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하나 빌려 봤어요.
비냘레스는 쿠바에서 시가를 가장 많이 생산하고 있는 도시다. 일단 마을에서 가까운 시가 농장이 많이 있고, 재배 면적도 가장 넓다. 심지어 농장을 보려고 아바나에서 당일로 왔다 가는 사람들도 있는데, 사람들이 많이 방문하는 농장은 예약을 하고 방문하기도 한다. 우리야 이곳에 아무런 계획은 없이 왔지만, 이곳에 농장 방문이 제일 해 볼만하다는 이야기는 듣고 왔던 터라 한번 가봐야 하나 어찌할까 고민했다.
쿠바의 장점은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아도 늘 하루가 꽉 채워지는 느낌을 받는다는 점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산책하는 게 좋았고, 특별히 뭘 보려고 나섰던 기억이 없다. 그냥 밖으로 나오면 근처를 걸어 다니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게 일과였다. 마냥 그렇게 지내는 시간이 좋았다. 씻고 나가기 귀찮아서 알어나 바로 자면서 입고 잤던 옷을 입고 밖을 돌아보고 들어오기도 했다. 괜히 산책한답시고, 옷을 새로 꺼내 입기도 그렇고, 사진을 찍을 것도 아니었다. 누굴 만나는 약속도 없는 이른 아침이라 따로 뭘 준비하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들어왔다.
땀 을로 적셔진 옷을 들고 샤워실로 들어가 빨래와 샤워를 같이 해버린다. 날이 좋아서 땀이 많이 나긴 했지만 좋은 날씨에 옷도 아주 잘 마르긴 했다. 산책이라 생각하고 다녔던 길은 비냘레스 가이드 책에 나오는 곳도 아니었다. 그저 우리 숙소에서 나와 도심지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기만 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눈앞에 펼쳐진 새로운 풍경을 볼 수 있다. 나무는 가로수 보다 더욱 싱그럽게 입을 달고 있었다. 아직 이른 아침이라 안개는 살짝 내려앉아 있고, 답답하지 않게 슬리퍼를 신고 나왔더니 그 바람에 종아리 뒤에는 흙이 붙어 있다. 별로 특별한 날이 아니지만 가끔 경로를 다른 곳으로 잡아 보는 것을 좋아한다. 늘 다니는 곳과 다른 곳으로 다니는 것은 평소와 같음에서 오는 권태로움을 극복하기 좋은 시도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걷다 보면 전혀 생각지 못한 새로운 곳을 만나게 된다. 예를 들면 번화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형태가 아닌 전혀 새로운 형태의 집 모양을 보기도 하고, 쉽게 소리를 높여 소리가 담을 넘을 수 없는 도심과는 다르게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음악도 듣기 좋게 흘러나왔다. 그러니 핸드폰을 보고 있지 않아도 지루하지 않다. 이어폰을 끼고 있지 않아도 심심하지 않다. 며칠 그렇게 아침을 보내고 나니 기분이 저절로 좋아지는 것 같았다.
비냘레스 근교를 돌아보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는데, 우선 우리가 아바나에서 비냘레스로 들어오던 날 내렸던 공원 바로 앞에서 정기적으로 다니는 버스가 있다. 우리나라의 투어리스트 버스와 같은 느낌인데, 한 번 비용을 지불하고 표를 사게 되면 수시로 운행되는 버스를 아무 때나 올라타고 다음 정류장으로 갈 수 있다. 마치 원데이(One Day) 패스 표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버스가 정차하는 정류장은 비냘레스의 주요 장소에 위치하고 있다. 사진에 나오는 표지판 지도나, 터미널에 가면 받을 수 있는 이곳의 지도를 보고 궁금한 곳에 도착하면 버스에서 내려 잠시 둘러보며 시간을 보내면, 또 다른 버스가 도착한다. 그럼 그 버스를 타고 다시 다른 장소로 이동하면 되는데. 시간은 둘러보기 편하게 간격이 정해져 있다. 이런 스케줄에 맞출 수 있다면 제일 편하고 좋은 방법이 될 수 도 있고, 경제적인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단점은 볼거리가 많이 있지 않아도 다음 버스가 올 때까지 그곳을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이다. 만약 숙소로 돌아와야 하는 상황이라도 해도 쉽게 올 수 없고, 매번 다른 버스를 타야 하기 때문에 시간표도 숙지하고 있어야 하는 단점이 있다.
