날이 영원히 오지 않을 것처럼 아득한 눈으로 바라보시며, 나의 손을 어루만지시기만 했다. 그렇게 비행기를 타러 가기 전까지 내 옆에서 단 한순간도 떨어지지 않으셨다. 지금도 그때 사진을 보면 내 옆엔 항상 엄마가 계신다.
아들이 가는 곳이 어딘지는 잘 모르지만 외국이라 하니 마지막 음식은 따뜻한 된장찌개에 밥 한 공기를 먹여 보내주고 싶으셨던가 보다. 공항 앞에 이름도 기억나지 않은 백반집에 들어가 따뜻한 된장찌개를 먹었다. 그때의 부모님 사랑은 10년이 지나서도 그 온도 그대로 남아 있다. 하나라도 더 챙겨 주고 싶은 그 마음을 모를 리 없다. 그런 사랑은 뚝배기 그릇처럼 그 온기가 깊다.
어느 곳으로 여행을 가든 게이트에 들어가는 길엔 언제나 외로움이 슬그머니 다가온다. 남아 있는 것에 대한 그리움이거나, 다시 함께 할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이다. 혹여나 비행을 하는 도중 사고가 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염려도 섞여 있다. 그 때문인지 어린 시절 비행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는 나를 끝까지 지켜봐 주시는 부모님과 동생의 모습이 그려진다. 돌아오면 볼 수 있게 될 그 들을 위해서 즐거운 여행을 하자 다짐을 한다.
부모님은 내가 외국을 나갈 때마다 공항을 오신다고 하지 않으시겠지만, 이번 여행처럼 돌아오는 표도 없는 여행을 뭐라고 하셨을까? 상상해 본다.
아마, 공항까지 오시는 게 아니라 여행에 따라나섰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게이트로 걸음을 옮겨 비행기에 올라 기체가 하늘 위에 뜨면 무의미하게 시선을 창 밖으로 던진다. 둥글지도 네모나지도 않은 창밖으로 하늘이 보인다. 공항 주변 도시의 모습이 작아지다 결국엔 보이지 않는 순간이 오면서 비행기는 더 이상 고도를 높이지 않는다.
바로 그때 우리는 하늘 위에 있지만, 아래에도 하늘이 있다.
이전 여행이 나의 귀한 추억이 되어 있듯이 지금 여행도 어느 순간엔 또 귀한 여행이 될 것이다. 여행에 여행을 쌓아 추억과 인생이 되고, 또 한 번 여행을 쌓아 삶이 된다. 그렇게 또 한 번 비행기를 탄 나의 여행은 켜켜이 쌓아둔 기억의 하늘 위를 날아오를 것이다.
어느 순간의 나를 내려다보면 여행이 있고, 올려다보면 여행이 있고, 지금도 여행을 하는 나는, 하늘에서 하늘을 내려다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