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멕시코의 하늘을 가로질러 카리브해의 푸른 바다 위를 짧게 지나면 미국이라는 경제 강국에 힘에 못 이겨 결국 폐쇄적인 경제 체계에 놓인 나라, 쿠바를 만나게 된다. 여행을 하면서 강도당한 여권을 발급받기 위해 만난 대사관 직원이 미국으로 들어가 캐나다를 거쳐 한국으로 가려는 나의 계획을 막아섰다. 일단 미국은 국외에서 만든 단수 여권으로는 입국이 금지된 나라여서 멕시코 여행 이후 일정을 변경해야 할 수밖에 없었다.
\나의 아메리카 드림이 무너졌다. 브로드웨이에서 공연하고 있는 뮤지컬이 보고 싶었고, 브루클린에 있는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마시고 싶었다. 밤 새 불이 꺼지지 않는 카지노의 도시 라스 베이거스에도 다녀오고 싶었다. 원하지 않았지만 시장 길 한복판에서 만난 강도님들 덕분에 그렇게 바라고 원하던 내가 미국을 못 들어가게 되었다는 사실에 열이 뻗쳤다.
며칠은 머리를 싸고 누워 있을 정도로 쉽게 털어 버릴 수 없었던 사건이었다. 어쩔 수 있겠는가? 못 들어간다는 사실은 이미 결정이 난 상태니 차선책을 빨리 구하는 것이 남은 여행기간을 가치 있게 보낼 수 있는 일이니 말이다. 대사관에 있는 직원 분들의 도움으로 나의 임시 여권으로 살 수 있는 나라와 갈 수 없는 나라를 구별했고, 나의 남은 여행 일정을 변경했다.
그중에서 쿠바는 내가 가장 마지막으로 들렀다가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 하는 나라로 선택되었다. 다행히도 쿠바를 입국하기 위해서 별도의 비자 관련 문제도 없고, 여행하기 어렵지 않다는 이야기에 한국에서라면 너무 멀리 있어서 쉽게 갈 수 없는 쿠바를 한국으로 가기 전 마지막 여행지로 결정했다.
쿠바는 올드카의 나라, 채 게바라의 나라, '노인과 바다'의 헤밍웨이의 나라, 시가의 나라, 럼의 나라처럼 몇몇 대명사를 가지고 있는 곳이다. 거기에 하나 더하자면 영화 '분노의 질주'에 나오는 주인공이 질주를 하던 바닷길 '말레콘'이라는 곳도 명소로 꼽을 수 있다. 잘 알지 못했을 때 쿠바가 앞에서 열거한 몇 개의 대명사로만 유명한 곳이라 너무 볼 것이 없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하지만 쿠바를 다녀와 누군가에게 쿠바를 이야기를 하게 되는 날이 오니, 깊게 남은 쿠바의 모습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길 해야 할지 모를 만큼 수많은 명사들이 떠다닌다.
우선 대표적인 이미지는 잠겨있는 쿠바다. 쿠바는 경제적으로 미국의 압력으로 활동의 제약이 있다. 물자도 부족하고 공장도 없으며, 농업과 어업으로 얻어진 1차 생산물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 보니 미국을 피해 독자적인 생존 방식이 필요했는데 지금 시대에 자급자족은 북한 정도가 가능할까 아주 어려운 일이다. 심지어 북한도 러시아나 중국을 그들이 우방국으로 삼으며 경제 활동을 이어나갈 만큼 독립적인 국가 운영은 국제 사회에서 어려운 일이 되었다.
쿠바도 우방국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의 눈치를 보고 있기는 하지만 독자적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미국이 보고 있는 상황에서 대놓고 무역국을 구할 수는 없었지만 가장 근접한 국가이며 산업의 발전이 제법 수준급으로 올라온 나라와는 암암리에 거래를 할 수 밖에 없다. 그 선택지가 멕시코였다.
인접국 중에서 유일하게 멕시코는 쿠바에 대한 협력이 자유로운 편이다. 이마저도 미국의 눈치를 보는 것 같지만 꾸준하게 공생의 관계를 이어나가는 중이다. 심지어 미국은 쿠바와 바다 하나를 끼고 인접한 국가지만 캐나다에서 쿠바로 들어오는 비행기만 하용 할 뿐 미국에서 오는 비행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역시 나도 멕시코에서 비행기를 타고 쿠바로 여행을 시작했다. 당연히 미국이나 캐나다로는 입국을 할 수 없던 나였기 때문에 멕시코의 여행도 채 정리하지 못한 채 어느 3월의 보통의 날에 나는 비행기에 올라 쿠바로 향했다.
2시간도 채 넘지 않은 짧은 시간, 비행기 계단을 따라 내려와 쿠바의 땅을 밟았다. 곧바로 뜨거운 활주로에서 허름한 건물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햇빛이 밝은 곳에서 어두운 안쪽으로 들어와 순간적으로 깜깜해진 시야를 거두기 위해 눈을 몇 번 깜빡거리고 나서야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첫인상의 쿠바는 입국장부터 남다른 분위기였다.
