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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수학] 대화 속의 참견 (무한과 유한)

유한하다 vs 무한하다.

by SseuN 쓴

어느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공계 전공자 남자 친구에게 여자가 물었다.

"오빠 나 오늘 피부 깨끗해??"

"언제나 깨끗해. 오늘만 깨끗하겠어? 내일도 깨끗할 거야"

"아니! 오빠가 그걸 어떻게 알아??"

"수학적 귀납법이라는 게 있는데.

첫날 깨끗하고, 다음날도 깨끗하다면 영원히 깨끗하다는 거야"


이 장면을 같이 보고 있던 친구가 말했다.

"나도 이해하고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 "

"그럼 내가 가르쳐줄게"



나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텔레비전에서 나온 커플의 일상에서 쓰인 수학에 대한 대화가 이 글을 쓰는 계기가 되었다. 아직 이름을 붙이기 전이지만. 가제 "엄마 수학"이라는 글을 쓰고 있던 나에게 그보다 조금 더 가벼운 이야기로 수학을 이야기할 수 있는 시발점이 되었다. 수학이라는 재미없는 이야기를 하기엔 내가 알고 있는 분야가 수학이고, 공교롭게도 내가 지금 가르치는 과목이 수학이다 특별한 것을 하고 있지 않지만 나는 많은 사람들이 수학을 어려워하지 않고 쉽게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글을 쓰기 시작한다.


수학은 우리 생활 속 깊이 들어와 있다. 절대로 빼놓을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알 때까지 배워보자 하기엔 엄두가 나지 않는다. 나도 마찬가지다. 수학을 완전히 다 알지 못한다. 가끔 수학을 배우고 싶다는 성인이 있어도 뭘 어떻게 이야기로 풀어 나가야 하는지 어렵기도 하다. 그러다 우연히 보게 된 짧은 동영상에서 영감을 얻었다. 수학은 어쩌면 조금 단순하게 설명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더 쉽고 가벼운 예시를 들어 이해하는 폭도 늘리고, 수학을 대하는 마음도 열어주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유한대와 무한대'에 대한 이야기이다. 중학생이 되면 배우는 수학적인 개념 중에 하나로써 수의 한계성을 다루는 단원이 있다. 분명 손에 잡히는 것은 아닌 이야기다. 어쩌면 철학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유한대와 무한대는 사실 수학 시험을 치는 학생에겐 철학도 수학도 아닌 그저 배우고 싶지 않은 "많은" 숫자일 뿐일지 모른다. (그것도 연속적이지 않으면서 조금 더 재미가 없는.....)


잠시 중학생이 배우는 무한과 유한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5 나누기 13을 했을 때, 몫을 0.384615384615.....로 나온다. 끝도 없이 나누어진다. 이렇게 나온 몫의 소수 값을 무한 소수라고 하고, 384615처럼 반복되는 구간을 순환 마디라고 표현한다. 그나마 순환이 되는 마디가 보이는 소수는 보기에(?) 좋다. 그것과 다르게 원주율(나중에 설명할 것)은 3.14 이후에 불연속적이고 무한한 수의 연속이라 다 읽을 수도 없고, 표기할 수도 없다. 그러니 흔히 3.14로 간단하게 표현해 버린다.


유한과 무한은 우리 일상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무한함과 유한함은 우리의 심리와 연관 지어 볼 수 있다. 홈쇼핑에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매진 임박이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사람들의 소비 심리를 자극할 수 있었다. 이것이 우리가 유한한 물건을 가지고 싶게 하는 심리를 자극함으로 소비를 촉진하게 만드는 것이다. 지금도 쇼핑 분야에서는 유한성을 많이 사용하는 이유가 된다. 유한함은 우리에게 다급하고 촉박함을 준다. 마치 곧 사라져 없어질 것처럼 심리를 조종한다.


역시 유한함은 희소성을 부각하면서 나의 지갑을 열리게도 한다. 하지만 10분 뒤에 출발하는 기차 앞에서 헤어져야만 하는 연인들의 아쉬움과 3박 4일의 휴가지에서 마지막 날 밤에 느끼는 아쉬움은 휴가가 유한하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유한함의 힘이 아닐까?


유한함과 반대로 무한함은 조금 느긋하게 만들어주는 성향이 있다. 특히 공기가 늘 나와 우리가 숨을 쉴 수 있음에 전혀 의심을 하지 않는다. 또한 지구가 태양 주위를 더 이상 돌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은 마치 연예인과 남자 친구의 대화에서 알 수 있듯이 연속성이 주는 무한함에 그 이유가 있다. 하지만 우린 무한의 연속에 속으면 안 된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무한하다'라는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무한정 있다는 게 아니라 우리가 셀 수 없을 만큼 큰 수라는 뜻이니 말이다. 지금은 무한정 있다고 생각이 들지만 무한정 있어 보이는 것들도 어느 날에는 결국 한계를 보이게 된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너무나 모르고 살았던 북극의 얼음도, 우리나라의 물도, 중동에 있는 석유도 결국에는 그 한계를 보이게 될 것이다. 이것은 무함함이 가지는 반전이 아닐까?


유한함과 무한함이 가지는 매력은 각각의 성황에 따라 그 성격이 더 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무조건 유한하기만 한 것도 없고, 영원히 무한한 것도 없다. 휴가는 당장엔 유한하지만 또 한 번 누릴 수 있기 때문에 그 짧은 시간을 보내고 나서도 기대감을 가질 수 있을 것이고, 당장은 눈앞에서 헤어지겠지만, 다시 만날 수 있는 날이 곧 오기 때문에 견딜 수 있을 것이다. 무한하게만 느껴지던 공기도 오염되어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없는 날이 적어지고, 맑은 물이 지천에 있어 물을 사 먹는다는 생각을 못했던 그때는 지금을 상상할 수도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유한함과 무한함이 주는 조금은 특별한 일은 무엇이 있을까? 자시나마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글을 적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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