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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euN 쓴 Nov 15. 2022

안녕, 잘 있어.

또 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사람은 돌아서면 또 보고 싶어 진다. 좋은 향을 남기는 사람, 좋은 말을 남기는 사람이 그렇다. 사람뿐만이 아니라 좋은 장면을 볼 때에도 되감기를 해서 다시 보게 된다. 대사가 여운을 남길 수도 있고, 장면이 그럴 수 있다. 여행을 하다가 보면 좋은 경치가 있다면 넋을 놓고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것처럼 특정한 것에 한참의 시간을 뺏긴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다는 말은 그래서 오는 것 일수도 있겠다. 내가 보고 있는 지금이 현실성 전혀 없는 그 무엇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여운을 남기는 사람은 다음을 기대하게 된다. 우연히 버스에서 마주친 누군가에게 느끼는 여운은 그 번호의 버스를 탈 때마다 생각이 나고, 지하철에서 내 앞에 앉은 그 사람이 주는 인상에 매료된다면 역을 통과하는 시간에 그 어렵다는 상대성 이론이 적용된다. 나에게만 짧아지는 시간은 믿을 수 없는 현실이 되어 버린다. 


한 달이라는 시간은 결고 짧은 시간이 아니다. 쿠바에 도착하고 한 달이 짧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은 나에게만 빠르게 흘렀고 어느새 한 달이라는 시간은 지나버렸다. 아바나에 도착해 쿠바의 서쪽과 동쪽으로 다니면서 다시 아바나로 돌아오는 시간이 한 달이었다. 


부족했다. 쿠바를 이해하기엔 턱 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하마 타면 한국으로 돌아가는 표를 바꿀 뻔했다. 집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이유가 없었다고 하면 쿠바에서 비자 연장은 고민이 아니라 당연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바나에서만 한 달을 지내고 싶었다. 모든 도시에서 그렇게 지내고 싶었다. 심지어 가지 못했던 곳이 더 많았기 때문에 더 미련이 남았다. 

어쩌면 정해진 일정이 있었기 때문에 그곳을 더 그리워하고, 아련해하는지도 모르겠다. 머릿속에 남은 기억의 조각은 쿠바를 미화시키기에 사용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인생을 다시 한번 더 살게 된다면 후회하는 일이 두배가 된다"

라는 말이 있다. 

다시 간다고 그때의 그 감정이 살아 날지 모르겠다. 


그래도 그 시간이 다시 돌아왔으면 좋겠고, 그렇지 못한 다면 다시 그곳에 가보고 싶다. 시가를 물고 공원에 앉아 있는 사람의 주름 사이에 시가의 향이 배어 있고,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축구공엔 새까맣게 때가 끼여있다. 길 위에 서면 멀리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의 말소리로 가득하다. 이러한 이국적이 공기가 그립다. 한국에서 한 번도 먹어 본 적이 없는 쿠바의 음식이 그립다.

공항에 들어선 그때엔 정말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실감 나게 된다. 한 달 전에 도착했던 공항에서 다시금 나가는 비행기에 올라야 했다. 변한 거라고는 넘어가 버린 달력과 나의 까맣게 그을린 얼굴 밖에서 없다. 한결같은 공항의 분위기는 내가 이곳에 처음 왔을 때와 같다. 하지만 내가 달라졌는지 눈에 들어오는 모습이 풍성하다. 입국장의 모습과 출국장의 모습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한층 온화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입국할 당시의 설렘과 낯섦에서 나오는 두근거림보다는 안정된 박동수가 주는 편안함이 있다. 처음 공항에서 들리는 모든 작은 소리에 민감했던 나는 어느새 어떤 소리에도 둔감해졌다. 만나는 사람과 숙소의 가족들에게 내가 가지고 온 것을 나누어 주면서 들고 온 가방의 무게는 절반이 줄었다. 여행 중 강도를 만나 사라진 무게보다 훨씬 가벼워졌다. 가방이 비워진 만큼 나누었던 정을 가지고 간다. 


쿠바에서도 이제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할 수 있게 되면서 외부의 사람들과 소통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쿠바에 있는 사람들과 영원히 헤어짐은 아니다. 다만 거리가 멀어 조금 늦게 만나러 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언젠가 그때 그랬던 것처럼 가방 한가득 선물을 들고 가서 그들을 만나는 시간을 기대해본다. 


안녕, 잘 있어.




P.S. 아바나에서 머무는 마지막 이틀간의 시간에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한국에서 쿠바에 신혼여행을 온 사람들과 미국에 유학을 와서 쿠바에 잠시 들러 여행을 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멕시코에서 만나 다시 쿠바에서 만나게 된 누나도 있었다. 그 사람들 모두를 기억한다. 잊을 수 없는 여행의 마지막 인연이라 아직도 그 사람들과 찍은 사진을 보곤  한다. 평소에 연락을 자주 하지 못해 이름을 잊어버린 사람들도 있고, 한국에서 한 번씩 만나면서 다시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도 있는데, 모두가 소중한 인연으로 기억한다.


이 글의 한 자리를 빌려 감사를 전하면 공항까지 나와 함께 했던 두 친구는 미국에서 공부를 하던 친구였는데, 한국으로 돌아가는 나에게 남은 쿠바의 페소를 다 나누어 주어 내가 공항 면세점에서 선물을 살 수 있었다. 얼마 안 되는 잔돈이었지만 그 돈이 그 물건과 바꿀 수 있는 정확한 금액을 만들어 줬기 때문에 살 수 있었다. 그 들이 다 잊어버렸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때의 고마움을 잊을 수 없이 이렇게 글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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