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꼬아는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다는 특성상 어딜 가나 쉽게 바다를 만날 수 있다. 대구에서 나고 자라서 바다를 보는 것이 나에게는 특별한 날에 생기는 이벤트와 같았다. 이제야 차를 사고 바다를 쉽게 갈 수 있지만 차를 구입하기 전엔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가서 다시 버스를 타고 바다를 보러 가야만 했다.
기차를 타는 것도 낭만이었고, 버스를 타는 것도 낭만이었지만 몇 번이나 갈아타고 도착하는 바람에 바다를 볼 수 있는 시간이 얼마 안 되긴 했다. 그래도 그렇게 바다를 보는 짧은 시간이 일상에 큰 동력이 되기도 했다.
이 작은 마을에서 지내는 동안 매일 바다를 나갔던 이유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바다를 못 보고 자라서 그런지 바다에 밀물과 썰물만 봐도 기분이 좋다. 일렁이는 물결에 내 마음도 넘실거린다. 오늘도 배가 들어오는 작은 방파제에 사람들이 바닷바람을 쐬러 나왔다. 그냥 바다를 보는 사람, 난간에 올라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도 있다. 누구는 계단에 앉아 낚시를 하는 것 같은데, 잡히는지는 모르겠다.
처음엔 낚시로 걸려오는 물고기에 대한 호기심으로 다가갔었다. 하지만 우리가 있어서 그런 건지 아님 원래 고기가 잘 무는 편이 아닌지 한참을 빈 바늘만 낚아 올리는 그분의 옆에서 오래 있기 불편해졌다. 괜히 우리가 옆에 있어 고기가 걸려들지 않을까 싶어 옆에서 잠시 구경을 하다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내가 하지 않아도 타이밍이 그렇게 만드는 경우가 있다. 때 마침 우리가 다가가서 물고기가 한 마리도 안 물었던 거 같다가도 원래 고기를 못 잡는 중이었는데, 우리가 가서 조금이라도 열심히 던지게 되는 것 일수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 했다. '
여기서 더 있어 봤자 좋을 것 없다 싶어서 일어 선 것이다.
반대쪽으로 걸어오니 바라 꼬아 야구장이 나온다. 오늘도 역시나 야구 경기는 볼 수가 없었다. 이전에 봤던 산티아고 데 쿠바보다 훨씬 낡은 야구장 시설이었다. 곳곳에 패인 잔디 위에 3루까지 베이스가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다. 페어 존이 정돈이 되어있지 않는 모습이긴 하지만 야구장의 구색은 갖추어있다.
내가 어렸을 적, 대구의 작은 도시에는 야구장이 변변치 않았다. 고교야구가 유행이었고, 삼성팀을 지역 연고팀으로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인기는 대단했다. 초등학생 때는 마치면 야구를 했다. 던지고 치고 달리면서 친구 들고 운동장을 차지했었다.
운동장은 넘어지면 무릎이 아작 나는 모래바닥으로 되어 있다. 책가방을 모래 위에 올려놓고 각 1-3루 베이스를 만들어 야구를 시작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흙먼지를 뒤집어써야만 끝나는 야구는 피부까지 검게 그을린 여름을 만들어 준다.
작은 소도시에서도 야구를 할 수 있는 구장이 마련되어 있는 쿠바보다는 덜하지만 우리도 야구의 열정이 뜨거웠다. 시원한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바다가 보이는 야구장에서 야구를 하면 어떤 느낌이 들까 싶은 생각을 하며 구장을 걸어 다니다 반대편 출구로 나왔다.
밖으로 나와 프라이빗한 해변으로 갔다.
바다는 지겹게 보는 거 아닌가 하겠지만 나는 돌아서면 금방 보고 싶어 진다. 가까운 곳으로 산책을 나왔지만 가방을 가지고 온 이유는 바다에 들어가기 위해서였다.
해변은 매일 아침, 저녁으로 산책을 다녔지만 오늘은 해변에 자리를 잡고 바다에 들어가기 위해 가까운 곳으로 배를 탔다. 강과 바다가 만나는 그런 곳이라 그런지 물살은 빠르지 않지만 깊어서 쉽게 건널 수 없었다. 작은 배를 타고 건널 수밖에 없는데, 1페소(약 120원)라고 하길래 기쁜 마음으로 올랐으나 우리 게겐 1페소가 여행자 화폐였다.(약 1달러)
그들의 규칙에 따라 돈을 내고, 건너편 해변으로 갔다.
돈을 내고 들어간 해변에는 사람들이 없을 것 같았다. 쿠바에서 괜히 돈을 내고 들어가는 곳이 그 값을 했다고 생각하는 장소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예상과는 다르게 이곳에는 캐나다에서 왔다는 분들이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고, 우리는 조금 멀리 자리를 잡고 바닷가로 들어갔다.
바닷가에 밀려오는 파도는 자연의 힘을 보여주는 예시라고 생각한다. 단 한 번도 쉼 없이 밀려왔다가 빠지는 파도의 모습을 보면 멈추지 않는 영원한 건전지가 연결된 기계가 존재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순환의 연속에 누워 발 끝에 닿은 시원하 바닷물에 절여질 때쯤 몸에 붙은 모래를 털고 일어났다.
아까 들어갈 때 탔던 보트를 다시 타고 나와서 모래사장으로 나오는데, 해변으로 갈 때 없었던 낚시꾼 한 명이 계속해서 투망을 던지고 있었다. 언제부터였을지 알 수 없지만 두둑한 바구니에 물고기가 넘친다. 얼마나 잘 던지는지 그물이 만드는 면적이 족히 내 방의 두배는 되어 보인다.
그렇게 던지고 끌어 오길 몇 번이나 했을까?
어느 정도 고기를 담은 바구나에 담을 자리가 없을 때쯤 낚시꾼은 그물을 거둬 들고 유유히 돌아갔다.
텅 비어버린 모래사장에 발자국을 남기며 떠나는 그의 뒤를 따라 우리도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섰다. 해가지니 집으로 돌아온 가족들과 산책을 나온 사람들도 만나고, 모래 장난을 치고 있는 아이들도 만났다.
바다에 살면 이런 게 좋은 거 같다.
내가 좋아하는 바다를 마음껏 볼 수도 있고, 원하는 시간에 바다로 나올 수 있는 여유로움이 말이다.
열심히 일하고 돌아오면 바다가 있는 마당이 있는 집을 꿈꾸며 숙소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