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사람들은 바쁘다. 시간은 멈추질 않으니 뒤쳐지기 싫은 사람들은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그들 틈에 나도 멈추지 않고 걷는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오는 다리를 걷는다. 씽씽 달리는 차들을 옆구리에 끼우고, 하염없이 걷는다. 혹시 지나가는 선량한 사람이 눈치 없이 돕는다고 차를 세우고 다리 위에 있는 나를 신고라도 할까 봐 러닝복을 입고 나왔다.
하.. 나는 신동이라는 말을 듣고 컸다. 수학이며 과학, 심지어 미술까지 잘하는 아이였다. 영재원을 다녔고, 좋은 대학까지 나왔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다루는 실력이 좋아 전산학과에 진학했다. 성적은 늘 우수했고, 다루지 못하는 프로그램이 없을 정도로 실력은 뛰어났다.
친구들과 만든 동아리는 크래킹 동아리였다. 흔히 해킹이라고 알고 있는데, 사실 해킹은 방어, 크래킹은 공격에 중점을 두고 프로그램을 짠다. 우리는 프로그램을 뚫어내는 걸 주로 하는 편이었다. 남들이 짜 놓은 크래킹 프로그램을 분석하기도 하고, 만들어 보기도 하면서 동아리는 성장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고 했던가. 해킹 대회에 나갔다 하면 우승은 우리 차지였다. 국내외 할 것 없이 우승을 차지했고, 이런 수상 경력으로 동이리 동기들은 각 회사로 러브콜을 받아 취업도 했다.
나는 나의 실력을 믿는다. 내가 뚫을 수 없는 프로그램은 없다고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공기업, 사기업 할 것 없이 홈페이지를 크래킹 하고, 우리의 흔적을 남겼다. 심지어 비싸게 유통되고 있는 유명한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만든 업무용 프로그램을 무료로 쓰는 로직을 만들었다. 처음엔 엉성했지만 핵심을 찾고 나니 나머지는 동기들이 알아서 다 작업을 했다. 매일 설레는 마음으로 놀이처럼 크래킹을 했다.
나는 내 실력에 심취해 있었다. 동아리 동기들과 어느새 자기 할 몫을 하는 후배들의 실력이 높아졌다. 이들과 동아리실에서 거의 지냈고, 세상에 수많은 프로그램을 크래킹 하는 걸로 시간을 보냈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보다 크래킹 하는 시간이 더 즐거웠다.
시간은 어느덧 흘러 졸업을 앞두게 되었다. 동아리에선 다음 대회를 앞두고 회의가 한창이었다. 나도 마지막 학기를 보내는 중이라 바쁘긴 했지만 후배들이 대회에 참가에 우승할 수 있도록 함께 도왔다. 계속 우승을 해 와서였을까? 후배들과 모의로 진행한 경기에서 후배들이 처참하게 졌다. 다들 나처럼 어릴 때부터 영재라는 소리를 듣고 컸지만 타고난 재능을 이기기란 어려운 듯싶었다.
보다 못해 명예를 위해 내가 짜 놓은 로직이 담긴 USB를 후배에게 넘겼다. 사실 이건 넘기면 안 되는 건데, 본인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로직은 자신의 지문과도 같아서 고민하고 계산하면서 짜 놓은 로직엔 본인의 특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주지 않을뿐더러 받아도 잘 사용하기 어려운 것이 바로 기본 로직이다. 물론 이게 마스터 키처럼 영원히 쓰이는 건 아니고, 현재 유행하는 프로그램 패턴에 맞게 짜인 것이라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로직을 짜야만 한다.
대회 준비하는 모습만 보고 나는 졸업을 했다. 졸업하자마다 미국에서 러브콜을 받아 미국으로 건너간 나는 유명한 보안 회사에 취업하게 되었다. 우리 동아리가 우승하게 되면서 스카우터가 나에게 제안한 자리를 졸업하고 나서야 입사하게 되었다. 역시나 프로그램을 다루는 일은 나에게 가장 쉬운 일이었다. 회사는 어려움이 없고, 편한 일뿐이었다.
일이 편하긴 하지만 미국으로 건너와 적응하는 일은 별개다. 사람들을 사귀는 일도 쉽지 않고, 문화에 적응하는 것도 오래 걸리는 일이었다. 주말에 할 일 없이 있다가 커피 마시러 간 카페에서 우연히 게시판에 붙어 있는 광고글 하나를 보게 되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
미국에 아는 사람도 없이 적적했는데,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생각에 찾아가 접수를 했다. 아카데미 같은 분위기에 일주일에 한 번씩 그림을 그리고, 완성하지 못한 그림을 집에 가지고 가서 완성시켜 가지고 오면 되는 것이었다. 우리가 그리는 그림은 주로 모작이었다. 유명한 작가의 그림을 보고 모방하면서 그림을 배워 나가는 방식의 수업이었다.
