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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euN 쓴 Oct 27. 2022

다시 아바나

동행을 먼저 보내고 쓰는 글

아바나의 시간은 내가 있으나 없으나 동일하게 흘렀을 것이다. 하지만 아바나를 거의 한 달 만에 도착한 우리는 달라진 우리의 관점과는 달리 아바나의 차이를 어떠한 모습도 찾을 수 없었다. 틀린 그림 찾기 최종 단계를 초점 없이 바라보듯 전혀 찾을 수 없는 미궁 속의 도시였다. 심지어 내가 도착했던 날의 날씨와 닮아서 잔뜩 흐려진 하늘이 보였다. 


이제 이틀이 지나면 이곳을 떠나 멕시코로 나가야 했던 나의 동행이 떠나는 날이 내가 쿠바에 도착한 날과 닮았다니... 아이러니했다.


다시 한번 도시를 걸으며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이곳에서 삼일 뒤에 한국으로 돌아가는 러시아 행 비행기를 타기 때문에 우리는 만날 수 있는 날이 쉽에 오질 않을 것 같았다. 같이 한국으로 가는 일정이면 모르겠지만 형은 아직 여행이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더욱이 다음에 만날 수 있는 날을 확정 짓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아바나의 처음은 형이 있어 든든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공항에서 나와 낯선 도시에 발을 디뎠을 때. 동행이 이곳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위로를 받으며 당당해진 어깨로 거리를 활보했다. 마음 둘 곳 하나 없는 낯선 나라에 도착하게 되면 경계가 심해지기 마련인데, 쿠바는 달랐다. 심지어 공항에 내려 아바나 시내로 들어올 때에도 나를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다는 기쁨과 기대감으로 벅찬 감정이었다. 


멕시코와 아주 인접한 국가임에도 전혀 다른 공기를 맞이 했다. 사람들의 표정이 달랐고, 정감 있는 태도가 그랬다. 잘 짜인 시스템에 들어온 기분이 들지 않아서 좋았다. 어떤 포스팅에서 쓴 적이 있는데, 공항이라는 곳은 누군가가 낯설지 않게 표준화된 모습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쿠바의 수도인 아바나의 공항은 그 건물부터 남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낮은 건물에 에스컬레이터도 없고, 인천공항에서 흔하게 봤던 무빙워크도 없었다. 비행기에 내려 코너만 돌아서면 입국심사대가 있고, 심사대를 통과해 나오면 바로 공항 로비에 서게 된다. 간단하고 쉽게 입국했다. 

쿠바의 이야기를 마무리하려면 역시나 동행했던 스탠리 형을 빼놓을 수 없다. 한 달여의 시간이 지났다. 쿠바라는 나라에 도착해서 한 달을 같이 보냈다. 잠도 같이 잤고, 먹을 것도 같이 먹었다. 아무도 없는 해변에 누워 있을 때에도 우리는 같이 있었다. 심지어 기차가 레일 위에 멈춰서 하루를 보내야 했을 때에도 우리는 서로를 의지하며 보냈다. 


감사함이 큰 사람이다. 여행에서 주로 만나는 사람들은 나보다 어리거나 내 또래였는데, 형은 나보다 형이었다. 형이 뭐 그렇게 특별하겠냐 싶지만 나이가 들면서 가장 힘들었던 일이 어른이 사라진다는 것이었다. 내가 타인에게 어른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나에게도 어른은 필요했다. 멘토라는 말이 더 흔한 이야기지만 아무튼 어른이 있다는 건 삶을 살아가는데 지침이 되기 때문이다.


꼭 좋은 어른이 아니어도 된다. 어른은 그대로가 좋다. 나보다 경험이 많이 있는 사람도 어른이고,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도 어른이다. 내가 해본 적 없는 일은 했던 사람도 어른이고 내가 할 수 없었던 일을 했던 사람도 어른이다. 어른은 그 자체로 나에게 큰 영향력을 주는 사람이다. 


