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 처음이야.
짧지만 나름 여유로운 비냘레스의 며칠을 조용히 보낸 우리는 다음 여행지로 트리니다드를 선택했다. 하지만 여행자들이 이용하는 시외버스와 일정이 겹치지 않는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현지 교통편을 이용하여 트리니다드로 이동하기로 했다.
출발 당일 아침에 일어나 체크아웃을 마치고 나와 집 앞으로 우리를 태우러 온 오래된 버스는 그 속을 몇 번이나 새로이 덧대어 원래 버스 본연의 모습을 쉽게 가늠하기 어려웠다.
뭐가 그리 신이 나는지 잔뜩 엔진음을 내며 기다리고 있는 자동차는 우리를 태우고 곧장 출발해서, 시원하게 뻗은 고속도로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편하지 않은 의자에 앉아 몇 시간 보낸 우리는 고속도로를 내리 달리던 차가 어느 휴게소처럼 보이는 넓은 공터에 정차하자 찌뿌둥해진 몸을 풀러 밖으로 나와야만 했다. 우리가 도착하고 난 후, 몇 대의 새로운 차량이 우리가 있는 공터로 들어오고, 미리 주차된 아주 큰 주황색 버스에 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느낌상 우리가 다른 차로 옮겨 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모여드는 차들의 기사분들이 모두 한 곳에 모여 인원을 체크하는 모습을 보니 쉽게 예상은 가능했다. 처음 탈 때, 한 번에 트리니다드로 가는 버스라 믿고는 있었지만, 500Km의 이동이 오래된 차들에겐 결코 쉬운 환경이 아니었다.
그러니 이곳 사정에서 최선은 중간에 환승을 택하는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탄 파란 버스는 비냘레스에서 아바나를 조금 지난 어느 고속도로 위 휴게소에서 정차했다. 버스에 내린 우리가 간식과 음료를 사고 나와 화장실을 이용하고 나서 버스가 주차된 곳으로 돌아오니, 주차장에 서 있던 차들 중에 가장 큰 주황색 버스로 우리의 짐들이 다 옮겨져 있었다.
옮겨 실려있는 가방부터 확인했다. 가방이 나와 오랫동안 떨어지면 불안해 지기 때문에 버스에 오르자마자 가방부터 확인했다. 꼼꼼히 살펴 안전히 잘 있는 가방에 안심하고 새로운 버스에 가방을 다시 자리에 두었다. 환승한 버스 좌석이 있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으니 버스는 남은 거리를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다시 출발하는 버스 위에 올라서는 이어폰을 꼽고, 오래전에 핸드폰에 저장해 둔 음악을 실행했다. 지역을 벗어날 때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하늘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흐린 하늘이라 쨍하게 떠 있는 하늘을 보진 못했지만, 바람이 시원해서 더 좋다. 음악과 함께하니 더욱 좋아지는 기분이다.
버스는 기본적으로 에어컨이 없지만 습한 온도에도 사람들은 불평이 없다. 손으로 부채질을 연신 하지만 그것 만으로는 쉽게 시원해지지 않는다. 그래서 몇몇은 수건을 꺼내 흘러내리는 땀을 수시로 닦아 주기도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사람들은 뒷사람에게 바람을 더 보내주기 위해 활짝 열린 창문으로 들어온 바람의 반을 뒷자리로 보내준다.
그러다 너무 더워지면 양해를 구하고 자리를 바꿔 시원한 바람을 온몸으로 받으며, 열이 올라온 몸을 식힌다.
사이좋은 고생길 동료들이 어느 정도 친해졌을 때, 버스는 다시 도로 위에 정차했다. 어디서부터 따라왔던 건지, 이곳에서 우리는 기다리고 있었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또다시 우리 버스에서 직원 한 분이 내려 뒤에 있는 버스에 인원을 체크하러 갔다.
