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새치 없나요?
무더위에 지치기 딱 좋은 날씨의 오전이다. 주로 저녁형 인간이 되길 바라던 우리는 낮에는 되도록 게으름을 피우기로 했다.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차메로의 집으로 달려가서 그날 먹을 저녁을 주문하는 일뿐이다. 첫날부터 나의 바람이 이루어지고 있는 중인지, 매일 랍스터다. 어차피 저녁은 랍스터로 정해져 있으니 요리 방법을 고르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랍스터만 있는 게 아니라 돼지고기 요리도 있으니 혹시나,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랍스터가 먹고 싶지 않을 때가 오면 한번 시켜 볼 수 있는 메뉴도 있다. 그러니 꼭 랍스터가 아니더라도 저녁을 먹고 싶으면 낮시간에 미리 주문을 해두는 편이 좋다.
사람이 많은 날은 시간을 정해서 예약을 받기도 하는데, 그럼 트리니다드에 머무르고 있는 한국사람 대부분을 이곳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도 생긴다. 물론 주로 차메로 까사 근방 숙소에 머무르기도 하지만 중심지의 호텔에 묵는 여행자라도 저녁만 먹으러 방문하시는 분들도 계신다.
암튼 우리는 오늘 먹을 저녁을 미리 예약해 두고 온 상태라 아주 편안하고 느긋한 오전 시간을 보낼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 고요함이 오래 가진 않았다. 아바나에서 만난 커플의 일정이 우리와 비슷해서 트리니다드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는데, 그 둘은 오늘 차메로 까사에서 택시를 빌려 카리브 해변을 다녀 올 예정이었다.
우연히 우리와 마주친 그들은 어차피 빌린 택시의 비용을 나누어 내고 바다를 보러 가길 권했다. 할 일 없이 누워 있던 우리는 흔쾌히 답하고, 달랑 수건 하나 집어 들고 바로 나와 택시에 올랐다. 역시 더운 여름엔 바다에 들어가는 게 제일이니 말이다.
택시라고 부르는 일반 승용차는 이웃에 살고 있는 친구인 것 같은데, 차메로와 둘은 아주 친해 보였다. 우리처럼 여행객 입장에서는 쉽게 이동이 안 되는 것이니 좋은 기회가 있다면 이렇게 출발하는 게 나쁘지 않다.
차메로 까사 앞에서 출발한 우리는 한적한 도로를 달려 강도 바다도 아닌 곳에 차를 세웠다. 다 왔다며 내리는 그를 따라 오밀조밀 끼여타고 있던 우리 다섯 명이 모두 내리고 나니 차가 조금 올라가는 느낌이 든다. 구겨진 몸을 기지개로 켜고 나니 주변이 보인다.
바다와 강이 만나는 그런 곳에 우리는 내려섰다. 외국인이라고는 한 명도 찾아볼 수 없고, 해변의 모래는 보이지도 않는 이곳에서 무얼 하나 봤더니 모두들 낚시를 준비했다. 알고 보니 해변으로 가는 길에 낚시를 하는 것이었는데, 나는 잘 못 알아듣고 해변만 가는 줄 알았더니 낚시 먼저 하고 가는 일정이었다. 차메로는 이곳이 자신의 포인트라고 말하며 며칠 전 낚시했던 물고기를 보여주며 자랑까지 해댄다.
차 트렁크에서 꺼낸 낚싯대를 우리에게 전해주고, 차메로는 익숙하게 자신의 낚싯대를 준비했다. 굉장히 빠른 속도로 잘 펼쳐진 낚싯대에 미끼를 끼워 힘껏 던지니 우리 눈앞으로 미끼가 걸린 낚시 줄이 쌩하고 지나간다. 조금 멀다 싶은 곳에 빠진 낚시 바늘은 차메로의 릴링에 따라 움직이며 물고기를 유인하고 있다.
낚시는 기다림의 스포츠라고 했던가? 하지만 여긴 어떻게 된 건지 넣자마자 입질이 오기 시작한다. 이곳에서 제일 큰 물고기를 잡은 것이 바라쿠다였다는데. 방금 전, 사진을 보여주며 자랑까지 했던 차메로의 표정에는 자신감이 묻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낚시를 던지는 차메로의 자세에서 프로의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했다. 그에 반해 우리 넷은 초짜 중에서도 완전 초보다. 낚시에 미끼를 끼우는 것도 못해서 운전을 담당했던 차메로의 친구가 대신 까우는 법을 알려줬다.