내가 온전히 쿠바를 느끼고 즐길 수 있었던 큰 이유 중 하나도 든든한 형이 있었기 때문이다. 모르는 거 있으면 물어볼 사람이 있고, 불의에 같이 욕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형이었다. 같이 다니는 동안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또 헤어졌다. 하지만 쿠바에서는 늘 함께 해 줬다. 


여행하고 책을 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다 보면 동행에 대한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본 적이 있었다. 사실 처음 만난 사람들 사이에서 관계를 유지해 나간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가지고 있는 개인적인 성향들을 상대방을 위해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 꽤나 어렵기 때문이다. 여행이라는 관계는 서로에게 종속되어 있지 않다. 구속된 상황은 아니라는 말이다. 


언제든지 떠날 수도 있고, 언제든지 만날 수 있는 관계를 이루는 서로에게 늘 양보만 원하는 것도, 양보를 하는 것도 힘든 일이다. 

처음 이곳에 도착하고 함께 다녔던 길은 다시 나갔다. 사람들이 새롭게 이곳에 와서 관광을 즐기는 모습이다. 사진기를 들거나 핸드폰을 들고 쉴 새 없이 사진을 찍으며 다닌다. 배낭을 아직 풀지 못하고 여전히 어깨 위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도 보인다. 


나도 이들처럼 이곳에 도착했다. 다만 여정을 함께 할 수 있는 동행이 있어서 미리 예약을 해둔 집에서 잠을 잘 수 있었고,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는 길을 다니며 연신 셔터만 눌러 댈 뻔했지만 속성으로 가이드를 해준 덕분에 걸음 수를 줄이는 첫날이었다. 


뿐만이 아니라 현지 시세와 가격을 미리 다 알고 있었고, 숙소 근처에 맛있는 치킨집을 알아 둔 동행 덕분에 매일 저녁 치맥으로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물론 그 집에 치킨이 외국인과 내국인의 가격차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형이 가고 나 혼자 그곳을 방문했을 때 알게 되었다. (말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 싶어 지금까지 말을 안 했다.) 그렇게 쿠바를 시작했다. 

다시 도착한 아바나는 익숙한 것이 더 많았다. 요반나라는 숙소에 짐을 풀고 첫날에 다녔던 그 길을 다시 걸었다. '엘 플로디타'를 다시 갔었다. 그대로였다. 구 시가지를 다시 걸었다. 그대로였다. 대성당을 지나며 그 앞에 있는 동상을 다시 만났다. 그대로였다. 말레꼰 해안길까지 걸어 다녔다. 여전히 파도가 몰아치고 있었고, 이곳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책 하나를 들고 앉아있다. 이런 풍경 역시 그대로였다. 


우리에게 인사도 없이 연주를 시작하며 호응을 유도하던 4명의 뮤지션들은 여전히 그곳을 지키며 사람들에게 품 삯을 받고 있었다. 한국인이 많이 없던 그 시절에 우리를 기억하던 그중 한 명과 짧은 인사를 건네며 조금 더 멀리 있는 해변까지 걸어 아바나를 크게 돌았다. 

쿠바라는 나라의 특별함이 묻어 있는 아바나의 어느 한 골목을 보고 있으니 언제 다시 한번 이곳을 올 수 있을까 하는 아련함이 생겼다. 아바나에 있으나 다시 아바나에 오고 싶어졌다. 다시 올 때는 누가 동행 일지 전혀 알 수 없다. 하지만 아마도 내가 그의 어른이 되어 있지 않을까 싶다. 


한번 다녀왔다고 꼰대의 역할을  할지도 모르지만, 처음이라 생소함을 느끼지 않게 쿠바를 선보여 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좋은 동행을 만난다는 것이 행운이다. 사람들에게 나도 그런 행운을 전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해 본다.

저녁에는 아바나 럼주를 한잔  마셨다. 아니 사실 한 병을 마셨다. 떠나는 사람이 남은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이야기를 남긴다. 나도 떠나는 사람에게 전하는 이야기를 했다. 형은 동생에게 전하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형에게 전하는 이야기를 했다.  이렇게 동행이 있는 마지막 쿠바의 밤을 지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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