또 다른 하나의 방법은 택시를 빌려 다녀 볼만 한 곳을 다니는 방법이다. 다소 비용은 버스보다 더 들지만 이것도 사람들 네 명이서 나누어 내면 버스 타는 비용이랑 같은 금액으로 맞출 수 있다. 일부러 택시 기사들은 그렇게 요금을 정해 놓고 사람들을 모집하기 때문에 버스보다 요금이 더 저렴할 수는 없지만 장점으로는 보고 싶어 하는 곳에 자유롭게 갈 수 있다는 점과 관광지의 해설도 해주신다는 장점이 있다. 원하는 시간이나 이동하고 싶은 순간이 오면 망설일 필요 없이 다음 장소를 부탁하면 된다. 출발하기 전에 노선을 보고 어딜 가볼지 미리 이야길 할 수 있는데, 멀리 갔다가 돌아오면서 둘러보는 것을 신청했다.
비용과, 시간을 생각하더라도 택시를 빌려 다녀오는 게 좋은 방법인 것 같아 우리 말고 동행할 두 명의 여행자를 기다렸다. 택시를 타기 위해 줄이 길게 늘어선 모습을 볼 수 있는데, 함께 여행할 수 있는 파트너는 앞에 서있는 사람들이거나 나의 뒷사람이 우리의 일행이 될 가능성이 높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택시를 타고 여행을 하는 편이라 그런지 우리 앞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눈에 띄게 빠진다. 때마침 우리는 앞에 서 있던 프랑스 커플과 함께 동행하기로 했다.
누가 우리의 파트너가 될지 모르니 그저 먼저 온 사람들이 앞에서 사람 수를 맞춰 타면서 우리 차례가 오길 기다렸다. 그러다 우린 앞에 서 있던 프랑스 커플 와 동행하기로 했다. 우리가 차를 타기 전부터 어떤 경유도 둘러볼 것인지 협의를 했고, 요금은 내려서 지불하기로 하고 택시에 올랐다. 처음으로 도착한 곳은 비냘레스 동굴로 불리는 곳이었다. 따로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는 곳인데. 이곳 비냘레스가 크게 발전된 곳이 아니라 이곳도 생태가 아주 좋은 환경이었다. 크고 풍성한 나무들이 우거진 환경에 숨겨진 입구가 있는 동굴 입구는 마술사의 비밀 장소처럼 가려져 있었다.
동굴이야 동남아시아를 여행하는 동안 몇 번이나 가본 적이 있고, 한국에서도 동굴을 들어가 본 적이 있었지만, 이곳 동굴을 들어가 보고 싶었던 가장 주된 요인은 주변에 자라는 크고 풍성한 잎을 가지고 있는 원시림의 나무들이 훨씬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마치 과거로 들어가는 관문의 느낌을 가진 비냘레스 동굴은 사람들이 서서 들어갈 수 있을 만큼 큰 입구를 자랑하고 있었다. 좌, 우를 책임지고 있는 나무들은 잎의 크기와 생물학적인 모습이 가로수와 달랐다. 마치 아바존 밀림에 와 있는 느낌을 받았다. 안 그래도 남미에 들어와 브라질과 볼리비아에서도 아마존 방문의 기회를 놓쳐버린 채 집으로 돌아가는 게 못내 아쉬웠는데 비냘레스의 숲을 보니 이러한 풍성한 숲 속이라도 걸을 수 있음에 감사했다.
