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고! 달려라! 그리고 소리 질러라!
산티아고 데 쿠바의 도심 여행에서 추천할만한 장소를 찾으라면 단연코 야구장을 빼놓을 수 없다. 쿠바는 스포츠 야구의 강국이다. 한때는 그랬었다. 그래도 쿠바를 이야기하면 단연코 야구가 빠질 수 없다. 지금도 인기가 있는 쿠바 야구의 역사는 1864년, 미국에서 유학을 하던 쿠바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전까지 쿠바에서는 야구란 스포츠가 전파되어 있지 않았다. 다만 원주민의 전통 운동 중에서 타격을 하는 게임이 있어 다른 나라보다 야구를 쉽게 배웠다는 이야기도 있다. 한 사람의 노력 덕분에 1890년에는 70개가 넘는 팀이 생겨 났고 그 열기는 온 국민으로까지 더해갔다.
현재 쿠바의 사회주의적 성향과 미국과의 외교 단절 문제로 야구 부흥이 다소 주춤해진 상황이다. 그렇지만 지금도 쿠바는 세계적인 선수들의 고향이다. 사회주의 체제로 인해 프로구단 창단이 어려울 뿐, 실력은 프로 수준이다. 올해 우리나라 프로 야구팀에서도 쿠바 출신 선수들이 뛰고 있는데, 그들 역시 성적이 좋은 선수들이다.
야구를 잘 하지만 더 큰 무대에 거 뛸 수 있는 기회가 없는 쿠바 선수들은 멕시코나 아이티로 망명을 시도해 거기서 다시 미국으로 들어가는 길을 선택했다. 수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가며 쿠바 선수들이 미국으로 들어가고,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기도 했다. 그렇게만 된다면 부와 명예를 동시에 얻을 수 있지만 모두가 1군 선수가 될 수 없기에 2군 이하에 리그에서 뛴다면 쿠바에서의 상황과 별반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다.
혁명의 중심지였던 산티아고 데 쿠바의 야구장은 도심에 위치하고 있다. 아침에 산책할 겸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야구장이 있어 가볍게 야구장으로 향했다.
넓은 주차장을 보유하고 있는 쿠바의 야구장은 외국에서 많이 설계되어 있는 야구장의 모습을 본떠서 만든 것 같다. 모든 야구장 주변엔 넓은 주차장이 있다. 차가 그렇게 많이 다니지 않는 쿠바에서는 그렇게 필요한 것 같지 않은데 말이다.
우리나라처럼 야구장 입구에서 맛있는 냄새에 홀려 치킨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주차장 한쪽 천막에서는 맥주와 간단한 안주만 있었다. 기름 냄새는 감자튀김이 범인이었는데, 튀김을 포기하고 안주는 우리는 가방에서 작은 땅콩을 꺼내 맥주만 받아 들고 자리를 잡았다. 쿠바에선 생맥주를 먹을 수 없었던 나는 뜬금없이 길 위에서 생맥주를 마시게 될 줄은 몰랐다.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기에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에 마련된 낡은 테이블 위에 땅콩과 맥주를 한잔 올려놓고 이 시간을 만끽했다. 야구장을 들어가 보겠다는 생각에 여기까지 왔지만 맥주를 한 잔 받아 들고 앉으니 다른 생각이 들지 않는다.
맥주를 연거푸 세 잔을 마시고 나니 배도 부르고 취기도 오르는 것 같아서 더 이상의 주문은 멈췄다. 빈 맥주컵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원래 우리의 목적인 야구장으로 들어갔다.
야구장으로 들어간 우리는 텅 비어 있는 빨간 의자에 입이 떡 벌어졌다. 쿠바는 건물의 색감이 강렬한 원색으로 덮여 있는 편인데, 심지어 야구장에도 강렬한 빨간색으로 뒤 덮여 있었다. 선수의 입장에서 둘러본다면 엄청 화려 할 텐데. 밝은 색감에 놀랐다.
더운 나라인 만큼 야구장의 지붕은 해를 가릴 수 있도록 설치되어 있고, 등받이 없는 초등학교 시절 한편의 스탠드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의자를 역시나 붉은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언론인 석인지, 귀빈석으로 분리되어 있는 상층부의 벽에는 아마추어팀들의 수많은 마스코트가 가지런히 붙어 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쿠바의 사회적 체제로 인해 프로 구단은 없지만 아마추어로 등록되어 있는 팀들 모두의 실력이 프로급으로 뛰어나다. 그러니 아마추어 야구 대회에서는 쿠바가 늘 우승을 차지한다.
반대편으로 눈을 돌려보면 운동장이 보이는데, 운동장에서는 초록색 잔디가 깔려 있고, 홈 베이스와 주루 베이스는 흙이 덮여 있다. 아쉽게 우리가 간 날에는 야구 경기가 있는 날이 아니라 야구를 보고 올 수는 없었지만 이곳에서 벌어지는 숨 막기는 경기의 함성은 남아있는 것 같다. 기회가 된다면 남은 기간 중에 야구도 한번 보고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입장권의 가격은 외국인의 경우 천 원 정도의 가격이고, 주민들은 백 원정도의 가격으로 매우 저렴한 편이다. 그러니 쉽게 접할 수 있는 여가 생활로 야구만 한 게 없다.
경기가 없으니 우리는 그냥 입장을 했으나 야구장 운동장에는 내려갈 수 없었다. 지켜보고 있으신 분이 막아섰는데, 친절하게 양해를 구하셔서 위에서 다시 한번 내려다 보고는 밖으로 나오는 길을 찾았다.
내가 있었던 쿠바는 야구와 축구를 좋아하는 비율이 반 정도로 나누어져 있었다. 소위 젊은 세대라고 하는 학생들과 청년들은 공만 있으면 축구를 하기 시작했고, 그들이 좋아하는 선수들의 유니폼을 입고 다녀서 자주 눈에 띄었다.
한 번은 마을을 구경하는데. 큰 함성 소리가 나길래 들여다본 집에서는 사람들이 유로축구를 보고 있었다. 첼시와 마드리드 경기였는데. 지나가던 우리에게 좋아하는 팀을 불어 보기도 했을 정도로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늘어가는 축구의 인기 속에 야구를 좋아하는 쿠바의 어른들은 야구가 사라지고 있는 현재를 걱정하며 야구를 챙겨 보고 있다고 하셨다.
어디나 세대가 바뀌면 좋아하는 문화의 주류가 바뀌는 것이 당연하다. 특기 문화라는 게 강제한다고 생겨나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쿠바의 최강 야구가 조금씩 사라진다면 조금 섭섭할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