랍스터 먹으러 여기 왔으니까.
첫 끼는 랍스터다!
여기 트리니다드를 오긴 전부터, 도착하면 첫 끼는 무조건 랍스터를 먹기로 했다. 아니었나?
아마 모든 날, 저녁엔 랍스터를 먹기로 했던 것 같다.
랍스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곳에서 가장 많이 먹을 수 있는 음식 재료가 바로 랍스터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처럼 촌티 팍팍 나는 사람은 매일 먹어도 물릴 것 같지 않은 특별한 식재료가 너무 반갑고 기대가 되는 것이다.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는 듯이, 트립어드바이저 (여행지 추천 어플) 1-5위에 올라있는 식당들은 모두 랍스터 요리를 하는 식당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랍스터는 이곳에선 '랑고스타'라고 부른다. 정말이지 별처럼 많은 것이라 그런 걸까? 랍스터는 이곳 트리니다드의 유명한 음식이 되어 있었다.
숙소에서 출발한 우리는 차메로 까사에 잠시 기다리고 있던 중에 심심해서 읽었던 정보 북에서 본 식당을 가기로 했다. 차메로네 집에서 숙소를 소개받아 짐을 내려두고 다시 차메로네 숙소로 왔지만, 여기서 저녁을 먹을 수는 없었다. 저녁은 원래 일찍 예약을 해야 숙소에서 먹을 수 있다. 비냘레스에서 먹은 생선 요리처럼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이 날은 비냘레스에서 출발한 우리가 도착한 시간이 저녁 시간이라, 차메로의 숙소에선 먹을 수 없었다.
차메로의 까사에서 먹는 요리가 맛있다는 이야길 들어서 그런지 조금은 아쉽지만 정보 북에서 언급된 사람들이 많이 방문하여 찾아 놓은 식당으로 향했다. 오늘 처음 이곳에 도착했기에 길을 잘 알지 못했지만, 오히려 익숙하지 않은 길이라 그런지 눈길이 가는 곳마다 신선했고, 눈길이 머무른다. 동일한 색이 아니라 각양각색의 집들은 브라질의 '라 보카' 마을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브라질 색감이 원색으로 시선을 끄는 느낌이라면, 트리니다드의 색은 몽환적이고 은은한 빛을 가지고 있다. 온 마을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보니, 마을 도로의 곳곳은 아직도 비슷한 돌들로 만든 졸 길이다. 길만 보면 중세시대의 모습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식당은 숙소에서 정말 가깝게 위치하고 있었다. 식당의 좁은 입구를 들어와 종업원의 안내를 받아 들어간 공간은 높고, 넓은 공간이다. 아마 공간이 만들어 주는 온도도 있었지만, 시원하게 바람을 만들어주는 팬은 전장에서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으니 안쪽엔 적당히 시원한 공간이었다.
역시나 앉기도 전에 고른 메뉴는 서로 다른 두 가지의 랍스터 메뉴였다. 거기에 음료도 추가하며 자리에 앉았다. 정보 북에서 있는 식당이라 그런지 곳곳에 앉은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로 예상이 된다. 우리도 그들과 섞여 한 자리를 차지하며 주문 한 메뉴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마주친 두 사람을 보자마자 너무 반가운 마음에 자리에서 일어나 그곳으로 향했다. 이 부부님들 만난 건 6개월 전 이집트의 다합이라는 도시에서였다. 부부가 같이 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아마 이곳까지 여행을 온 것 같았다. 우리는 이집트의 다합에 있는 같은 스쿠버 다이빙 가게에서 만났다. 바다를 나가기 위해 기다리는 중에 먼저 내가 쓴 블로그 잘 보고 있다고 해주신 분들이었다.
그 이후 좋은 인연으로 다합에 머무는 동안 스쿠버 다이빙도 같이 했고, 같이 지내는 숙소 친구와 친한 분들이셔서 자주 식사 자리를 했던 분들이었다.
친했던 분들이라 너무 반가웠다. 이곳에서 내가 아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는 게 새삼 놀라운 일이기도 했다. 어쩌면 진짜 지구는 둥글기 때문에 사람들은 또 한 번씩 만나게 되는 것일까? 우리는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렇게 만나 인사를 하고 나눈 첫 이야기도 블로그에서 쿠바로 여행한다는 소식을 읽었다는 것이다.
그 글을 읽고 혹시나 서로 만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다는데, 나는 이곳에서 이렇게 부부 분들을 만나게 될 줄은 꿈에서도 상상을 못 했으니 엄청나게 행운이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반갑다고 계속 인사만 할 수는 없었다. 나는 일행도 있고 주문한 음식도 있으니, 머무는 숙소만 알아두고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돌아온 자리에서 그들과의 인연을 이야기하니 형도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그 와중에 우리가 주문한 음식은 따뜻하게 접시에 담아 나왔고, 반가운 마음이 우리 사이에 위치한 테이블 위에 정갈하게 내려앉았다. 접시에 담긴 구워져 익힌 갑각류의 붉은색은 나의 입맛을 자극시킨다.
새우며 게를 워낙 좋아하는 나는 이곳에서 먹는 내 인생 처음의 랍스터 사진만 100장이 넘은 것 같지만, 막상 처음 보는 음식에 흥분하기도 했고, 실내가 다소 어두워 죄다 흔들려 나온 사진뿐이었다. 혹시나 해서 열어 본 핸드폰 사진첩에도 외장하드에도 쓸 수 없는 사진뿐... 잘 나온 음식 사진은 없었다.
