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에게 휴가란?
뜨거운 도시의 태양을 벗어나 조용하고 한적한 도시의 여유를 시작한다. 역시 도시 간 이동은 합승택시가 최고다. 이번엔 발품을 팔지 않고 숙소 주인에게 부탁을 했다. 얼마의 가격이 차이 나는지 모르지만 숙소에서 마련해준 합승 택시는 우리가 지내고 있는 숙소의 문 앞까지 데리러 와준다.
무거운 짐을 대문 앞으로 가져다 놓고, 주인 분들과 인사를 나눈다. 3일의 짧은 시간 조금은 아쉬운 마음을 가지고 돌아섰다. 우리의 일정으로 바라꼬아를 다녀와 산티아고 데 쿠바에 다시 오게 되는데, 그땐 숙소를 이곳으로 정하고자 연락처를 받아 밖으로 나왔다.
역시나 장거리 도시 간 이동 버스는 쿠바에서 다시 만들어졌을 것이다. 외형을 보면 쉽게 알 수도 있지만, 이제 외국에서 바로 수입된 차가 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버스 안쪽은 우리 말고도 몇 명의 승객을 태우고 있는 상태였고, 우리 뒤로도 몇 명을 더 태우고 나서야 큰 도로로 진입했다.
버스 안에 의자는 원래 차에 있던 의자가 아니라 새롭게 달아 둔 것이라 편한 듯하기도 했지만, 반대로 원래 차에 달려 있던 의자가 아니라 자세가 좀처럼 잡히질 않았다. 그래도 앉아서 갈 수 있음에 늘 감사하며 버스에 올라 불편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앉아 있지만 금방 잠이 들어 버린다.
버스는 잠시 달리는가 싶더니 어김없이 휴게 도시처럼 보이는 곳에 정차를 했다. 뭐랄까? 차가 낡아서 생기는 장점이라고 할까?. 생각보다 짧은 거리도 쉬는 시간이 포함되어 있다. 어지간한 거리도 시간이 길어지게 된다. 하지만 이런 운행이 익숙해진 우리는 군말 없이 앉아서 기다리거나 밖에서 음료를 마시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때로는 새로운 마을을 구경하는 것도 기분이 좋은 일이다. 기대 없이 내린 소도시의 풍경은 대도시의 느낌이 아닌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심지어 작은 도시의 모습을 지금이 아니면 볼 수 없는 모습이라 생각하면 귀찮아도 한번 내려서 보기도 하는 편이다.
이번에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바라꼬아는 큰 도시가 아니다. 작은 군소 단위의 도시는 대도시와는 다르게 한적함과 여유를 함께 가지고 있는 도시로 유명하다. 마치 단층 주택 마당에 널려있는 빨래가 바람에 말라 가는 걸 끝까지 보고 있어도 지루하지 않을 정도로 평안한 휴식을 가질 수 있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러 도착한 바라꼬아의 첫인상은 다른 도시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내려준 버스 터미널 앞 공터에는 자전거 인력거들이 주차되어 있고, 그 뒤로는 바다가 보이는 바닷가의 작은 마을 모습이었다. 대도시의 꼬꼬 택시라던지 검은 연기를 내며 달리는 콜렉티보 택시는 온데간데없다.
심지어 버스 터미널 앞은 바로 바다였다. 빨간 페인트가 칠해진 방파제는 바닷물이 올라오는 것을 막아내기엔 턱 없이 낮은 사이즈로 만들어져 있다. 그 역할을 다 하지 못하는 낮은 벽을 가진 해변으로 굽어지며 나있는 산책로는 바다색에 대비하여 선명하게 붉은색을 가지고 있었다.
쿠바의 4월이 주는 더위는 우리 계절의 여름과 비슷하다. 연중 기후가 높은 편에 속하는 쿠바의 날씨에 비하면 아직 봄에 가까운 따뜻한 날씨라고 하지만 조금 걷기만 해도 땀에 젖을 듯한 습한 열기가 존재했다.
더위에 쉽사리 움직일 수 없었던 우리는 터미널에 나와 있는 몇 명의 인력거 기사분들과 눈인사를 했다. 어느 정도 쿠바에 적응을 했는지, 이제 호객이 두렵지 않다. 오히려 호객을 하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의견을 전달하고 꼭 맞는 숙소를 정하는 요령이 생기기 시작한 때 이기도 했다.
