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일 했던 당신, 하루 쉬어가요.
몹시 맑은 날 아침이 밝았다.
숙소에서 주는 조식에 커피 한잔까지 마시니 이제야 정신이 좀 돌아온다.
간밤에 마신 칸찬차라가 과했는지, 목이 따가워 일어났다. 아마 코를 골며 잤나 보다. 술을 먹으면 꼭 그런다. 비염이 있는 터라 과음을 하거나 과식을 했던 날은 어김없이 비강이 부어 있어 밤에 주로 코를 골며 자는 것 같다. 그렇게 자고 일어나면 꼭 목이 따갑다.
물을 한 컵 마시고 조금 가라앉은 목을 조금 다듬어 내고 나면 슬슬 배가 고파진다. 어김없이 차려진 아침 접시를 비워내고 나면 슬슬 하루가 시작된다. 날씨가 굉장히 좋은 날이라 나가기 전부터 기분이 좋아지는데, 역시 조금 덥다 싶은 날씨다.
맑은 날은 쿠바가 가진 색을 완전히 볼 수 있어서 좋다. 워낙에 쨍한 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 원색의 진한 색이 온통 마을을 뒤덮는다. 오늘따라 더 쨍한 색감에 시선이 멈춘다. 시선과 함께 멈춰 선 걸음에 셔터 한번 누르게 만든다.
풍경을 사진에 담아 내며 조금씩 걷다 보니 한 가지 이상한 느낌이 들어 주위를 둘러본다. 골목에 사람들이 없다.
심지어 늘 일광을 즐기던 사람들이 거리에서 보이지 않는다. 트리니다드는 여행객도 많지만, 주민들도 볕이 좋은 날에는 밖에 나와 일광을 즐기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는 곳이라 더 이상해 보였는지도 모른다.
낮은 층수의 집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 사람들이 대문만 열어두고 따사로운 볕을 즐기는 모습이 쉽게 보인다. 아니면 보드 게임을 즐기는 모습도 자주 보이는 풍경이다. 그렇지만 유독 오늘은 사람들이 보이질 않아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왜 그렇게 안 보였는지 공원에 도착을 하니 한 번에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어젯밤에 들렀던 시내 중앙에 있는 광장이 아니라 숙소에서 가깝고, 인터넷 잘 되는 공원 근처에서였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무슨 행사라도 하는 것처럼 잔뜩 모여 있었다.
우리나라에 오일장이 서는 것과 비슷한 모습에 조금 더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보았다. 사람들 사이에 틈을 지나 들어간 곳엔 사람들 밖엔 없었다. 물건을 파는 시장이라고 하기엔 사람만 가득하고 물건을 파는 가판이라던지, 팔려고 내놓은 물건은 보이지도 않았다.
축제 행사인가 모두들 들뜬 기분으로 그들의 깃발과 구호를 외친다. 마침 인터넷도 되는 공원이라 핸드폰으로 검색한 오늘은 쿠바의 노동절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일을 쉬고, 한데 모여 축제를 즐기고 있는 것이었다.
나름 노동절은 이 나라에서 중요한 국경일이다. 사회주의 성향이 강해서 노동자의 날이 국경일이자 이들의 명절과 같다. 공원에 도착해 사람들의 모습을 자세히 본 적이 없었지만, 검색을 해서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고 나서 다시 보니 모인 사람이 다들 행복한 표정을 하고 있다.
즐거운 행사라면, 어디나 다를까? 모이는 사람이 있으니 음식을 파는 사람들이 장사를 한다. 이런 자리에 음식이 빠질 수 없다. 방금 밥을 먹고 나오는 길이지만 기름기가 좔좔 흘러내리는 통돼지 바비큐를 그냥 지나 칠 수는 없는 법이다. 샌드위치 하나 주문을 하면, 빵 사이에 고기는 껍질과 살을 모두 섞어서 빵 사이에 넣어주는데, 그동안 돼지고기가 들어 있지 않을 것 같은 햄과 치즈만 달랑 들어 있어 심플한 비주얼이었다면. 이건 속이 꽉 찼다. 오랜만에 먹어 보는 기름진 느낌이다.
우리와 비슷하게 돼지의 살을 발라내고, 빵 사이에 오이와 양배추, 양파를 넣어주는데. 식감 또한 아주 좋다. 오랜만에 돼지고기를 먹을 수 있어서 한 개를 더 먹었다.