이런 걸 보면 전문가가 아닌 게 확실해 보이긴 하다. 여행 중에 백업을 안 해두다가 외장하드를 떨어뜨려서 중간에 여행한 사진 모두를 삭제시킨 '마이너스의 손'을 보유한 나는 역시나 랍스터 앞에서도 그 진가를 여지없이 발휘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사진은 이래도 맛은 일품이었다. 이날 저녁에 쓴 일기의 내용 그대로를 옮기자면 이러하다.
"처음 먹어 본 랑고스타의 맛은 일품이었다. 누군가는 이 식당의 재료 신선도에 대한 이야길 했지만, 나는 비교군이 없어 이 날 먹은 랑고스타가 최고의 신선도를 가진다고 믿을 수 있다. 양념이 베어 나온 요리의 랍스터 살은 비싼 어묵의 탱글함과 결대로 찢어 먹을 수 있는 스트링치즈의 식감을 맛볼 수 있었다. 거기에 구이를 해서 나온 요리는 버터향이 코를 자극하고, 요리의 온기는 입안의 군침을 돌게 했다. 한쪽을 잘라 입안에 넣으니 수분이 날아가 한층 더해진 식감을 맛볼 수 있었다. 기본양념이 없이 나온 구이에 곁들여 나온 소스를 찍어 먹으니 달콤 새콤함이 비린 갑각류의 살의 풍미를 더해 준다."
아마 이 날은 내가 음식을 먹고 쓴 글 중에 가장 많은 표현을 한 것 같다. 위에 인용한 글 이후에도 랍스터의 예찬이 이어진 글이 있지만 대동소이하다.
결론은 처음으로 먹은 랍스터의 맛을 잊을 수 없이 소중했다는 것이다. 아마 이날 만났던 두 사람의 인연이 한몫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낯선 땅에서 만난 익숙한 사람은 무엇인가 설명할 수 없는 친밀함과 뭉클함을 전해준다. 여행이 때로는 고되고 힘이 드는데. 아마 이분들도 같은 상황이라 더욱 친밀함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한 식당에서 먹으니 마치 이집트 시절 같은 느낌도 들었다.
너무 허겁지겁 먹어서 그랬을까? 우리가 다 먹을 동안 라이브 연주와 노래를 부르는 분들이 자리에 안 계셨다는 것을 몰랐다. 그래서 였을까? 조금은 차분한 분위기에서 밥을 먹었는데, 쿠바 여행을 하면서 거의 모든 지역의 식당에서 만나는 분들이 여기에 안 계시니 조금 궁금하기도 했고, 약간 섭섭하기도 했다.
하지만 역시는 역시였을까? 두 사람이 라이브 연주를 막 시작하려고 했다. 하지만 공연을 볼 수는 없었다. 그때 마침 우리가 밥을 먹고 있던 식당의 전기가 나가 버렸다. 말 그대로 정전이었는데,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우리가 들고 왔던 가방과 핸드폰을 챙겨 들고 다시 전기가 들어오길 기다렸다.
직원은 사람들의 안전사고가 일어나지 않게 손전등을 들고 이리저리 움직였고, 식당에서는 자가발전을 할 수 있는 시설이 있는 것인지, 주변에 아직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는데, 이내 작은 실내등 몇 개가 불을 밝혔다. 이 때다 싶었는지, 종업원은 초에 불을 붙여 손에 들고 다니며 테이블 위에 하나씩 올려 두었다.
이런 일도 참 나에겐 신기하게도 잘 일어 난다. 밥을 먹는 중에 정전이라니 말이다. 식당에 있는 사람들은 이 작은 소동에 잠시 소동이 있더니 이내 적응을 했는지 작은 촛불에 의지하며 남은 식사를 마쳤다. 우리도 휴대폰의 백광 색의 라이트 위에 물병을 올려 초가 비추지 못하는 곳까지 빛을 전달했다.
정전이 생각보다 길어지며 계속 촛불 아래에서 밥을 먹다 계산까지 마치고 나왔다. 물론 나올 때까지도 복구가 덜 되었는지, 그 주변 마을까지 불 켜진 집이 없었다. 촛불 아래에서 먹은 생애 첫 랍스터 요리는 불편하기보단 뇌리에 강하게 남아 버렸다. 불이 안 켜진다 해도 이젠 이것도 좋은 추억이 되었다.
비상등으로 마련해 둔 식당 입구의 전등은 미세하게나마 그 역할을 다하고 있으니 그걸로 끝이다. 식당에서 우리도 밥을 다 먹고 나왔으니 식당도 그 역할을 다 했다. 그러니 이제는 숙소로 돌아간다.
처음에 갈 때는 우리 둘이서 걸어왔지만, 숙소로 갈 때는 네 명이 같이 걸었으니, 어두워진 식당과 그 동네를 지나 숙소로 돌아가는 깜깜한 길에서도 그간 여행의 이야기뿐이었다. 식당과 숙소 사이의 거리가 마음적으로 더 가까워진 것 같았다. 순시 간에 도착해버렸다.
두 분의 숙소는 우리와 바로 대각선에 위치한다. 이웃에 위치한 두 분과는 매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여기에 빠질 수 없는 랍스터도 이곳에 머무는 동안은 매일 보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