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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euN 쓴 Jan 23. 2022

쉘 위 쿠바?

아바나 여행의 시작은 오비스포 거리


영화 쉘 위 댄스에서 주인공 리처드 기어는 지하철에서 만난 한 여자에 이끌려 뒤를 따라간다. 결혼도 했고, 직장도 잘 다니고 있었지만 늘 권태로웠다. 그는 처음 본 여자를 따라가다, 그녀가 들어간 건물로 들어가게 되는데, 그곳이 바로 댄스학원이었다. 그는 오기를 가지고 댄스학원을 들어가게 되고, 등록까지 해버린다. 늘 무기력한 권태로운 삶에 흥미가 없는 표정으로 살던 그는 점점 다른 곳에서 변화를 얻어간다. '춤' 하나에 매료되면서 점점 활력을 찾아간다. 처음엔 유부남이 매력적인 여자를 좋아하는 이야기로 보였으나 오히려 그가 찾은 것은 다른 것이었다. 바로 춤이다.


스탠리를 만난 건 멕시코의 '산크리스토발 데 라스카사스'라는 도시의 민박집이었다. 형은 형의 스타일이 있었고, 나는 나 대로의 여행을 하고 있었다. 여행은 각자의 색을 띠고 있고, 각자의 여행이 소중하다. 그곳에서 만나 스탠리는 한국 나이로 나보다 형이다. 주로 형이라는 호칭을 쓰지만 다른 이에게 소개를 할 때면 스탠리라고 부른다. 한국 이름을 물어본 적도 있지만 자주 부르는 스탠리라는 이름에 그 이름은 어느새 잊어버리고, 개인적인 연락을 할 때로 스탠리라고 부른다. 형은 이미 내가 멕시코를 떠나오면서 헤어졌다. 하지만 방향이 같아서일까? 비슷한 시기에 쿠바에 들어오는 일정이라 여행하는 동안 같이 동행하기로 했다.


동행하기로 했지만 각자의 여행이기에 애써 맞추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야 부담이 적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함께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큰 행운을 얻는 것이다. 스탠리라면 미지의 쿠바를 함께 열정적으로 보낼 수 있을 것이라 확신이 들었다. 나도 가끔 어려운 동행자를 만날 때도 있다. 늘 좋은 사람을 만났다고 생각했지만 의외의 장소에서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 나를 힘들게 할 때가 있다. 사람은 좋아 보이지만 나와 맞지 않은 성향에 내가 눈치를 보거나 나의 눈치를 본다면 그것을 알게 되는 즉시 헤어지는 게 맞다. 때로는 작은 의견차이로 싸우는 경우가 있는데, 그 여파가 생각보다 길게 미친다. 얻어지는 게 없는 여행이 있겠냐마는 그런 상황에서는 여행을 하는 것보다 그 상황에서 나와서 조금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좋다.


마찬가지 이유에서 여행은 구속과 속박이 없다. 자유롭게 일정을 짜고, 필요하다면 함께, 불 필요한 일에는 과감히 서로를 배려하는 여행을 하면 된다. 그런 면에서 이미 멕시코에서 알게 된 형은 더할 나위 없는 동행이다. 멕시코에서 만난 이후로 쿠바에 들어가는 일정만 있을 뿐 다른 계획에 대한 공유는 없었다. 각자의 여행을 존중하고 상황에 대한 이해가 있으니 가능한 일이다. 그런 동행을 만나는 시간이 얼마나 기쁘지 않았을까? 무거운 가방을 들고 나에게 달려드는 호객꾼들을 뿌리치고 어렵게 시내 도착해 찾아간 숙소에다 짐을 풀자마자, 부둥켜안고 서로를 맞이했다. 인사는 그렇게 길지 않았다. 하지만 뜨거웠다. 


반가워하던 인사를 마치고, 마치 어린애들이 새로 산 장난감이 있는 방으로 나를 데리고 가 듯, 쿠바를 자랑하듯 나를 데리고 밖을 나왔다. 3일 먼저 쿠바에 입국한 형은 마치 가이드가 된 것처럼 그의 노련한 안내에 따라 쿠바의 여행자 거리인 오비스포 거리로 나왔다. 원래 그 새로운 나라에 도착하면 처음이 어렵다. 어디가 어디인지 구별이 잘 안 되고, 경계해야 하고 위험한 지역은 지도에 나와 있지 않으니 경계를 하며 며칠은 다녀봐야 경험이 쌓여 조금 낫다. 난 쿠바에 도착한 첫날부터 쉽게 다닐 수 있게 되었다. 미리 책을 찾아보지 않아도, 전혀 길을 헤매지 않고 걸어 다닐 수 있었다. 쿠바 3일 선배의 가이드에 따라서 말이다.


