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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euN 쓴 Oct 27. 2024

4. 네모 상사 속 세상

'아버지는 택시드라이버' 노래가사가 공감이 되는 이유는 아마 나의 아버지도 택시 운전사이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까지도 택시를 운전하고 계시는데, 내가 초증학교를 들어갈 때쯤부터 운전을 시작하셨으니 40년이 다 되어 간다. 나름의 직업적 사명감도 있으시고, 일을 하는 것에 대한 자부심도 있으셔서 현재까지도 운전을 하고 계신다. 


우리가 초등학교를 다닐 시절해는 한국의 경제가 조금씩 좋아지는 중이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택시를 이용했고, 택시를 타는 사람이 늘면 늘수록 아버지는 퇴근시간은 정비례로 늘어났다. 오전, 오후로 나누어 일주일에 한 번씩 일찍 출근하는 날과 늦게 출근하시는 날이 있었는데, 어릴 때라 2조 2교대가 뭔지도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무척이나 힘들고 고된 일을 하고 계셨다.


나의 유년시절은 별것 없는 평범하고 보통의 시절이었다. 그 시절 다 그렇게 살았겠지만 우리도 여유롭지 않은 가정 형편으로 단칸방에 온 가족이 살았다는 것이 기억이 남는다. 하루는 텔레비전이 너무나 보고 싶은데, 아버지는 야간 운전을 하고 들어오셔서 주무시고 계셨다. 주무시는 아버지의 등 뒤에서 텔레비전을 보며 동생이랑 신나게 웃고 있으면 꼭 엄마가 텔레비전을 끄셨다. 나는 그게 불만이었다. 남 들자는 시간에 자고 다 같이 일어나 텔레비전을 보면 얼마나 좋을까? 자고 있는 아버지를 위해 꺼야 되는 상황이 싫었다.  


우리가 때를 쓰는 바람에 엄마는 못 이겨서 아버지가 주무시는 동안 텔레비전을 끄기만 하다가 나중엔 소리만 줄여주시고 화면을 볼 수 있게 해 주셨다.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절대로 볼 수 없을 것 같던 화면을 본다는 게 세상 행복이었다. 소리를 듣고 싶었지만 참았다. 소리를 올리다가 아버지가 깨는 날엔 불호령이 내려졌으니까 말이다. (물론 보던 텔레비전도 꺼야 하고)


소리 없는 텔레비전은 생각보다 몰입도가 높았었다. 작은 네모의 상자에 눈이 뺏겨 한참을 시간도 가는 줄 모르고 텔레비전을 보기만 했던 것 같다.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뽀뽀뽀', 'TV유치원 하나 둘 셋' 같은 프로그램이 끝나도 계속해서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같은 어른 프로그램도 즐겨봤고, 자막이 지금처럼 잘 나오는 것도 아닌데, 재미있었다. 아이들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재미없었을 프로그램도 즐겨봤다. 


전혀 새로운 세상이었다. 낯설고 신기한 세상이었다. 즐겁고 슬픈 세상이었다. 재미있고 유익한 세상이었다. 그런 모든 일이 작은 상자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텔레비전에 눈을 떼기 싫을 정도였다. 늘 보기만 하던 나는 보는 것으로 채울 수 없는 무엇 인가에 궁금증이 생겼다. 


저 상자 안으로 들어가면 어떨까? 

내가 하면 저 연기를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아침 드라마의 과장된 연기를 보며 어린 마음이 꿈틀거렸다. 그렇다고 당장 텔레비전 속으로 들어갈 생각은 아니었다. 다만 연기를 하는 사람의 모습이 너무 좋아서 그 모습을 배우고 흉내 내고 싶었을 뿐이다. 사실 새로운 것을 배워 보는 것을 두려워하지는 않았다. 다만 연기를 배움에 있어서 


내가 할 수 있을까?

나도 배우처럼 연기를 해볼 수 있을까?


하는 의문만 가득했었다. 텔레비전이 나의 유일했던 놀이었으니 당연하게도 텔레비전 속을 동경하고 궁금해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맹모가 세 번을 이사하면서 환경의 영향을 최대한 이용하기 위한 노력을 했던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러니 나도 어린 시절부터 친구처럼 봐온 텔레비전 속 모습에 궁금증과 호기심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 일지도 모른다.


궁금증과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한 나의 시작은 작은 극단에서였다. 연기를 전무적으로 가르치는 곳은 아니었는데, 나 또한 전혀 모르는 분야였기 때문에 꼭 뭔가를 배워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보다, 어떤 것을 하는지 궁금했고, 어떻게 상황이 돌아가는지도 이해할 필요가 있었다. 


일주일 중 나의 일상 대부분을 썼다. 연극을 한다는 것은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서 책을 읽는 독서 모임이나 화인 한 병 마시는 일과는 전혀 다른 일이었다. 매주 또는 매일 모여도 작품하나를 만들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는지도 모르게 지냈다. 취미로 생긴 일들이 나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누군가에게 자랑할 수 없는 수도 있는 소소한 일상이지만  스스로에겐 대단한 일상이 되었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일이 지루하고 반복적인 일상을 뛰어넘을 수 있는 디딤돌이 될 수 있다. 좋아하고, 궁금한 일. 그런 일들이 결국 나의 일상에 녹아들어 간다면 전혀 달라진 일상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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