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과 춤
산티아고 데 쿠바는 변혁의 도시다. 카리브해의 인근 국가들의 접근성이 높아 마치 우리나라의 부산과 같은 상징성이 있다. 부산처럼 산티아고 데 쿠바는 이곳 쿠바에서 제2의 도시의 위치에 있다.
오랜 역사만큼이나 유명해진 가게가 많은 곳이 바로 여기다. 길을 다니다 보면 100년은 기본이고, 그거보다 더 된 곳도 있다. 스페인 식민시절 수도였다. 그렇기에 항구도시인 산티아고 데 쿠바는 유럽에서 들어온 문물들이 가득했다.
심지어 지금도 유명한 럼이 이곳에서 발생했고, 쿠바 음악의 대표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의 '꼼빠이 세군도'의 고향이기도 하다.
침략과 혁명 그리고 독립에 이르기까지 수도 아바나 보다 훨씬 변혁의 도시가 바로 이곳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역사적 사건으로 수많은 외부 사람들의 유입이 있었다. 다양한 문화를 지니고 있는 타국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겪게 되는 혼돈은 고유문화의 변화와 발전으로 이어졌고, 고스란히 주민들의 몫이 되었다.
삶의 터전에 들어온 새로운 문화와 사람들. 그들의 문화를 송두리째 바꿔 버리기도 했고, 서로 뒤섞여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예를 들면 쿠바 길거리에서 들려오는 타악기의 두근거림은 아프리카 리듬인데, 이러한 리듬에 몸을 맡겨 만들어낸 춤이 바로 '룸바'이다.
궁금했다. 룸바의 역사가 시작된 곳에서 보는 룸바 공연. 나는 춤에 재능이 있지 않다. 다만 몇 가지 동작이라도 배워보고 싶기도 했고, 잘 추는 사람들의 춤을 구경하고 싶은 마음에 룸바 가게를 찾아다녔지만, 낮시간이라 그런지 열려있는 가게를 찾기 쉽지 않았다.
룸바 공연으로 유명한 가게들과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 음악으로 유명한 가게들도 다 문을 열지 않은 시간이라 어쩔 수 없이 다른 곳을 먼저 다녀오기로 했다.
그래서 중앙 공원에서 택시를 빌려 가본 곳이 '모로 성'이다. 모로 성은 타국의 침략으로부터 쿠바를 방어하기 위한 기지라고 볼 수 있다. 지금은 침략의 역사에서 조금은 자유로운 곳이지만 카리브해의 혼란기에는 쿠바 역시 자유롭지 못했다.
이곳 역시 최전방 요새로 만들어 적들의 침략에 대비했던 곳이지만, 스페인 함대에 침략을 당하고 말았다. 여기서부터 고난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지금도 모로 성에는 많은 무기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이곳을 방문하는 관광객을 맞아 조형물도 있고, 진짜 무기였던 것도 있는데, 외부에 전시한 상태라 좋은 외형은 아니다. 거기에 높이 솟은 성벽은 지금도 단단하게 방어가 되어 있다. 그 시절 이곳에서 항구로 침략해 들어오는 배들을 침몰시켰다는 설명을 보니 전경이 달라 보이기도 한다.
가끔 역자 유적지를 가게 되면 머릿속으로 그 당시 상황을 그려보기도 한다. 스페인 함대의 수많은 배들은 여기서부터 날아들어오는 포환을 피해 가며 항구로 정박을 시도했을 것이고, 심지어 작은 배로 나누어 타고 공격을 피해 육지에 상륙했을 것이다.
자욱한 연기,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지켜야 하는 쪽과 들어가 만 하는 쪽은 자신의 목적으로만 움직일 것이다. 그렇게 전쟁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현실은 한 없이 고요한 바다였다. 새들은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아가고 있고, 항구로 들어오는 배는 편안하게 정박을 시도했다. 과거의 누군가가 누구 하나 경계하지 않는 바다를 만들었다.