사실 그동안 여행하면서 돼지고기를 잘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차메로의 집에서는 늘 랍스터만 먹었고, 식당에서 밥을 먹는 날이면 파스타나 치킨을 주로 먹었다. 그러다 보니 돼지고기 바비큐가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의외로 많이 먹지 않는 음식이 돼지고기였다. 몇몇의 나라는 종교적인 이유로 고기를 먹지 않고, 어떤 나라는 사육과 도축 시스템이 잘 갖춰지지 않아서 돼지가 귀한 곳도 있다. 중국은 돼지를 많이 먹는 나라지만, 도축 후 냉장고에 넣기가 힘들어 밖에다 그냥 걸어두고 파는 걸 보면 먹고 싶은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이런저런 이유로 돼지고기는 반가운 음식이다. 매일 닭을 먹는 식단에서 오늘의 특별한 메뉴는 더욱 맛을 더해준다.
축제일이고, 국경일이라 혹시 매표소 문이 안 열려 있으면 어떡하나 하고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비아술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맛있는 돼지고기 있는 공원을 뒤로하고 며칠 뒤에 있을 이동을 대비해 표를 사러 터미널에 도착했다.
다행스럽게도 문이 열린 터미널 매표소에 들어가 우리가 갈 다음 지역으로 가는 버스표를 미리 구매해서 나왔다. 비냘레스에서 트리니나드로 오는 길을 생각하면 그렇게 불편하고 어렵게 이동할 수 없다는 생각에 며칠 남은 이동에 미리 표를 알아보고 예매하기로 해서, 오늘 정류장에 들렀다.
다행히 표를 구한 우리는 이제 신티 아고 데 쿠바로 이동한다. 그곳이 목적지는 아니고, 그곳에서 다시 조금터 이동해서 바라꼬아라고 하는 곳으로 이동하는 게 목적이다. 하지만 바로 가는 교통편이 없어 우선 산티아고 데 쿠바로 이동한 후에 바라꼬아로 들어가기로 한다.
그렇게 결심하고 나니, 역시나 제일 아쉬운 것은 늘 먹던 랍스터 요리다. 나에겐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음식인 것 같다. 그래서 이곳에 도착한 후 한 번도 빠짐없이 랍스터 저녁을 먹었으니 인증은 했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역시나 오전에 나오기 전에 주문한 저녁을 먹으러 들어왔다.
숙소에서 저녁을 먹고 나서 우리의 일정에 대해 몇 가지 이야길 하는데. 차메로가 서랍장에서 시가를 꺼내어 왔다. 하나를 잘라 우리에게 주고 피워 보라고 권했다. 나는 원래 흡연하지 않아 거절했지만, 담배처럼 피우는 것이 아니니 괜찮다고 다시 한번 권했다.
두 번 거절할 수 없어 형이랑 나랑 둘이서 하나를 피워보는 걸로 하고 불을 붙여 보았다. 시가는 담배랑 다르게 폐로 피워내는 것이 아니라 입안에서만 그 향을 머금고 뱉어 내는 것이다. 그래서 담배가 폐암이 많이 걸린다면 시가를 많이 피우는 사람은 구내 암이 많이 걸리는 것이다.
암튼 처음으로 쿠바에 들어와 시가를 입에 물어봤다. 초코향과 조금 따뜻한 연기가 입속으로 들어왔다. 가글 하듯 연기를 머금고 있다가 코로 내뱉었다. 마실 때와는 또 다른 향을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우리는 쿠바 시가를 태웠다.
이 또한 영업의 하나였는데. 피워보고 한 봉투에 담긴 시가를 구입하라는 뜻이었다. 25개 한 갑으로 묶인 시가는 생각보다 저렴하고, 현지인들이 많이 피우는 편이라 했다. 그때는 몰랐지만, 이곳에서 가장 싼 편에 속하는 시가로 한 개비씩 커피 점에서도 구입할 수 있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는 몰랐으니 역시 한 갑을 구매했다. 진짜 저렴했기도 하고, 현지 사람들이 많이 피운다는 말에 망설임의 시간이 줄었다. 구입하고 맘 편히 한 대를 다 피워내고, 밖으로 나가 깨끗한 공기로 입을 헹궈냈다. 역시 나랑은 안 맞는 것 같은 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