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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euN 쓴 Feb 17. 2022

난 내가 먹을 때 제일 예뻐

뭐 먹고 다녀?


그나마 아바나엔 먹을 만한 음식이 있다. 아주 맛있는 음식이 있는 것은 아닌데, 그래도 관광객들을 위한 식당은 많이 있다. 조금만 발품을 팔면 골목 사이마다 쿠바 사람들도 자주 찾는 식당들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워낙 관광객들이 많이 방문하는 도시라 다른 도시에 비해 많은 레스토랑과 식료품점이 눈에 띈다.


아침이 되면 숙소에서 준비된 간단한 아침을 먹고 밖으로 나온다. 주로 숙소에서 묵게 되면 'desayuno' [데사유노] 라고 하는 아침을 포함한다. 풍부한 재료는 아니지만 숙소에서 준비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준비해 준다. 나름 식사의 구색을 갖춰 나온다.


아침을 먹고 예정된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밖으로 나오면 조용한 아침의 아바나를 만날 수 있다. 다수의 나라 수도는 아침이 전쟁터와 같다.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는 말 그대로 평일 오전을 이야기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하철 역으로 뛰어가는 사람들과 통근버스를 기다리는 길게 늘어선 줄 위의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쿠바는 조금 다른 모습니다. 이른 아침은 다소 조용한 모습을 보인다. 언제부터 서 있었는지 모를 차들은 초등학생 조카의 입에 빠진 이 처럼 듬성듬성 서 있고, 곳곳이 팬 도로 위를 지나는 유모차가 덜컹거리며 지나간다. 아이들은 똑같은 교복을 입고 학교를 가는 모습도 보인다. 


공항에서 도심에 도착했을 때 우연히 만났던 발레 학교를 다니는 학생을 본 적이 있었다. 머리를 한껏 당겨 한 줌으로 묶어 낸 머리를 말꼬리 마냥 흔들며 나를 지나쳤다. 외국인이 낯설어 그런지 늦어서 그런 건지, 내 앞을 아주 빨리 지나가 버려 그 모습이 어렴풋하게 기억난다.


다소 느린 아바나의 아침은 오히려 조용해서 좋다. 낯선 도시의 외지인으로 아무런 관심도 받지 않아도 되는 나는 한적한 골목을 나와 처음으로 보이는 카페를 들어가 커피를 한잔 주문했다. 커피의 원산지답게 커피의 가격은 너무나 저렴하다. 우리 자판기 커피 한잔 정도의 가격이다. 커피를 주문하고, 계산을 하니 바로 그 자리에서 잔으로 건네받아 들었는데, 처음엔 내가 잘못 주문한 줄 알았다. 


커피 잔이 소주잔만큼이나 작다. 손잡이 있는 게 신기할 정도로 작은 잔에 커피를 미리 끓여둔 커피 주전자에서 바로 부어준다. 커피는 예상엔 아메리카노와 같은 맛 일 것 같지만, 마셔보니 설탕이 많이 들어있는 설탕 커피 맛이다. 소주잔 같이 작은 이 한잔으로 될까 했지만, 카페인은 충분히 채울 수 있다. 물론 양은 적었다. 

커피만 마신다고 끝이 아니었다. 골목 여기저기를 다니다 보면 입이 심심해서 중간에 간식을 먹고 싶어질 때가 있다. 과자를 먹고 싶어도 쉽게 살 수도 없고, 도넛 가게에서 파는 커피와 도넛 세트도 먹을 수 없다. 물론 카페에 함께 파는 케이크를 먹을 수도 없었다. 그나마 길가엔 샌드위치 가게도 많이 있지만 우리가 흔히 먹을 수 있는 모닝빵에 얇은 햄 한 장에 치즈를 넣어주는 게 전부인 곳이다. 


