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표가 여러 개
비냘레스는 쿠바에서 생산되는 시가의 제조 농가가 가장 많이 있는 도시이다. 사실 시가를 잘 알 못하고, 담배도 펴지 않는 나는 쿠바를 여행하기 전까지 한 번도 시가를 실제로 본 적은 없고, 영화에서나 책의 사진으로만 봐왔으니 호기심이 생기긴 했다.
아바나의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버스에 올라 다소 긴 버스 여행의 마지막 종착역이 바로 비냘레스 작은 마을이었다. 아바나의 대 도시적인 느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단층짜리 건물들만 양쪽으로 옹기종기 모여 있는 한적한 도시이다. 그 도시의 행인도 없는 한산한 도로 위에 우리를 내려주고 버스는 떠나버렸다.
우리가 내린 공원 앞이 도시의 중심지라고 했던 것 같은데, 공원 안에는 몇 없는 사람들이 인터넷을 하러 모여있다. 그런 작은 공원 앞에 우리가 내리기 무섭게 호객꾼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런 모습은 관광지의 여느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택시 기사들과 숙소를 추천하려는 호객꾼들이 우리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저마다 자신이 추천해야 하는 집들을 소개하고, 이곳에서 가 볼 수 있는 관광지가 그려있는 지도와 명함을 건넨다. 이곳은 특별한 산업이 없이 시가 농장을 운영하며 얻어지는 수입이 유일하다. 그러니 그들의 이방에서부터 온 사람들. 즉 타바코(Tabaco) 잎을 말아서 피우기 위해 오는 사람들과, 자연을 즐기기 위해 오는 관광객들이 이곳의 유일한 수입원이 될 수밖에 없다.
비냘레스라는 도시를 도착해서야 처음 알게 된 우리도 이분들 중에 한 분에게 도움을 받기로 했다. 알아본 것 없이 왔으니 이들 중에 우리에게 좋은 숙소를 보여주는 분과 함께 숙소를 보러 가기로 했다. 물론 우리의 발품으로만 숙소를 찾아다닐 수 있었지만, 가방을 들고 여기저기 다니기엔 조금 지쳐서였다.
일단 몇 개의 후보를 보여주신 분과 함께 숙소를 직접 보러 가기로 하고 따라나섰다. 숙소를 정할 땐 아무래도 직접 보고 결정해야 하니, 일단 공원을 떠나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숙소부터 보기로 한다. 마침 아주 가까운 곳에 우리가 보러 갈 숙소가 있었다.
비냘레스 일정을 책임져줄 나의 숙소는 제일 먼저 보게 된 이 집이 되었다. (절대로 귀찮아서 이 집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나름 집 안을 둘러보고 나서 선택한 집이다.
이 집 역시나 정부에서 여행자 숙소로 지정이 된 파란색 '까사'라는 표지판이 붙어 있다. 쿠바에서 운영하는 여행자 숙소는 이 숙소와 마찬가지로 파란색 닻 표지가 있어야 한다.
관광산업을 위해 정부에서 허가한 숙소는 거의 모든 설비가 비슷하게 만들어져 있어야 한다. 예를 들면 에어컨이 있어야 하고, 집주인과 다른 화장실을 쓸 수 있어야 한다.
외국인들이 머무르는 숙소는 돈이 된다. 여행자들이 내는 돈은 쿠바 사람들이 내는 돈과 단위가 다르다. 그래서 여행자들이 지불하는 돈은 크기가 다르다. 수입에 따라 세금이 달라지는지까지는 모르지만 의사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버는 곳이다.
우리가 선택한 숙소의 입구 한편에 마련된 작은 흔들의자는 건물 색과 같은 파란색 바탕에 파도가 만들어내는 포말과 같은 크림색이 곁들여진 나무로 만들어져 있다. 일단 그 의자에 반해 이곳으로 들어오긴 했다. 마음으로는 그렇게 정했지만 수압도 확인하고 침대도 보러 들어가야 했다. 문을 열고 안쪽으로 들어오면 새롭게 색을 입힌 곳처럼 맑은 초록색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검정으로 벽이 칠해져 있다. 천장에서는 작은 형광등 전구 몇 개의 불 빛이 이 공간을 밝혀주고 있다.
집주인분도 좋은 분이라 이곳에서 비냘레스를 보내기로 했다.
