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 고향이 되어가는 중
점점 바라꼬아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면서 마을의 풍경이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숙소에서 나가는 길이 익숙해져 버렸다. 여행을 하다 보면 흔히 겪게 되는 일이다. 처음엔 빨리 익숙해지고 싶어 낮과 밤도 구별 없이 밖을 다니며 머릿속에 넣기를 반복하지만 어느 순간 이곳의 모습이 익숙해지면 다른 도시로 가야 했다.
낯선 곳에 도착하게 되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우선 머물러야 하는 숙소를 정하는 일이 그렇다. 새로운 지역을 가게 되면 내 무거운 배낭을 내려 둘 숙소 하나 찾는 게 제일 중요하다. 긴 이동이라도 지치는 일이고, 짧은 여정이라도 힘이 빠져버리는 도시 간 움직임은 낯섦이라는 환경을 더해 피로감을 준다.
미리 정해둔 숙소가 있다면 다행이지만 도시를 잘 모르고 숙소를 고를 수 없다 보니, 숙소를 하나 정한 후 주변을 알아보는 시간에 들이는 에너지도 보통은 아니다.
다행히 숙소가 빨리 구해진다면 숙소에 나와서 제일 먼저 찾아야 하는 곳이 은행과 식당이다. 은행은 당연히 돈을 찾기 위함이고, 음식점은 숙소에서 밥을 먹을 수 없는 때에는 밖에서 사 먹게 되는데. 그곳에서 맛집이라는 곳에서 현지식으로 밥을 먹고 싶을 때가 많이 있다 보니 식당을 찾는 것도 꽤나 많은 시간을 들인다.
슈퍼나 군것질 거리를 파는 가게를 발견했다면 꼭 하나 사 먹어보고 맛집 리스트를 수정한다. 필요하다면 지도까지 열어서 가상의 핀을 고정하기도 한다.
식당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곳이 하나 더 있다.
하루 여행을 마치고 한잔의 맥주를 마실 수 있는 가게를 찾아 한다. 때로는 밥을 파는 곳에서 맥주를 같이 내어주니 한꺼번에 음식과 곁들여 먹을 수 있도록 맥주를 같이 주문 하지만, 저녁을 먹고 나서 입이 심심해지면 가볍게 맥주 하나 마시고 싶으면 찾는 곳이 있어야 했다.
앞서 이야기했던 건 거의 모든 나라나 새로운 도시에 적용된다. 하지만 한 한 곳은 모든 순위를 바꿀 필요가 있다.
바로 쿠바다. 쿠바는 모든 새로운 도시의 도착과 동시에 핸드폰을 사용할 수 있는 공원을 찾아야 한다. 인터넷이 되고 마는 문제는 쿠바에서 중요한 문제였다. 내가 여행할 당시에는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유명한 까사나 집주인의 요청이 있다면 숙소에서도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다. 수많은 나라에서 이제 와이파이 사용은 무료지만 쿠바는 여전히 선불형 비용 정책을 고집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그때와 지금이 같다.
적당한 숙소와 식당, 슈퍼 그리고 맥주 한잔 할 수 있는 가게를 찾았다면 산책할 수 있는 나만의 경로를 만들어 둔다. 일어나면 돌 수 있는 길이나, 집에 들어갔다가 옷을 갈아입고 편하게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고 나와 다닐 수 있는 길을 만들어 본다.
그럼 이곳에 머루는 동안 같은 곳을 산책하게 된다. 쌓여만 가는 풍경의 경험은 익숙함을 더해준다. 저녁마다 내가 게임을 하는 아저씨들과 친해진다. 아이들이 공을 차고 있으면 함께 할 수 있을 정도로 낯익은 사람이 되어간다.
사람들 사이에 스며들면서 자연스럽게 일상이 되어 간다. 어딜 가나 숙소를 찾아갈 수 있게 되고, 어디에서 먹는 밥이 맛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떠날 때가 된 것이다.
아마도 내가 여행하는 방식이 이런 게 아닌가 싶다. 익숙해지면서 생기는 권태로움과 동반되는 나태함을 경계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자유롭고 싶어서 시작한 여행에서 부조화스럽게도 조급함이 생기는 것일지도 모른다. 무한정할 수 있는 여행이 아니 보니 정해진 돈으로 즐길 수 있는 많은 것에 대한 갈망이 있을지도 모른다
익숙함을 경계하고, 장기적 멈춤에는 후회를 하게 된다.
이제는 바라꼬아를 떠나 다를 도시로 가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한 곳에서 정착하는 것을 극도로 피하게 되는 여행자의 입장에서는 어디에서 출발해도 집에 갈 수 있는 정도의 익숙합은 피하고 싶어 진다.
그렇게 바라꼬아가 나의 익숙함으로 들어오게 되면서 다음 일정을 계획하게 되었다.
거의 가족처럼 지낸 사람들과 이별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조금 서운하긴 하지만 그 서운함에 빠져있기보다는 조금 더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이야길 나누기로 했다.
저녁마다 밥을 1층에 차려주셔서 우리만 먹는 시간이지만, 티비를 보면서 우리와 함께 대화를 이어주신다.
가벼운 이야기와 하루 일정까지 이야길 하다 보면 마치 집에서 엄마가 오늘 뭐했는지 물어보시는 느낌을 받는다. 해외에서 느끼는 가족의 정이 바로 이런 것이라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