그러던 중에 아바나의 강남, 베다도 지역에 갔을 때 발견한 집이 하나 있었다. 숙소로 돌아오는 버스 정류장 앞에 밤새워 영업을 하는 핫도그 집이었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주문을 하고 기다리는 곳으로 보이는데, 맛이 보장된 이곳을 그냥 지날 수 없었다. 심지어 이 날은 저녁도 못 먹어서 이거라도 먹으면 집으로 가는 길에 허기를 달래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줄을 서서 주문한 메뉴는 기대한 것보다 다소 부실해 보이는 모습에 놀랐다. 하지만 가격을 생각하면 이 정도에 만족해야 한다. 단돈 천 원대의 가격에 간식이라면 충분히 만족할 만한 음식이다. 소스를 듬뿍 뿌려주는 핫도그를 집어 들고 한 입 물었다. 역시나 퍽퍽한 빵 사이에 조금 식감이 떨어지는 소시지는 그 맛을 소스에 의지 할 수밖에 없었다. 


건조하고 푸석한 빵에 목이 막혀 음료를 찾아봤지만 시원한 콜라는 없고, 맥주캔 밖에 안 보인다. 어쩔 수 없이 주문한 맥주와 함께 서서 먹는 핫도그는 야구장에서 먹는 맛에 비할 바 없겠지만 딱 그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 


때때로 여행을 하면 한국에서 생활할 때를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여행을 한다는 것은 그곳의 문화와 생활을 배우고 이해하는 것이니 비교를 많이 하면 할수록 여행이 즐겁지 않다. 낯섦을 즐기고, 불편함을 인정하기만 하면 오히려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을 이해하게 된다.


편한 게 좋다. 추위에 떠는 것보다 따뜻한 이불속이 좋고, 다 식어 맛이 없는 이름 모를 수프를 한 술 뜨는 것보다 반찬 몇 개 없어도 우리 집 밥상이 좋다. 하지만 이과수 폭포 수를 직접 맞아 보는 것이 좋고, 식은 도시락을 먹으며 다녔던 로드 트래킹이 졸을 때가 있다. 


현재가 무한하게 좋을 수는 없다. 다소 권태로운 일상에서 조금의 변화는 큰 변화를 주기도 한다. 길 이름 모를 이 거리에 불이 켜진 한 가게에서 먹는 그저 그런 맛의 핫도그는 허기진 배를 집까지 안전히 모셔다 줄 연료를 채워본다. 맛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입에 넣고 나니 허기는 사라진다. 이렇게 가끔 누리는 불편함이 그동안 느낀 편함을 더욱 감사하게 만든다.

쿠바의 간식 핫도그 그리고 맥주

저녁은 아바나를 떠나기 전 마지막 식사였다. 숙소에 공통으로 쓰는 주방은 사람들이 자고 있는 방 문을 마주하고 있어 대화를 하기가 조금 불편한 곳이었다. 낮시간 동안의 지친 여행을 정리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보니, 우린 밖에서 먹기보다 방 안에서 조촐히 먹고 치우기로 했다.  


이 날 방바닥에서 먹은 치킨과 쿠바의 전통 쌀 밥에 먹던 맥주가 작은 보상이다. 그 보상에 밤이 깊어지고, 할 이야기도 깊어지면 접시 바닥이 보인다. 맥주는 주둥이를 입에다 대고 거꾸로 물구나무를 세워도 더 이상 나올 게 없다. 한 병씩 쌓여 그 개수가 연필 한 타가 되었을 때. 창을 열어 음식 냄새를 뺐다.


아쉬운 마지막 날 쿠바의 아바나 어느 동네의 작은 여행객이 묵고 있는 까사는 늦은 밤까지 불이 켜져 있었다. 바닥은 차갑고, 음식 냄새 때문에 열어둔 창에서 들어오는 습하고 훈기까지 넘치는 바람은 딱 씻고 나왔을 때 기분 좋게 불어준다. 


이제는 아바나를 떠나 비냘레스로 가기로 했다. 당장 버스표를 사둔 것도 아니었고, 숙소에 차를 예약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모든 일은 다 될 것이라 믿고 있다. 이렇게 쿠바에서도 먹고 자는 것에 걱정이 없고 염려가 없으니 오늘 하루도 잘 보낸 것 같다. 늘 그래 왔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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