동굴은 크거나 웅장하지 않다. 오히려 작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다만 동굴의 곳곳에 조명을 켜 두어 어두움에 돌과 벽을 흥미롭게 보이게 해 뒀다. 베트남의 작은 섬에 있는 동굴도 엄청난 규모의 조명으로 원래 가지고 있는 모습보다 흥미롭게 보이게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려고 하는데, 아마 동굴이라는 특성에 빛이라는 기술을 더해 흥미롭게 만든 것 같았다. 빛과 어둠을 이용한 현명함에 놀라움이 생길 정도였다.
비냘레스 동굴은 통로를 다니는 것보다, 사실 마지막에 배를 타고 나와야 하는 짧은 거리가 매력적이다. 동굴을 걸어가는 동안 약간의 시원한 바람을 느꼈는데, 그 바람이 조금씩 많이 불어오는 것 같더니 동굴 속에 물길이 나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게 길지 않은 동굴 투어는 배를 타는 게 제일 재미있는 부분이다. 사공이 타고 운전을 하고 배를 순환시키는데, 매력적인 배 타는 구간은 아쉽게도 그 거리가 그렇게 길지 않았다.
동굴에 갈라진 틈과 그 사이로 들어오는 빛이 더욱 그 끝을 신비하게 만들어 줬다. 입구는 밀림의 숲에 감춰진 동굴을 이리저리도 빠져나오면 당황스럽게도 물을 만난다. 그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이곳을 이용하는지 모르겠지만 후손들은 작은 조각배를 띄워 사람들을 출구까지 싣고 나와 출구로 안내한다. 실제 배를 타고 나오는 것까지 더해보면 심심한 길만은 아니었다. 단순한 거리는 짧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좋은 경치와 동굴의 시원한 바람에 배를 타고 나오는 경험이 나쁘지 않았다.
자연이 만들어 낸 석회 동굴을 지나오다 보면 마지막쯤 달라지는 풍경에 넋을 놓고 출구를 바라보게 된다. 아마 그런 게 자연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늘 봐오던 나무들과 물 위를 다니는 배들도 이곳에서 그 의미가 다르다. 배 없이 지날 수 없는 동굴의 끝. 거기에 아마존 같은 우림이 주는 신비로움은 비냘레스 국립공원의 매력을 더해준다.
짧은 투어를 마치고 오니 택시는 우리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우리가 나오자 우리를 태우고 선사시대 벽화라고 이름 붙은 벽화가 그려진 곳으로 데려다주었다. 이 벽화는 근래에 그려진 그림인데. 사람들이 선사시대 벽화라고 부르면서 이곳이 마치 선사시대부터 그러진 그림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방문하기도 한다.
이곳도 동굴과 마찬가지로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는 곳인데, 택시 기사가 우리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반대했다. 그림이 크고 벽이 울퉁 불퉁해서 아래에서 보면 잘 보이지도 않고, 한눈에 다 보이지 않아 안에서 보는 것보다 밖에서 보는 게 더 잘 보인다고 했다. 그러면서 택시를 돌려 나가는 척 슬쩍 매표소를 뚫고 들어간다. 그 찰나에 사진을 찍으라 일러주니 우리 모두는 사진기를 창 밖으로 꺼내 사진을 찍어댄다.
차는 살짝 여유를 두고 차를 돌리면서 우리의 사진 촬영 시간을 만들어주셨다. 그렇게 차 안에서 편하게 사진 몇 장 찍고 나니 출구로 나와 조금 떨어져 벽화가 잘 보이는 곳에 차를 세웠다.