노인과 바다를 꿈꾸던 나는 낚싯대를 들고 차메로가 했던 대로 길게 쭈욱 던지기를 시도했지만 마음과는 다르게 바로 앞에 떨어지는 미끼에 박수 대신 웃음을 받았다. 나는 작전을 바꿔 낚싯대를 우리가 서 있는 다리 아래로 내렸다. 멀리 던지면 조금 큰 물고기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던지기는 했지만 다리 아래를 내려다보면 손바닥 만한 물고기들이 수도 없이 모여 있다.
심지어 눈에 보이는 정도로 수면 위에 있으니 낚시 바늘을 잘 맞춰 내리면 바로 걸어 올릴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도 생긴다. 나도 오늘 바라쿠다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 믿고 미끼가 달려있는 던진다. 수도 없이 던졌다.
드디어 '파르르' 하고 초릿대가 요동을 친다. 팽팽해진 낚싯줄이 기분 좋은 텐션을 준다. 뭔가 멋있는 자세로 올려보고 싶은 마음이지만 워낙 가벼운 물고기라, 당겨보니 바로 올라와 버렸다. 역시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기적을 경험할 수는 없었다. 나는 현실이었다. 겨우 엄지 두 개를 붙인 크기의 물고기만 달려 올라온다.
쿠바에서 처음 잡은 물고기라 사진을 찍고 영상도 찍으며 기분을 만끽하는데, 차메로는 이런 나를 게이치 않았다. 내가 잡아 올린 물고리를 다시 미끼로 만들어 바라쿠다가 유혹되기 쉽게 바늘에 끼워 던져버렸다.
그렇게까지 했지만 바라쿠다는 쉽게 유혹에 넘어오지 않았다. 물었다가 놓았다가를 반복하던 고기는 미끼만 먹고 사라져 버려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노인과 바다의 노인처럼 나도 물고기를 집으로 가지고 올 수 없었다. 하지만 파르르 떠는 낚싯대의 촉감은 가지고 돌아올 수 있었다. 뭔가 큰 마음을 먹고 간 차메로도 못 잡아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우릴 데리고 나갔으니 큰 고기 하나 잡아 올렸으면 했지만, 고기가 쉽게 잡혀주지 않아 실망했나 싶다. 그런 그를 데리고 다시 차에 오른 우린 이제 카리브 해변을 향해 달렸다.
도착한 해변은 숙소에 속한 프라이빗 한 해변이다. 파라솔과 비치 의자를 위해 시원한 음료를 주문하고, 낚시로 지친 몸을 바다로 던진다. 낚시는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서 했다. 소금이 없는 담수와 짭조름 한 간수의 만남이 만들어주는 어장이었는데, 아마 그래서 풍부한 어장이었나 보다. 바다는 거기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이었다.
몇 시간 그늘이 없는 그곳에서 오롯이 태양의 빛을 몸으로 받아 낼 수밖에 없었다. 선블록을 가지고 가서 발랐지만, 크게 효과는 없어 보이는 듯하다. 이미 여행 중 검게 그을린 피부색은 다시 돌리기엔 태양이 너무나 강렬했다. 그나마 발라 둔 자외선 차단 크림은 땀으로 이미 씻겨 나갔을 것이고, 다시 덧 바르기엔 바다가 너무 유혹적이었다.
나는 고민도 없이 바로 바다로 뛰어 들어갔다.
카리브해는 적도의 가까운 태양을 받고도 뜨겁지 않았다. 오히려 시원했다. 그래서 시원한 물속에 한참을 거닐다 나왔다. 데워진 몸이 식어져 나와 들고 온 수건으로 몸은 간단히 닦아내고 해변 의자 위에 앉아 다른 사람들이 오길 기다렸다.
돌아보면 이게 모두 두 사람 덕분이다. 이들의 선택에 박수를 보낸다. 하루가 이렇게 빨리 가게 만드는 즐거움을 오랜만에 느낀다. 에어컨이 충분히 시원한 숙소에서 나올 땐 각오가 필요했지만, 나오고 나니 잘 따라나섰다는 생각이 든다.
낚시에 물놀이까지 알찬 하루를 보낸 우리는 숙소를 돌아오는 길이 나른하기만 하다.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멀리까지 펼쳐진 평지를 바라보고 있자면 차분하고 편안해지는 기분마저 든다. 숙소에서 차메로를 만나도 이야길 할 시간이 없는데, 이렇게 사적으로 같이 지내다 보니 여러 이야길 듣게 되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노인처럼 낚시도 할 수 있었고, 카리브해의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즐거운 한 때를 보낼 수 있는 즐거운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