여기가 갈림길이었던지 몇몇의 여행자는 자신의 가방을 챙겨 들고, 옮겨가기 시작했다. 어깨를 포개고 앉아서 지금까지 달려왔던 우리는 그들이 떠나고 나서야 생긴 빈자리로 인해 이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꽤 많은 거리를 이동해야 한다. 500Km의 서울- 부산 사이 거리보다 먼 거리를 달려야 도착하는 거리다. 처음 탄 차로 목적지까지 갈 수 있다고 기대했지만 현실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포길 했었다.
하지만 두 번째 환승자들이 내리고 타는 동안 전혀 새로운 경험에 흥미가 생겼다. 이 한산한 고속도로 위에서 사람들이 타고 내렸다. 심지어 끝이 아니었다. 또 한 번 도로 위에서 다른 차로 옮겨 타는 사람들이 있었다.
처음이라 그런 것 같다. 내가 경험했던 도시 간 이동은 목적지가 정해진 목적지를 한 번에 가는 경우나 환승이 지정되어 미리 내가 알고 가는 것이 대부분이었다면, 이런 도로 위의 환승이나 깜깜이 환승은 처음이라 더욱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누구나 겪는 처음의 경험이 뇌리에 잘 남아 있다. 이번 여행에서처럼 처음 겪는 일은 호기심이 앞선다. 사람들이 타고 내리는 곳을 지도에서 찾아보며 어디로 뻗어 가는 도로인지 봐서 그들의 목적지를 예상하곤 했다. 정답은 모르지만, 상상만으로도 좋다. 답을 몰라도 그저 시간이 잘 간다.
드디어 우리는 날이 슬슬 어둑해지면서 트리니다드로 들어왔다. 아직 남은 해가 길어 여유는 있었지만, 하루 종일 이동으로 몸은 축 처지기만 했다. 승차감이 좋은 여행이 아니라 허리도 아파오고, 빨리 씻고 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다행인 것은 버스에서는 우리 숙소를 이야기하면 바로 숙소 문 앞에 우리를 내려 준다는 것이다. 운전도 안 했고, 서서 온 것도 아니지만, 장 시간 버스에서 보내는 하루는 오히려 걸어 다니는 날 보다 더욱 지치게 만든다.
미리 우리가 머무를 숙소를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대문 앞에 가방을 먼저 내려주고, 뒤늦게 내린 우리는 인사도 하기 전에 버스를 다른 사람들의 숙소로 향해 가버렸다. 마치 급한 일로 화장실로 뛰어가는 사람처럼 뒤도 안 돌아보고 간다. 하는 수 없이 손 한번 성의 없게 올려주고, 숙소를 예약하러 들어갔다.
차메로의 집에서 우리의 여정을 풀 계획이었지만, 가장 인기 많은 이곳 숙소는 이미 먼저 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차메로는 우리를 자신의 집 앞에 있는 다른 숙소로 안내를 했는데. 대문에 닻 표시가 없는 곳이었다. 아마 자신의 집에 사람이 가득하면 주변의 주택에서 우리를 묵게 하는 듯했다.
우리는 숙소를 얻을 수 있어 좋고, 차메로는 넘치는 사람들로 좋을 수 있으니, 멀리 가는 것보다 쉽게 숙소를 선택할 수 있었다.
옥상을 올라가 하늘을 볼 수 있는 숙소,
집을 풀러 들어갔더니 주인이 웰컴 주스를 건네는 숙소,
사방이 노란색이 입혀진 우리 숙소는 앞으로 이곳에서 지낼 우리의 아지트가 되었다.
스페인 정복 역사와 연관이 있고, 유네스코 지정 지역인 이곳 트리니다드의 여행이 이렇게 시작되었다. 비냘레스의 안정된 몇 일간의 휴식으로 힘을 얻은 나는 이곳에서 일어날 일들을 기대하며 어두워지기 전 마을로 향했다.
이렇게 다시 새로운 여행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