가장 눈에 띄는 건 바로 의상. 공항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의상부터 남달랐는데, 정복을 입고 있는 것 같지만 각자의 스타일대로 바꾸어 입고 있는 직원들의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예를 들면 화려한 스카프를 하고 있거나 짙은 화장. 셔츠의 단추를 3-4개는 풀고 있는 모습이다.
공항직 공무원이라는 틀에서 나의 상식을 가둬 두어 시야가 좁아진 탓일까? 사람들의 복장에만 시선이 갔다. 남자와 여자가 모두 그랬다. 정해진 유니폼의 셔츠와 바지 그리고 블라우스와 스커트는 있는 것 같았다.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이 같은 디자인에 색까지 같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부분 말고는 그들이 입고 있는 곳에서는 같음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차이가 있어 보였다.
어느덧 도착한 입국 심사대에서 입국 심사를 하는 사람이 나의 여권과 폴리스 리포트를 보며 나를 따로 불러냈다. 사실 나는 볼리비아를 친구를 같이 여행하다 길에서 강도를 만나 여권과 소지품을 강도당했었다. 급하게 대사관에 방문해 만들어 둔 단수 여권과 우리 대사에서 발급한 보증서와 경찰서에서 만든 리포트를 들고 입국한 나머지 심사대에서 순간적으로 이목을 잡아끌게 되었다.
(참고로, 단수 여권이라는 것은 여행을 계속할 수 있는 여권이긴 하지만, 한국을 들어가면 다시 여권을 만들어야 하는 여권이다. 일반 여권이랑 차이는 없지만 한 번의 여행을 마치면 쓸 수 없는 여권이다. 조금 더 덧붙이면 미국을 포함한 몇 나라에선 단수여권으로 입국이 불가능하다.)
난 당장엔 여권이 필요하고, 복수 여권을 받자고 그 나라에 있기엔 감정이 이미 상해버린 탓에, 그냥 단수 여권으로 여행을 이어갈 예정이었다. 필요한 서류는 남미의 몇몇 나라는 스페인어를 사용하고 있어 볼리비에서 작성된 경찰 서류가 있어 다행히 여행을 하고 있었지만, 쿠바에 입국 심사에선 조금 복잡한 절차가 있는지 한쪽으로 빠져 조금 특별한 조사를 받아야 했다. 사무실도 아닌 테이블 하나 있고 나는 앉지 못하는 장소에 교무실 끌러온 학생처럼 쭈뼛거리며 서 있고, 내 앞에선 직원이 턱에 손까지 대고 서류를 읽고 있었다.
쿠바에서 북한 사람들도 올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일까? 나를 북한 사람으로 생각하나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그렇게 조사한 다기보단 처음 보는 여권과 서류에 간단한 조사를 한 것뿐이었다.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조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쿠바에서 출국하는 비행기 표도 보여주니 수월하게 일을 마칠 수 있었다.
짐을 찾을 수 있는 곳에 도착해서 모니터를 보니 늦게 온 나를 기다리지도 않고 레인은 돌아가고 있었다. 이미 가방은 나온 건지 나오기 전인지, 따로 조사를 받고 오다 보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나마 한쪽 기둥 옆에 기내에서 만났던 부부가 아직 서 있는 거 보니 내 짐이 아직 도착 전이라는 믿음에 나도 그 옆에 서서 기다렸다. 무료하게 기다리는 중에 핸드폰을 켰지만, 잡히지 않는 와이파이는 역시 쿠바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하는 거 없이 순식간에 한 시간이 지나버렸다. 지금까지 가방이 나오지 않은 건 뭔가 일이 잘 못 되어 가고 있다는 증거. 거기까지 생각이 들자 바로 직원을 찾아가려고 주위를 살폈다. 이미 우리 비행기를 탄 사람들은 모두 나가고 없고, 다음 비행기마저 도착해 가방을 찾는 곳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했다. 다급하게 직원을 찾아 움직이는데, 쿵하고 파란 커버에 쌓여, 굴러 나온 나의 배낭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흙먼지가 잔뜩 묻어 있는 가방을 찾아들고, 이리저리 살폈다. 늦게 나온다는 것은 가방에 문제가 있었거나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이 없어졌을 것이라는 생각에 구석에서 가방을 열어 살폈다. 중요한 물건을 두는 곳에 손을 넣어 확인했고, 외관을 살폈다. 특별히 없어진 것이 없어 다시 가방을 정리하고 불안했던 마음도 정리를 했다.
쉽지 않게 입국 수속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는데, 곧 비가 오려고 하는지 묵직한 공기가 폐 깊숙이 들어왔다. 다시 공항으로 들어가 가방에 비를 막아줄 커버를 씌우고 중요한 물건은 옷으로 한번 더 감싸 두었다.
