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속 그 장면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과 방송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보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모두 '걸어서 세계속으로' 라는 여행 다큐 프로그램을 즐겨 봤다는 것이다. 전부는 아니지만 그래도 나와 대화를 길게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동의 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좋아하는 프로그램으로 꼽을 만큼 걸어서 세계속으로는 인기가 있었다. (여행에서 만나지 않은 사람도 좋아하는 사람 많이 봤음)
처음 그 방송을 봤을 땐 너무 어렸고, 재미있는 다른 프로그램이 더 많았었다. 그래서 생방송으로 보기 보단 내가 궁금했던 나라가 나오는 편을 골라서 보곤 했다. 나레이션도 일반 성우분에서 연기자들 혹은 가수분이나 예능을 하는 분까지 출연하시면서 더욱 재미있었다. 물론 여행을 했던 PD님이 직접 소개를 할 때가 제일 재미있었다. 방송은 코로나 시기엔 촬영을 할 수 없게 되어 이미 찍어둔 영상을 재방송하기도 했는데, 문득 이전에 봤던 방송도 기억이 나면서 추억에 젖기도 했다. 방송은 코로나 시기엔 더욱 귀한 방송이었다. 쉽게 나갈 수 없었던 여행을 대신 소개해주는 피디님이 감사하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물론 쿠바에 대한 방송도 있었다. 내가 다녀온 시기보단 훨씬 이전에 다녀온 영상이라 느낌적으로 옛스러웠지만 막상 방송 영상에는 쿠바의 전형적인 모습이 담겨있어 오래되어 보이거나 현실과 차이가 있어보이진 않았다. 글을 쓰면서 또 한번 보는데 쿠바는 역시 쿠바 였다.
쿠바는 영상미가 좋은 나라다. 그래서 걸어서 세계속으로 말고도 많은 방송의 촬영지가 되었다. 근래에는 드라마와 관찰 예능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물론 여행 유투버들이 많이 방문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우리가 다녀 온 호텔도 나름 방송에서 유명한 곳이다. 드라마 '남자친구' 라는 곳에서 여자 주인공 송혜교님이 회자 일로 쿠바를 방문하게 되는데, 이때 머무르던 숙소가 바로 이 호텔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올드 아바나라고 부르는 구 시가지에 숙소를 잡았다. 그래서 신시가지에 있는 호텔에 다녀오기 위해 아바나 콜렉티보(버스와 같이 노선이 있는 공공 운송) 택시에 올랐다. 택시는 한적한 도로를 빠져나와 베다도 지역(신 아바나)의 한 호텔 앞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베다도 지역을 간다고 하면 모두 이곳에 내려 다시 다른 곳으로 들어가는 택시를 갈아타는 것 같은데, 우리는 가고자 하는 목적지가 바로 앞이라 걸어가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
처음 베다도 지역에 들어왔을 땐 아직 해가 있었다. 역시나 가로등이 부족한 쿠바의 특성상 해가 지고 나면 금방 도시가 어두움에 쌓여 버린다. 그래서 조금 서둘러 밥도 먹고 호텔에 가기 위해 식당을 먼저 찾아다녔다. 하지만 소득이 없는 걸음이었다. 미리 정보북에서 찾아본 식당들은 폐업을 했거나 영업시간이 종료되어 버린 바람에 우린 해가 떨어질 때쯤 밥도 못 먹고, 더 늦기 전에 호텔로 향해야만 했다.
아바나는 명확하게 두 지역으로 나누어져 있다는 게 느껴진다. 구 시가지는 수많은 건물들과 그 사이사이 골목이 역사를 담고 있거나 과거를 표현하는 곳이라면 신 시가지 구역은 현재로부터 짧은 과거를 담고 있어 보인다. 우리가 내렸던 호텔만 해도 그 입구에 현금 인출기가 자리하고 있고, 호텔 외벽부터 화려한 유럽이나 미국 어느 도시의 호텔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만큼 정돈되고 화려했다.
자동차들도 그렇게 오래되지 않은 차 들이 보인다. 공항에서 바로 오는 사람도 있는지 노란 택시 몇 대가 지나갔다. 숙소가 있는 곳은 다 셀 수 없었지만, 거의 모든 차들이 올드 카라고 해도 될 것 같은데. 여긴 조금 다르다. 외국인들도 많이 보이고, 분위기도 전혀 달라서 쿠바가 아닌 다른 곳에 온 것처럼 180도의 모습으로 바뀌어 있다.
가끔 도시의 분위기가 이질적으로 바뀔 때가 있다. 거리가 낯설고, 지나는 사람과 섞여 있을 수 없는 느낌을 받는다. 며칠이 지나 이제는 조금 익숙한 곳이라 생각했지만, 이곳의 이질감은 조금 적응할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같은 아바나라도 이렇게 다르니 새로운 도시를 여행하는 느낌도 든다.
오랜 여행에 심정이 변해서 그런지, 입고 있던 옷이 그랬던 건지, 뭔가 모르게 어색함을 느꼈다. 물론 호텔 로비는 관광객들이 인터넷을 하려고 소파의자 한편을 모두 차지해서 앉아 있다. 나도 그 속에 앉아 있었지만, 내 자리가 아닌 것 같은 느낌에 오래 앉아 있을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로비 주변과 일 층 이쪽저쪽을 둘러보기만 하다가, 호텔 뒤편으로 가는 출입문을 발견하고는 바로 그 길로 나갔다. 밖은 안쪽과 전혀 다른 풍경을 선사했다. 아바나 앞바다가 한눈에 보이고, 말레꼰이라고 부르는 해안도로가 호텔 바로 앞을 지나 굽이 뻗어 나간다.
정원에는 식당은 겸하고 있어 사람들의 식사를 방해하지 않게 돌아 나와 말레꼰이 보이는 가장 가까운 쪽에 섰다. 바람이 좋고, 파도가 좋은 소리를 낸다. 이 상황 그대로가 행복함이다.
호텔 후원의 잘 만들어진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서 아바나에서의 마지막 날 밤을 즐겼다. 역시 해가 넘어가 버리자 온통 주변이 어두움으로 덮여버렸다. 하지만 어두움 속에서 더욱 빛이 나는 곳이 '호텔 나시오날 데 쿠바'이다.
여행을 하는 목적 중에 하나가 책으로만 보다 직접 그곳을 내 눈으로 보는 것을 위해 떠나기도 한다. 초등학교시절 장학사가 온다고 선생님이 학생 몇 명에게 발표를 미리 준비시킨적이 있었다. 나는 그중 한 명이었는데, 원래 선생님이 나를 시키면 안 되는 순서에 갑작스럽게 대답을 해야 했다. 답은 "백문이 불여일견". 아마 국어시간이었던 것 같다.
아바나의 호텔은 내가 좋아했던 드라마에서 나왔다. 그 장면을 텔레비전으로 보는 감회가 새롭다. 내가 직접 본 호텔이 영상을 통해서 다시 나의 망막으로 들어온다. 그렇게 좋은 경험이 새로운 느낌으로 바뀐다. 낯설었던 그 도시의 느낌이 이제는 달라진다. 조금은 친숙하고 익숙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참고 : 제목 배경 사진은 드라마 남자친구 공식 홈페이지의 사진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