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좋은 아침이다.
숙소에선 아침 일찍 테이블 위에 빵과 음료 그리고 과일이 준비되어 있다. 빵은 잘 익은 달걀 프라이랑 함께 나오는데, 아침만큼은 정해진 메뉴를 먹을 수 있어서 좋다. 숙소 밖을 나가면 잘 챙겨 먹기가 힘든데, 아침이라도 든든하게 먹으니 하루를 시작하는 힘이 난다.
어제 밤늦게 도착한 우리는 산티아고 데 쿠바에 미리 와 있던 재하와 미야에게 연락을 해 놓고 집에 들어왔다. 아침에 연락이 와 있으면 만나서 오늘 하루 같이 보내려고 일찍 밖으로 나왔다.
새로운 도시에서 느껴지는 신선함에 쉴 새 없이 두리번거리며 거리를 걷다 보니 어제 들렀던 큰 공원에 도착했다. 밤 새 연락이 왔나 했더니 아직 온 연락이 없어 조금 밖을 다녀야 했다.
확실히 새로운 도시는 흥미로웠다. 눈에 비치는 풍경이 생경하여 담고 또 담았다. 이른 아침 시간이라 출근하는 사람이 많은 도시의 분주함에서 떨어져 나와 여유로운 걸음을 옮겼다.
지난날 밤에 다녔던 길은 아침에 또 다른 모습이다. 불빛으로 치장되었던 가게들은 더 밝은 태양에 어제 켜 두었던 전구를 끄고 큰 창과 문을 활짝 열어두었다. 활짝 열린 가게는 지나가는 사람도 가게를 한참이나 서서 보고 지나곤 했다.
작은 시내를 한 바퀴 돌고 나서 다시 공원에 들어오니 연락이 와 있었다. 분명 같은 곳에서 여행을 하다 불과 이틀 정도 떨어졌던 것 같은데, 얼마나 많이 친해졌는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다시 만나 반가운 마음에 밥부터 먹고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럼 박물관이 있다고 해서 그곳으로 먼저 가보기로 했다.
가는 길에 작은 상점들도 있고, 박물관들도 많이 있었다. 다들 현지 물가로는 비싼 금액의 입장료를 받는데, 외국인 입장에서 조금 저렴하다 보니 관광하는 사람들 중에는 찾는 사람이 많았다.
주로 파란색으로 칠해진 벽들 사이 작은 구멍처럼 나있는 문 안쪽으로 자리 잡은 상점들은 오래된 물건을 파는데. 아마 관광 온 사람들의 지갑을 위해 준비된 상품들 같았다. 그중에 특별히 태극기도 눈에 들어오고 체 게바라 사진도 눈에 띈다.
사람들이 모인 가게 안에는 특이한 물건들이 많다. 일부러 만들어 내는 것인지 사람들의 손에서 손으로 전해진 물건인지 알 수 없는 빈티지 함이 느껴지는 물건들이다. 나도 마음 같아선 \ 다 사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가는 길이 멀어서 어쩔 수 없이 발을 돌려 나왔다.
쿠바에서 가장 많이 마시게 되는 술은 이곳에서 생산되는 아바나 클럽이다. 모히또를 마시는 사람이라면 그 안에 아바나 클럽이 베이스로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쿠바에서 럼이 유명하게 된 것에는 아픈 역사가 함께 하고 있다. (럼의 역사와 만들어지게 된 배경은 아래에 아바나의 유명한 클럽에 다녀온 글을 참고하면 된다.)
럼은 무색무취의 액체이다. 이것이 럼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렁을 그냥 마시면 맛은 없다. 그냥 알콜만 있는 독한 음용수와 같다. 이러한 단점이 오히려 장점이 될 수 있었다. 위스키와는 다르게 한 가지 술을 마시지 않는 칵테일은 도수만 높은 럼을 좋아한다.
럼에게는 향이 없다. 그리고 특별한 맛이 없다, 그래서 다른 향을 첨가하기도 쉽고 다른 맛을 첨가하기도 좋다. 그래서 럼에 라임과 설탕을 섞은 것이 모히또가 된다. 럼에 파인애플 주스를 넣으면 피냐콜라타가 된다. 이처럼 무색무취의 럼은 모든 술의 기초가 된다.
산티아고 데 쿠바에서는 럼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 바카디 럼의 박물관이 위치하고 있다. 바카디의 생산이 높은 이곳에서 한때 영광을 누리던 바카디는 쿠바의 독립과 함께 물러나긴 했지만 과거의 영광의 자리는 남아 있었다.
그 자리에 아바나 클럽이라는 쿠바 회사가 들어오면서 럼의 명성을 이어받았다. 럼은 과거의 술이 아니다. 현재에도 많은 칵테일의 베이스가 되면서 그 인기가 식지 않는다. 사람들이 많이 마시는 위스키와는 다른 점이 꾸준한 인기와 명성을 유지하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미화 2달러의 돈으로 입장한 럼 박물관은 쿠바에서 럼이 살아남은 역사를 담고 있다. 물론 바카디의 역사도 언급되어있지만, 아바나 클럽의 탄생을 말하기 위해 조금 언급되었을 뿐 거의 아바나 클럽의 홍보관과 같았다.
보다 보니 술이 당긴다. 진열장을 저렇게 만들어 놓으면 꺼내서 마셔보라는 뜻이 아닐까?
진열된 병을 바라보고 있으니 나도 술 한잔을 마시고 싶을 정도였다. 그중 많은 병이 아바나 클럽이었다. 아바나 클럽도 그 종류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는데, 색깔 마케팅이라고 하는 라벨의 색을 다르게 하면서 가격의 등급을 만들었다. 당연히 들어가는 재료의 등급과 오크에 종류가 다르고, 연수가 달라지는 특징이 있으니 쉬게 라벨의 가격이라 할 수 없다.
오래된 역사만큼 라벨의 변천사와 병 모양의 변화도 볼 수 있다. 다만 건물이 작고 그렇게 큰 규모가 아니라 생각보다 돌아보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중국을 여행할 때, 청도의 칭따오 매장을 견학의 꽃은 시음이었다. 칠레의 수많은 와이너리를 투어 했던 이유도 결국 와인 시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기도 마찬가지로 럼을 한잔씩 시음할 수 있었고, 이곳에서 만들어낸 새로운 브랜드의 럼도 맛볼 수 있는 시음의 시간이 있었다.
제일 기다렸던 럼의 시음에서는 네 병의 술이 있었다. 각자의 취향이 있겠지만 워낙 럼의 기본 맛은 '무(無)" 맛에 가깝지만 조금씩 다른 맛과 향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감각은 있었다. 진짜 시음은 감칠맛이 날 정도로만 먹어 볼 수 있었는데, 나는 발동이 걸리면 끝까지 달려보자는 심산이었는데. 들고 있던 비어버린 빈 잔을 만지작 거리며 나올 수 밖엔 없었다.
참고, https://brunch.co.kr/@thetour/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