수업은 크게 지루하지 않았다.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것도 즐거웠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일도 쉬웠다. 그렇게 매주 시간은 흘렀다. 미국생활이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전공을 살린 직장은 어려운 일이 없었고 취미생활이 있어 평일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낸 나날이었다. 연봉도 오르고 더 좋은 집으로 이사도 했다. 나의 직책도 팀장으로 올랐다.
늘 평화롭던 어느 날 새벽 시끄러운 전화에 일어났다. 당직 직원의 전화였다.
"팀장님, 큰 일입니다. 트레킹 시도입니다."
전화를 받자마자 회사로 달려간 나는 상황을 주시하며 필요한 조치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놓은 덫에 걸린 범죄자들을 역추적하고 동시에 우리 서버의 보안을 한 단계 더 잠갔다. 그렇게 새벽을 보냈다. 전쟁이 있어야 영웅이 생기는 것처럼 크래킹 시도가 있던 다음날 우리 보안팀은 영웅이 되어 있었다. 나는 그 덕에 보너스와 승진을 했다.
큰 고비 뒤엔 평온한 나날들이었다. 새로 얻은 아파트엔 따라 그린 그림이 쌓여만 가고 있었다. 그런 몇 년의 시간을 보냈다. 이젠 보안 전문가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의 자리에 올랐다. 회사는 넘볼 수 없을 정도의 자산을 보유한 대기업이 되어 있었고, 몸집을 거대해져 갔다.
인수 합병을 통한 공격적 시장지배가 원인이었을까? 허술한 계열사 서버망을 통해 우리 회사 메인서버로 공격시도가 들어왔다. 크고 작은 문제들은 이제 쉽게 처리가 가능 했다. 별 볼일 없는 공격 따윈 강도 높은 업무에 포함 되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당직서는 날이었다. 보통의 어느 날처럼 공격을 막고 있는데, 뭔가 익숙한 로직이 보였다. 순간 대학시절 후배에게 넘긴 로직이 떠올랐다. 나도 모르게 탄식이 흘러나오는 순간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내가 만든 로직을 파훼할 수 없었다. 이젠 내가 만든 로직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변해버린 로직이지만 어쨌든 손을 쓸 수 없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내가 쏜 화살에 맞아 추락하는 새가 되어 버렸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나를 반기는 이는 없었다. 미국의 법적 논리에 속수무책으로 위약금을 물어주고 나니 수중에 남은 돈도 없었다. 무엇보다 실패를 했다는 생각이 나를 더 추락시켰다. 내가 놓은 덫에 내가 걸리 아둔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보안 전문가에겐 공격으로 뚫린 벽의 주인이라는 꼬리표는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소문이라는 게 그렇게 무서운 거였다니...
한강은 처음 걸어 본다. 겁이 나서 텀블러에 독한 양주를 담아 왔다. 마시면 조금이라도 나아지려나... 뭔지 모를 뜨겁고 울컥거리는 게 올라오지만 신경 쓰지 않고 계속 걸었다. 차 들은 내가 보이지도 않는지 더 씽씽 달려가고 내 손에 들려진 텀블러는 가벼워진다.
속이 안 좋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속에 있던 것들이 입으로 쏟아져 나왔다. 난간을 잡고 한참을 쏟아내고 나니 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내 자리에 쓰러졌다.
누가 깨우는 소리에 눈을 떴다.
본 적 있는 천장과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형 일어나요. 형!! 졸업식 날 빠지면 어떡해요!! 형"
나는 부스스 눈을 뜨고 일어나 지금 상황에 대해 생각해 봤다. 내가 앉아 있는 동아리실은 너무나 익숙하고, 주변의 사람들은 내 후배가 맞는데, 나는 어떻게 된 걸까? 후배들이 짐을 정리하고 내 양복을 가져다 주기까지 한참을 정신 없이 멍하니 앉아 있었다.
조금 정신을 차리자마자 내가 USB를 건넨 후배를 찾아 다시 나의 파일을 받았다. 그리곤 망치로 부숴버렸다, 내가 가진 노트북도 하드를 꺼내 부숴버렸다. 내가 짠 로직은 이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내 머리에만 있을 뿐이다.
나는 꿈을 꾼 것이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한 긴 꿈을. 하지만 그 꿈에서 나는 많은 잘못을 했고 그 잘못으로 인한 결과가 어떤 건지 경험했다. 유명 회사의 노력과 연구가 들어간 소프트웨어를 누구나 쓸 수 있는 무료 파일로 만들어버리고, 유명한 작가의 모작을 그리면서도 정의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당연한 것으로만 여긴 것이다.
누군가의 실적이 마치 내가 신이 된 것처럼 주무르고, 남이 만들어 둔 것을 도둑처럼 쓰던 날들에 대한 벌이 었을까?
신이 있다면 나에게 메시지를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꿈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 어떤 상황도 믿지 않았을 테니까. 나를 너무나 잘 아는 신이 주신 교훈을 날려 버릴 순 없으니 이제부터 한강 가는 일이 없도록 잘 살기만 하면 된다. 같잖은 능력을 믿지 말고, 남이 만들어 놓은 것을 그대로 인정해 줄 수 있는 삶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