그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모로성은 그렇게 재미가 있거나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은 아니다. 나름의 의미를 가지고 가는 사람이거나 진짜 할 일이 없어서 여기라도 다녀와야겠다는 사람들이 오는 곳이다. 그러니 사람들의 인파가 없는 한적한 관광지는 오롯이 우리의 차지가 되었고, 곳곳에서 사진을 찍거나 멀리 보이는 배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기도 했다.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다시 도심으로 들어온 우리는 뚱카롱(뚱뚱한 마카롱)과 크기가 비슷한 햄버거 하나로 잠시의 허기를 달랬다. 간단하게 저녁을 먹은 이유는 낮에 들렀던 가게들은 저녁이 되면 문을 열고, 쿠바의 음악과 춤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해도 넘어가 버린 저녁시간.
우리는 광장을 지나 걸으며 낮에 봐 둔 가게로 걸음을 옮겼다. 가게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가게 앞에 도착했다. 외관을 보면 그리 달라 보이는 것 없는 그렇고 그런 가게처럼 보인다. 하지만 들어가 보면 분위기만으로도 유동치는 심장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우리가 들어간 시간엔 마침 한곡이 끝나는 무렵이라 박수 소리와 현악기의 떨림이 공기를 너울지게 만들어 내 피부에 닿는 느낌이 짜릿했다.
좋은 자리 놓쳐버릴까 봐 서둘러 네 명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먹을만한 음식을 주문하고 카메라의 전원을 켰다. 다행히 한 줄 뒤에 있는 자리였지만 사람들이 크게 가리지 않는 좋은 자리에 앉았다.
주문하고 잠시 있으니 음악이 시작되었다. 중저음의 악기가 시작을 알리며 쿠바 특유의 비트가 공간을 울리기 시작했다. 룸바를 추는 사람들이 나오며 분위기는 한층 달아올랐다. 음악의 경쾌함은 앉아 있는 사람들까지 들썩거리게 만들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게 만들었다.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도 뒷자리로 옮기며 음악을 타기 시작했다. 나는 앞에서 펼쳐진 환상의 춤사위에 넋이 나갔지만, 뒤에서도 대단한 흥이 발산되고 있음을 느낄 수는 있었다.
저음으로 심장을 두드리는 바운스와 기타음의 경쾌함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갈 때쯤 음악의 끝이 보였다. 룸바를 추는 사람들의 호흡도 거칠어지면서 사람들의 감탄사도 여기저기에서 나왔다.
우리가 들어올 때처럼 큰 박수 소리와 현악기의 떨림이 다시 한번 공기를 울렸다. 흥분된 기분에 격한 박수를 보냈고, 연주자들은 인사로 화답해 주었다. 그들에겐 잠시간의 휴식시간이 주어졌고, 우리에겐 가게를 둘러볼 수 있는 시간을 얻었다.
이곳의 역사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고, 그 자리에 우리도 함께 했다. 제하와 미야 커플의 소개로 간 곳인데, 만약 우리가 이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볼 수 없을 공연이라 더욱 귀한 시간이었다.
스페인의 답답했을 통치에 유일한 희망을 지금까지 이어 나온 쿠바 사람들의 노력에 감사를 표했던 밤이었다.
주 무대 공연이 끝나고 쉬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테이블 위에 새로운 음료가 하나씩 놓였다. 다들 좋은 시간을 보내는 중이라 우리도 테이블로 돌아와 작은 탁자 위에 놓인 맥주를 마시며 여행을 이야기했다.
우연히 만난 길 위의 인연으로 좋은 사람이 되기까지 그리 긴 시간은 아니지만 꽤나 함께 한 시간이 쌓이면서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아는 사이가 되었다. 그렇게 음악이 넘치던 이곳에서 우리의 수다도 넘친다.
모영도 다르고 새로운 병에 담긴 맥주의 양도 다르게 담긴 맥주병처럼 우리가 가진 여행에 대한 열정은 서로 다르지만 각자 뜨겁게 흐를 것이다. 그래서 이곳에서 만난 것이니 말이다.
아마 우리의 오늘 밤은 두근 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어려운 날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