가방을 앞으로 뒤로 하나씩 메고 있으니 어깨는 무겁고, 처음 도착한 곳은 인터넷이 활성화되지 않는 곳이라니, 첩첩산중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다. 그나마 정부의 허가를 받고 관광객들을 태울 수 있는 쿠바의 택시기사들만 나를 반기고 있는 공항 출입구는 그들의 "올라" 하는 인사에 귀만 바쁘다.
나는 그들을 뒤로하고 가장 가까운 버스 정류장을 찾는데, 그때. 바로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하고 있었다. 나는 버스 번호도 못 봤지만, 공항에서 출발하는 버스는 하나밖에 없다고 했으니, 무엇인가에 홀린 듯 정류장으로 뛰어갔다. 놓치면 언제 오는지 알 수 없는 버스를 타러 무거운 배낭을 메고 뛰어갔다. 하지만 아쉽게도 버스엔 이미 타고 있던 손님으로 가득해 문도 다 닫히지 않을 정도로 만원이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다음 버스를 기다리기 위해 한걸음을 물러 섰다.
그때. 버스 뒷 문이 열리면서 두 사람이 뻗은 손이 나의 가방 끈 양쪽을 잡아끌어 올렸다. 꽤나 무거울 나의 가방과 나의 몸뚱이를 들어 올려 버스에 태웠다. 그저 그렇게 나의 몸은 이미 만원이 되어 발을 디딜 수도 없는 곳으로 빨려 들어갔고, 소중한 보물을 감싸 안아주듯 뒷문은 닫혔다. 나의 배낭이 아직 타지 못했음에도...
쓰레기 통을 밟아 더 들어갈 수 없을 때까지 만들었음에도 양발로 더 눌러 넣는 사람처럼 내 가방을 다시 욱여넣어주시는 쿠바 사람들의 협동심에 무사히 버스 뒷문에 발만 올라선 채 시내버스가 다니는 큰길로 나올 수 있었다. 안 되는 일은 없다고 했던가? 불가능해 보이기만 했었는데. 어느새 시내로 가는 버스 정류장 앞에서 P12번 버스를 기다릴 수 있게 되었다.
하필 기억에 담고 싶은 상황에서는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을 수 없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 순간에 손도 쓸 수 없었으니 당연히 그랬겠지만 이 상황을 두고두고 기억에 담고 싶었는데 말이다. 내리게 된 정류장에 버스가 섰을 땐 나와 함께 뒷문에서 나를 반겨주던 사람들이 기쁘게 손을 흔들어 주었는데, 그 모습도 잊히지 않는다.
쿠바 여행의 시작이 평범하지만은 않았다. 비행기에서 내려 보통의 입국 심사를 거치고, 미리 예약해 둔 숙소에 주소를 받아 들고 공항 밖으로 나와 금방 환전한 돈으로 택시를 타고 편안하게 시내를 들어가면서 여행을 시작한 수많은 사람들과는 다르게 조금 신나는 여행을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이미 쉽게 만날 수 없는 쿠바 사람들과 숨결까지 뒤섞여 버스 뒷문에서부터 버티고 서 있던 나는 이미 내외할 것 없이 다 튼 사이라 할 수 있겠다. 이게 쿠바다.
우려와 염려가 전혀 없지는 않지만. 이곳에서 만들어갈 여행은 길었던 나의 여행을 마무리하는 중요한 시간이었다. 다른 나라의 여행을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쿠바에 대한 이야길 먼저 쓰고 싶어진 것은 나의 길고 긴 여행의 쉼표를 찍고 다시 한국으로 들어오기 던 마지막 여행지이기 때문이다.
나름 설렘으로 글을 쓰는 이유는 쿠바에서 앞으로 벌어질 이야기가 어쩌면 아주 평범하고 보통의 여행 일지도 모르지만, 그런 이야기조차도 누군가에겐 특별한 이야기 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여행은 누군가 선물해 준 초콜릿 상자와 같다. 내가 상자를 열어 그 안에 든 초콜릿을 하나씩 먹었을 때, 은박의 포장을 열기 전까지 기대하고 입에 넣을 때처럼 여행이란 그 일정을 다 마치기 전까지 아무것도 알 수 없는 것이 많다. 그런 사건과 상황에서 내가 선택한 수많은 선택지는 여행을 수만 가지의 경우의 수 중에 하나로 만들 수 있다. 가벼운 일정에서부터 특별한 일상까지 평범할 리 없는 매일이 쌓여 만든 여행은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특별함이 된다.
습기 가득한 공기와 오래된 차에서 나오는 매연이 가득한 깨끗할 수 없는 대기에서부터 무엇인가 모를 호기심이 피부에 닿는다. 아무도 없는 집 안 장롱 속 작은 네모 비디오테이프를 찾는 소년처럼, 쉽게 열리지 못해 잠겨있는 작은 나라 쿠바에서의 여행이 기대된다.
그것이 비록 '동물의 왕국' 다큐라 할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