손쉽게 숙소를 정해 무거운 가방을 던지고, 바로 밖으로 나왔다. 물론 방에는 시원하게 에어컨 하나 틀어 놓고, 현관을 잠글 열쇠 하나 들고 밖으로 나오니 점점 궁금해졌다. 이곳이 어떤 곳인지, 무엇이 있는지, 풍경은 어떤지가 하나하나 다 궁금해졌다. 그래서 씻지도 않고 작은 가방에 카메라 하나 들고 밖으로 나왔다.
처음 여기에 내렸을 때와 같이 한적한 도로다. 다만 달라진 점이 있다면, 도로의 양쪽으로 여행자를 위한 식당이 가게 안을 환하게 밝히고, 고기 굽는 숯 불향을 피워대고 있었다.
아마 우리가 숙소를 정하기 위해 다녔던 시간이 조금 일렀을 때였을까? 식당이 문을 열지 않아서였을까? 닫혀 있었던 식당은 금세 근처에 묵고 있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활기를 찾은 식당을 앞을 지나 조금 더 마을을 둘러보기로 했다.
이 작은 도시마을은 사실 특별한 것이 없는 시골 마을과 닮아 있다. 고즈넉하다고 하면 알맞은 단어일까? 거리가 한산하고, 사람도 많이 다니지 않는다. 하지만 건물이 낡고 빛이 바래서 일까? 고즈넉하다는 단어가 아주 잘 어울린다.
비냘레스로 들어올 때 타고 들어온 버스에서 본 사람들을 길 위에서 다시 만났다. 별로 크거나 넓지 않은 곳이라 그런지 만나는 빈도가 높다. 거기에다가 숙소가 인근에 모여 있어서였을까? 낯익은 사람들이 제법 보인다. 더군다나 인터넷을 쓸 수 있는 공원이 하나뿐이라 모두 그쪽으로 모여드는 게 당연하기도 했다.
날이 흐려서 더 그랬을 것이다. 맑고 볕이 좋은 날에는 멀리까지 시야가 좋아 오히려 더 넓어 보였을 텐데, 어두워진 자연조명 덕분에 마을이 더 작아 보였다.
마을은 작지만 이뻤다. 마을을 이루는 크고 작은 집들의 앞마당에서는 다양한 꽃나무가 심어져 있고, 따뜻한 계절이라 초록의 나뭇잎이 풍성하게 달려있다.
좋은 계절에 여행을 하는 행운을 가졌다. 푸른 잎을 보면서 숙소로 발길을 돌렸다. 약속한 시간이 있었는데, 숙소를 예약하면서 주인의 추천으로 저녁을 집에서 먹기로 했다. 밖에 열려 있는 식당을 이용할 수도 있었지만, 인상 좋은 아주머니의 음식 솜씨도 궁금했고, 이곳의 가정식을 맛보고 싶어서 고민 끝에 집에서 먹기로 했다.
물론 쿠바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아바나 클럽' 럼주를 한 병 사다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해 얼마 지나지 않아 주인이 집에서 만들어 온 음식들을 우리가 묵는 숙소의 식탁 위를 가득 채웠다. 바다가 가깝지 않은 내륙이라 생선음식을 시키는 게 괜찮을까 싶었지만, 제법 큰 접시도 가득 찰 정도의 생선을 받아 들고 나니 걱정보다 그 맛이 궁금해졌다.
생선은 약간 흙 맛이 났다. 향은 그렇지만 소스가 풍미가 돋궈준다. 같이 나온 감자튀김은 눅눅한 바삭함이 있다. 나쁜 느낌은 아니다. 누군가 나를 위해 차려준 집밥은 배도 부르게 하지만 마음도 차오르기 한다.
컵엔 방금 따라 놓은 럼주가 출렁거리고, 가정식으로 나온 쿠바의 저녁은 하루 여정의 딱 맞춤 일정이다. 좋은 음악이 빠진 게 아쉽지만, 대화가 가득하니 음악이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그렇게 나란히 앉아 마시는 럼주에 더해진 저녁은 또 한 페이지를 기록한다.
P.S.
처음에 이 표지판을 보고 아무리 해석하고 싶어도 쉽게 해석이 안 되는 바람에 스탠리에게 물어보고, 집에 돌아와 사진 찍은 표지판을 집주인에게 보여주며 물어보기도 했다.
어렵게 알게 된 의미.
어린이 보호구역,
나는 유괴범 조심이라던지. 장난 금지 같은 표지인 줄만 알았는데. 의외의 반전 매력이 넘치는 표지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