국회 의사당 건물 @가려면지금쿠바

아바나의 초 저녁은 정말이지 말로 표현 다 못하는 야경을 만날 수 있다. 해가 넘어가고, 어두움이 내려오면 도시가 만들어 낸 인위적이고 화려한 조명이 하나, 둘 켜진다. 인간이 전기와 전구로 만들어내는 것이 야경라면 이곳의 야경은 지는 해와 몇 개 달려 있지 않은 건물 외벽의 전구에서 나오는 빛이 전부이다. 그런 낮은 조도의 빛은 어스름한 파스텔 빛을 만들고 반면에 선명해진 오래된 자동차의 페인트는 그 색을 더해 낸다. 


형편이 어려운 집이라 방에 초를 켜고 사는 집에 사는 사람은 선명하지 않은 밝음에 불편한 생활을 하게 된다. 하지만 반대의 형편에 사는 사람은 오랜만에 식탁에서 분위기를 내기 위해서 식탁 위에 촛불을 켜고 밥을 먹는다. 전깃불이 있지만 분위기를 위해서 말이다. 내가 쿠바에 산다면 불편함을 아주 크게 느낄지도 모르겠다. 전기를 마음껏 쓸 수 없으니 밝은 조명을 사용할 수도 없을 것이며 에어컨을 마음껏 틀어놓고 지낼 수도 없을 것이다. 방마다 불을 켜두고 컴퓨터와 텔레비전을 한 번에 켜두며 생활했건 나는 지금 한 명의 여행자로 쿠바에 서 있다.  다소 불편하겠지만 어스름 내려오는 해와 밝지 않은 조명은 또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 주기 충분한 소품이 되었다.


해 질 녘의 스며드는 빛으로 아바나는 비로소 완성된다. 도로의 모습이 어디서 본 적이 없는 것 같으면서도 익숙한 모습을 하고 있다. 뜨거운 태양 아래 그늘숲을 만들어 주던 나름의 이름난 건물은 어느새 그 역할을 다하고 그늘막의 기능을 중단한다. 밤이 더욱 화려한 한국의 어느 도시와는 다르게 주황색 가로등이 색을 덧입혀 준다. 퇴근길의 도로를 채워 움직이지도 못하게 만들어 버린 자동차는 어디 갔는지 보이질 않고, 낮에 출발했던 올드카 드라이브 차량이 가끔씩 보이는 정도이다. 익숙함을 느끼게 된 것이 내가 태어날 때쯤 내가 살 던 동내와 비슷해서였을까?


쿠바의 낡은 자동차 @가려면지금쿠바

아바나의 도로는 두 가지의 차들이 도로를 달린다. 오래된 구형 자동차와 오래된 신형 같은 구형 자동차들이다. 둘 다 미국의 경제 제재에서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차는 필요하지만 더 이상 차가 들어올 수 있는 길이 없어지자 자구책으로 고칠 수 있는 부분을 최대한 고쳐서 타기로 했다. 심지어 맞지 않는 부품도 깎아서 맞는 모양으로 바꿔서 갈아 끼워 쓸 정도로 열악한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아이러니하게 발전한 관광상품이 바로 '올드카 드라이브 투어'이다.


어린 시절의 향수 일까? 본인들의 나라에서 생산되어 한 시절을 누비려 달렸던 자동차들이 이곳에서 다시 도색이 되어 쿠바의 빛을 받아 반짝거리고 있어 반가워서였을까? 매일 아침이면 삼삼오오 모여든 관광객들로 붐비는 오비스포 거리의 입구다. 저녁시간엔 차들이 아바나를 충분히 돌아보고 돌아와 기사도 자동차도 쉬는 곳도 오비스포 거리 입구다.


오비스포 입구 @가려면지금쿠바

기사들이 가끔 손님이 지나는 동안 호객을 하긴 하지만 심하게 달려들어 귀찮게 하지는 않는다. 길가에 세워진 차량의 사진을 찍는 건 늘 반갑게 맞이해 주는 기사님들에게 인사를 하고, 헤밍웨이의 자취를 볼 수 있는 수많은 장소가 위치하고 있는 거리로 들어갔다. 헤밍웨이는 쿠바를 사랑했던 사람 중에 한 명이다. 그래서 그는 쉬고 싶을 땐 쿠바에 들어와 자신이 늘 묵었던 숙소에서 지냈고, 자주 가는 술집에서 술을 마셨다. 아침을 먹는 식당도 그의 당골집이 있고, 심지어 그가 앉았다는 의자는 따로 빼두기까지 했다. 헤밍웨이를 사랑하는 쿠바사람들은 그의 흔적을 모조리 남겨두었다. 그래서 이곳 오비스포 거리에는 그의 자취가 유독 많이 남아 있다. 


