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나 도로엔 모두가 주인공인가?
오늘도 역시 해가 떠오르면서 아바나의 아침이 밝았다.
어제와는 다르게 한층 익숙해진 골목을 나와서 아침을 먹기 위해 식당이 가득한 골목으로 걸음을 옮겼다. 첫날이라 그런지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이 신기하고 뭔가 묘한 느낌이 든다. 어제 아침만 해도 멕시코의 작은 도시에서 숙소에서 주는 조식을 먹었는데, 새로운 아침이 되어 밖을 나오니 마치 오래된 영화에 들어온 것 같은 장면이 연출되어 있었다. 어쩌면 내가 태어나기도 전의 모습이겠지만, 텔레비전이나 광고 속에서 몇 번 정도 봐 왔던 그런 모습이 눈앞에 펼쳐져있다.
만약 온 세상의 제조 산업이 멈춰버려 더 이상 새로운 물건을 만들 수 없고, 지금 상태로 50년을 살이야 한다면, 아마 우리 모두는 쿠바에 와서 살아갈 방법을 배워가야 할지 모르겠다. 이곳은 조금 특별하다. 온 세상이 발전하고, 새로운 제품들을 끝없이 공급하는 중이지만 특별히 이곳 만큼은 비껴가고 있다.
마치 투명인간이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지만, 아무런 기척을 느낄 수 없는 것 마냥. 그들은 새로운 문물을 미디어나 관광객들로부터 접하고는 있지만 실제로 잡을 수는 없다.
그나마 멕시코에서 들어오거나 다른 제3의 나라에 의사를 파견하고 답례로 얻어오는 생필품이 전부인 나라에서 여행한다는 것은 신기하고 한편으로 불편한 일이 될지 모르겠다.
숙소도 그렇지만 밖으로 나오면 그 진가를 체험할 수 있다. 마치 지나간 흑백영화 속에 들어와 본연의 색을 가진 장면에 들어와 있는 느낌을 받는다. 고요한 도로 위에 "끼걱 끼걱" 거리는 자전거 택시. 그 보다 앞서서는 파란색을 덮고 있는 자동차 한 대가 매연을 뿜어내고 지나갔다. 차들의 색깔이 너무 환하다. 환하다는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다. 어쨌든 눈에 확 들어오는 색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엔 까만색 차량이 중고차 가격도 좋다고, 주문하는 1순위로 꼽는다. 조금 용기를 낸다면 겨우 흰색으로 하는 경우. 하지만 이곳엔 오히려 까만색 차량을 찾을 수 없다.
원색 그대로의 차를 오히려 더 쉽게 볼 수 있는데. 차종 불문하고 빨간색. 파란색. 초록색으로 입혀진 차들이 도로 위를 달리는 모습이 익숙하다. 더군다나 왕복으로 계산해도 4차선이 넘을 것 같은 도로에 수 분이 지나야 한대 정도 탈 것이 지나가니 지나가는 한대, 한대가 눈에 띄기 마련이다.
구름 없는 맑은 하늘에서 내리는 태양은 한국이랑 별반 다른 게 없다. 하지만 내리는 볕에 달구어진 도로의 모습은 조금 다르다. 아니 많이 다르다. 쌩쌩 달려 지나가는 자동차가 익숙한 나는 이곳에서 보는 빈 도로의 모습이 어색하다.
도로엔 늘 수많은 차들이 지나다녀야 하고, 울려대는 자동차 엔진 소리라던지, 아스팔트를 누르며 지나가는 타이어의 마찰음이 쉴 새 없이 들려야 했다. 그게 아니라면, 뭘 그리도 잘못을 했는지 세상 사람들이 다 들을 수 있게 자기 앞을 지나가는 차의 뒤꽁무니를 향해 던지는 경적소리, 지나는 사람도 긴장이 될 수 있을 만큼 빨리도 울리는 얼마 남지 않은 신호등의 급박한 알림음도 들려와야 했는데, 여기선 그 조차 들을 수 없었다.
좌우를 살피고 확인된 상황이라면 일을 가로지르는 일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어디 있는지 모를 횡단보도를 찾아 길을 건너는 것이 어려운 일이다. 조용히 눈치를 살피다가, 젭 싸게 건너기 성공!!
그러다 갑자기 눈에 들어온 마차에 셔터를 눌렀다. 이곳은 아직 사라지지 않은 마차가 도로 위를 달리고 있다. 우리의 도시는 말들이 귀하기도 했다. 제주도에서 말을 키워 육지로 내어 보내는 것도 한계가 있었고, 부자만 탈 수 있었다.
심지어 도로가 포장이 되고 자동차가 들어오면서 말은 사라졌다. 흙먼지가 달리던 도로 위에선 말들이 달리기 쉬웠을 것이다. 비가 오면 비 오는 대로 달리는 맛이 있었을 것이고, 볕에 말라버린 흙먼지 길은 딱딱해서 달리는 맛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달릴 수 있는 길이 없다. 아마 이곳의 말이 아스팔트 위를 달린다는 것은 사람의 욕심일 것이다. 아무리 말굽을 갈아 끼울 수 있다고는 하지만 비 온다고 신는 장화 같은 느낌을 아닐 것이다. 뜨겁기도 하고, 다치기도 할 것이다. 심지어 도로가 별로 좋은 컨디션이 아니라면 오히려 흙길을 달리는 것보다 못할 것 같다.
그래서 난 사람이 끌어주는 자전거를 타는 게 마음이 더 편할 듯싶다. 아직 타 본 적은 없지만, 사람이 자신의 능력을 돈을 벌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으로 보인다. 여행객에게서 돈을 뜯어 내고자 사기 칠 궁리는 하는 사람들 보단 백배 더 좋다. 내 능력이 닿고, 내 심장이 허락하는 일을 하는 것이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이익이 될 것이다.
당연히 영화엔 악역도 있고, 선역도 있다. 세상을 그대로 대변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별반 다르지 않다. 착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고, 악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다. 누구를 악인이라 정할 수는 없다. 상대 배역에 따라 악도 될 수 있고 선도될 수 있는 것이 우리 삶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어울려 살다 보면 상대방에서 상대 배역일 될 수 있다.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나는 쿠바에 들어온 두 번째 날이자. 첫 번째로 맞이 하는 아침이다. 마치 흑백 영화 시절에 들어와 그곳을 탐험하는 주인공이 된 기분이다. 영화가 흑백이라도 촬영은 색이 가득한 모습을 촬영했듯이. 이곳의 형형색색 모습을 한 귀한 소품들이 주인공을 돋보이게 만들어준다.
세상에 하나뿐인 오늘, 그리고 이 시간의 주인공인 나를 위한 첫 장면이 시작된다.
도로 위의 오래된 자동차, 자전거 택시, 마차 택시 그리고 시내버스가 질서 있게 움직이고, 나는 그곳에서 자유롭게 걷고 있다.
사실 중요한 대사를 준비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유명한 무엇인가를 찾는 게 아니다. 단순하다. 배가 고파 아침을 줄 수 있는 식당을 찾으러 나왔다. 일본식 덮밥을 주는 곳이라니, 숙소 로그북에 적힌 정보를 따라 오비스포 안쪽에 있는 작은 가게를 찾아 나선다.
일단 배가 고프니 아침을 먹는 게 우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