이곳을 우리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 추천을 해주니 역시나 믿음이 들었다. 현지인답게 사진을 찍었을 때 잘 찍히는 자리를 기막히게 잘 알고 있었다. 그림은 멀리서 봐야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여기서 실감했다. 만약 우리가 절벽 아래에서 보면 사실 그렇게 감동이 있거나 그렇지 못했을 것이다. 높고 키기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을 텐데, 조금 떨어진 곳에서 보니 정말 잘 보이고 정확하게 전체를 볼 수 있었다. 역시 현지에서 좋은 사람을 만나면 이렇게 같은 것을 보러 가더라도 더 잘 보이고,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들어가 보고 싶다면 표를 구입해서 들어가면 되는 것이라 우린 잠시 고민을 하다가 안 들어가기로 했다.
우리끼리 사진을 몇 장 찍고, 우리와 함께 온 프랑스 커플들도 서로 기억에 남을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다. 안 가봤지만 하지만 그곳은 우리가 생각한 것처럼 낭만적이지는 않았다. 다들 말을 타는 승마체험을 통해 벽화를 보는데 말이 똥을 싸놔서 걸을 때마다 똥을 지르밟고 서는 그렇게 타면 새 차를 반드시 해야 할 수밖에 엷다는 이유도 박혀줘서 고마워
더욱 신뢰를 쌓게 된 우리는 기사님의 안내에 따라 다시 조그마한 언덕으로 올라갔다. 높은 건물이 거의 없고, 눈으로는 비냘레스의 온전한 땅을 보기 쉬웠다. 이렇게 나무가 많은 이유는 비냘레스 전체는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석회 언덕이 곳곳에 있고, 열대 우림과 같은 나무들로 빼곡하다. 아바나에선 볼 수 없는 풍경에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모습을 한참이나 내려다보았다. 이곳의 자연이 어떤 지질학적인 의미를 가지는지 솔직히 잘 알지는 못하지만 비냘레스부터 아바나까지 떨어진 물리적인 거리보다 훨씬 먼 과거로 온 느낌이다. 비냘레스는 이런 매력인 것 같다. 특별한 건물, 유명한 관광지 하나 없지만, 이 자연이 비냘레스의 보물이자 쿠바의 재산과 같은 곳일 것이다.
비록 시가를 만드는 농장을 보러 가지는 못 했다. 목적은 시가를 만드는 공장이 있으면 직접 시가를 만들어 보는 것이었다. 두 가지 모두를 다 고르고 싶었지만 평일엔 주말에서도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쿠바에서 볼 수 있는 귀한 역사를 보고 자연을 만났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숲이지만, 이젠 어느 나라에 특별한 도시에서 찾아봐야만 볼 수 있다는 게 아쉽다.
비냘레스의 비밀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여기저기를 고민도 없이 찾아다녀주신 기사님 덕분에 우리가 편하게 동네를 다녀 볼 수 있었다. 숲 속 작은 동굴부터 벽화와 국립공원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까지 어딜 찾아봐야 할지 고민하지 않고 따라다니기만 했는데, 비냘레스를 다 본 것 같다. 현지의 기사님을 잘 만난 덕분에 우리는 전혀 불편함 없이 여정을 마칠 수 있게 되었다.
글을 마치면서 생각 난 이야기가 더 있는데, 우리가 돌아보고 온 다음 날 우리가 한국 사람임을 알아보는 기사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심지어 그분이 한국말을 잘하시는 분이었다. 한국사람은 모두 자신과 투어를 하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이랑 할 수 있냐며 푸념을 하시는 기사분이었다. 그분은 한국어를 할 수 있는 게 대단한 자랑이었고 가이드를 하는 좋은 수단이 될 수 있었겠지만, 우리도 '우리 기사님'의 가이드를 받고도 충분히 비냘레스를 즐기고 갈 수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높이는 반면 다른 사람을 깎아내리는 듯 한 말투는 전혀 정감이 들지 않았다. 우리는 그분의 몇 마디가 그렇게 반갑지 않았다.
그저 이 분위기에 끼어 들어와서 훼방을 시도하는 너무나 많으니 혹시나 방해하는 사람들이 생기면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