헤밍웨이 술집. 라 플로리다 @가려면지금쿠바

숙소에서 오비스포거리로 걸어 들어가면 입구 가장 앞에 위치하고 있는 헤밍웨이의 단골 술집인 '라 플로리다'가 위치하고 있다. 그 명성에 걸맞게 저녁시간이 되니 발 들여놓을 공간도 없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으로 들어가 봤다. 안쪽에는 밴드가 쿠바의 음악을 쉴 새 없이 연주하고 있고, 흥에 오른 사람들은 몇 잔을 마셨을지 모르지만 또다시 바텐더에게 쿠바의 술 '다이끼리'를 주문하는 소리로 더 시끌하다. 


가게 안은 도무기 복잡해서 누가 누구와 한 그룹 인지도 모를 정도이다. 한쪽에서 자리가 나면 망설이지 말고 일단 앉아 주문을 할 수밖에 없는 곳이다. 멍하니 기다리고 서 있다가는 자리 잡기는 쉽지 않다. 밴드가 연주를 계속하는 동안에도 사람들이 밀려들어 오고, 자신의 차례가 된 사람들만 헤밍웨이의 옆에 앉아 술을 마시며 과거의 어느 날 이곳에서 술을 마시던 헤밍웨이의 기분을 조금이라도 느끼고 싶어 한다. 사진을 찍고 가야 하는 건 모든 나라 공통이라 사진을 찍기 위해선 줄도 서있어야 했다. 

라 플로리다 안쪽 자리 @가려면지금쿠바

이 가게에 헤밍웨이가 자주 앉았던 자리엔 그를 기념하기 위해 그와 닮은 동상을 두었다. 아마 마치 그와 마주 앉아 술잔을 기울일 수 있는 기분을 느끼게 하는 것이리라. 그 기분에 취해 또다시 한 잔, 두 잔 마시다 보면 어느새 오늘 쓰려고 환전해 온 페소가 바닥을 보일지 도 모른다. 순서가 정해지지 않았지만, 사진을 찍고 나서 동상을 한번 만지고 나면 다시 기다리는 사람들이 들어가고, 똑같은 일이 반복된다. 음악의 소리가 흥을 싣고 더욱 심장을 때릴 때가 되었을 때쯤 우리는 많은 사람들의 흥에 겨운 춤을 뒤로하고 다시 밖으로 나와 첫날의 아바나를 즐기기 위해 나섰다.

어둠이 내려온 오비스포 @가려면지금쿠바

형이랑 그간의 이야기를 하며 야간 산책으로 결국엔 산 프란시스코 성당 앞에 섰다. 이곳엔 성당만큼이나 유명한 '파리의 신사'라는 동상이 서 있는데, 이 동상만 보고 돌아서야 했다. 성당은 해가 진 저녁이 되면서 출입이 불가능했고, 바로 앞에 있는 동상에 더 눈이 갔다. 이 동상은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는데, 노숙자가 이 거리에서 성당에 미사를 드리고 나오는 사람들에게 적선을 구하기도 하고 가게에서 구걸을 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을 파리에서 온 사람이라 소개했고, 걸인이지만 인사성이 밝고 사람들을 웃게 만들어주는 그를 사람들이 그를 좋아했다. 그래서 그게에도 이름이 붙게 된 것이다. 


그러던 중 그가 사망하자 그를 기념하기 위해 예술가가 그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평범하게 생긴 동상이지만 사람들이 수염과 손가락 잡고 동시에 발을 밟고 있으면 행운이 온다는 이야기도 있고, 혹은 다시 쿠바에 돌아온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떤 전설이 맞는 말인지 모르지만, 중요하지는 않다. 그가 여기에 있고, 나도 이곳을 즐기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오비스포의 밤거리 @가려면지금쿠바
파리의 남자 @가려면지금쿠바


늦은 저녁시간이라도 다른 골목길과는 다르게 여러 나라 관광객들을 만날 수 있었다. 각국의 사람들이 여행자의 거리를 한 번씩 산책을 하고 말레꼰을 들어가기 위해 성당 앞인 이곳을 무조건 지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한다. 그들이 편하게 이곳을 산책할 수 있는 이유는 다른 관광지처럼 지나는 사람에게 호객을 하는 사람들이 없다는 점이다. 덕분에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편안한 걸음으로 산책을 나설 수 있었다. 어쩌면 이런 편안함을 원했을지도 모르겠다. 여행의 긴장이 주는 설렘이 있지만, 그런 설렘이 심장을 무리하게 움직여 피로도가 높아질 때쯤, 여행하기 좋은 쿠바에 도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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