숙소를 소개하고자 하는 몇 명의 명함을 받아 들고, 그 위에 인쇄된 집의 대략적인 모습과 위치가 우리가 원하는 곳인지 천천히 확인해 봤다. 다행히 받은 명함 중에 적당한 숙소가 보며 주인을 찾았고, 갑갑한 실내 정류장의 건물에서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초행길이라 숙소로 가는 길을 몰랐지만 그렇게 멀고 긴 거리는 아니었다. 도착하자마자 감이 없었던 여행자에의 실수였을까? 주인이 직접 운전을 하겠다는 인력 자전거에 생각도 없이 가방과 우리 둘의 몸을 얹었다.
가볍게 올라탔지만, 타이어가 터지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처음부터 이 글을 읽어온 독자라면 알겠지만, 우리 둘의 무게는 생각보다 가볍지 않기 때문이다. 스텐리의 몸무게는 적어도 60킬로그램 이상, 나는 80 킬로그램애 가까운 무게를 자랑하고, 거기에 우리가 들고 온 가방의 무게까지 합치면 180킬로그램은 족히 된다.
거기에 자전거 택시의 뼈대의 무게까지 더하면 사실 200킬로그램에 가까운 무게를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습하고 더워진 날씨에 운전하는 분의 뒷모습을 보는 건 쉽지 않다. 얼마 이동하지도 못했는데, 등에 땀이 진하게 번져 나가는 게 여간 신경이 쓰인다.
한 번이라도 와 본 적이 있는 곳이었다면 가방만 싣고 우리는 걸어갔을 텐데, 생각도 없이 뒤에 타면서 운전하는 사람도 뒤에 타고 있는 사람도 불편해진 상황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서비스로 해주는 것이라니 그 호의를 쉽사리 거절하기도 힘든 일이다.
상황이 어찌 되었든, 뒷자리의 불편함이 조금씩 익숙해질 무렵, 주변이 천천히 보이기 시작했다. 이곳은 산티아고 데 쿠바에서 그리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니라 그런지 여기도 영웅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건물마다 그려진 영웅들의 모습은 아바나의 관광지의 보여주기 식 광고판이 아니라 작은 시골 마을 벽에까지 빼곡하게 담겨 있었다.
이쯤 되고 보니 이들이 생각하는 혁명의 시기는 절대 쉽게 잊을 수 있는 시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마다 그려진 이들의 모습은 결코 아웃테리어의 모습만으로 볼 수 없었다.
영웅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초상에 그들이 했던 말들까지 기억하는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쿠바 사람들은 아마 늘 고마움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을지 모른다.
이곳 역시나 사회주의적 분위기가 가득하다 보니 낮시간에 일을 나가지 않는 어르신들이 많이 보인다. 공동으로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이미 출근한 시간이고, 개인적으로 장사를 하거나 일을 하는 사람들도 일터에 나갈 시간이라 마을에는 어르신들이 많이 보인다.
중앙에서 배급하는 배급 문화가 아직 남아 있고 자급자족이나 물물교환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쿠바의 모습을 여실히 볼 수 있는 작은 마을의 모습이다.
아직은 생소한 이곳에서 우리는 며칠간의 여유를 가질 생각이다. 보편적 여행보다는 주관적인 여행을 좋아하는 편이라 이곳에서 머무는 며칠간의 특별한 여정을 즐겨 볼 생각이다.
여정에서 빠질 수 없는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럼과 맥주, 그리고 마실 물이다. 숙소를 들러 가방을 놓자마자 밖으로 나와 찾아간 곳이 바로 마트였다. 생각보다 일찍 문을 닫아버리는 마트를 서둘러 들러 오늘 마실 것과 숙소에서 시간을 보내면 빠질 수 없는 맥주를 샀다.
둘 다 애주가라서 그런지 술은 사면 한 박스씩 사버린다. 맥주 한 박스와 쿠바에서 빠질 수 없는 럼 주 한 병을 집어 들고 숙소로 들어왔다.
입을 떡 하고 벌리는 주인에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고 방이 있는 이층으로 올라왔다. 쨍쨍하며 부딪히는 맥주병 소리와 함께 미리 부탁한 저녁의 냄새가 계단을 따라 우리와 함께 올라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