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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euN 쓴 Jan 25. 2023

소품은 내 손으로 만들어야지

연극을 위한 소품

소품2 (小品)  

[명사]
1. 규모가 작은 예술 작품.
2. 변변치 못한 물건.
3. 실물과 같은 모양으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작은 모형(模型).


연극이나 뮤지컬을 준비하면서 느낀 것은 생각보다 공연 하나에 들어가는 품이 크다는 것이었다. 종합적으로 문화 예술 공연은 종합 예술이기 때문에 다양한 분야의 준 전문가적인 견해가 필요하다. 대본에서 언급한 이야기지만 대본 하나를 창작하기 위해서는 방대한 양의 지식과 해석이 필요하다. 대본은 단순히 배우들의 대사를 적어두는 메모장이 아니다. 무대로 들어오는 입구와 퇴장하는 출구를 짜는 것으로만 한 시간 넘게 고민을 하며 쓰는 것이 대본이다. 여기에 배우 간의 대사와 행동 묘사, 그리고 조명의 변화까지 생각해야만 하는 고된 작업이다. 여기에 하나를 덧 붙이자면 그러한 대본 위에 눈에는 띄지 않지만 빠질 수 없는 소품이 바로 이 글의 주인공이다. 

연극이 좋아 시작했지만 막상 하고 보니 늘지도 않고 연극에 대한 이해도 그렇게 높지 않았다. 공연을 본적도 거의 없었고 배우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없이 자랐다. 그러니 연기에 대한 이해도가 없었으며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알 수도 없었다. 연기가 조금 늘었다고 생각이 든 적이 없이 세월만 보냈다.


연기를 못해도 내가 연극팀에 소속되어 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 팀이 연기만 하면 되는 매니지먼트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작은 공연단은 어쩔 수 없이 공연단 스스로가 창작, 기획, 연출, 무대, 조명, 홍보 등 공연을 무대에 올리기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도 맡아해야 했다. 그러니 연기를 못하는 나도 할 일이 많았다. 심지어 한 사람이 두세 가지의 역할을 해야만 했다. 


무대를 기획하고 실제  공연이 올라가려면 뒤에서 많은 사람들의  품이 들어가야만 한다는 이야기다. 그중에서 소품은 과하지도 적지도 않아야만 하는 정량의 예술이다. 만약 대본의 배경이 교실이라고 가정해 보자. 300석 이하의 객석규모가 작은 소극장의 경우 바퀴 달린 작은 칠판 하나와 책상과 의자 몇 개를 놓기만 하면 된다. 같은 상황에서 300석 이상의 대극장을 쓰는 경우 칠판도 커지고 상황에 따라 거치식 칠판을 쓰거나 바퀴가 달린 칠판을 쓰는 경우로 나뉜다. 책상과 의자의 개수도 출연하는 배우 수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소극장의 경우보다는 훨씬 많이 배치해야 된다. (무대를 비워 둘 수 없으니...) 그뿐만이 아니라 청소용 구함 게시판처럼 교실에 있을 법한 것을 더 배치해야 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우리 팀이 주로 사용하는 소극장의 경우는 소품의 민감도가 대극장 보다 높다. 소극장에서 무대 전환이 있는 공연을 하기 위해서는 모든 소품을 챙겨 나온 다음다음 막을 만들어야 하는 부담이 있기 때문에 공연의 상황에 맞게 무대에 올릴 수 있는 소품의 가짓수가 정량이 될 수밖에 없다. 


최소한의 소품으로 그 무대의 모습을 사람들이 인식하기 편하게 만들어야 한다. 서울 대학로에는 무대 소품만 제작하는 제작소가 따로 있을 만큼 그 중요도는 설명할 필요도 없을 정도이다. 역시나 작은 공연단에서는 이렇게 중요한 소품을 감당하기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직접 소품을 만들어서 무대에 올라간다. 


첫 공연은 곤충들이 나오는 동화를 연극화해서 무대에 올린 것이었다. 출연하는 배우가 모두 곤충이 되어야 했기 때문에 곤충을 상상할 수 있는 정도의 소품과 무대 의상을 만들어야 했다. 옛 시장의 모습을 만들기 위해서 박스로 가판대를 만들어 무대에 올라야 했다. 심지어 장독이 필요한데 진짜 장독은 무겁고 옮기기 불편하며 심지어 빛을 반사시켜 무대 소품으로 적합하지 않았다. 그래서 저렴한 바구니를 사서 그 위에 한지를 여러 겹 덧 붙이는 방법으로 빛 반사가 없는 장독을 만들기도 했다. 


얼마 전 공연에서는 지금까지 중에서 가장 큰 소품을 만들었는데. 마당에 두고 쓸 평상 두 개를 만들어야 했다. 소극장에서 쓸 수 있는 평상을 주문해서 만들면 되는 일이지만 가볍고, 이동이 용이한 정도의 크기에 평상은 주문하기가 까다로웠다. 공연에 쓸려면 주문해야 하는 시간이 얼마 안 남았는데, 우리가 원하는 소품을 만들어 줄 수 있는 곳은 없었다. 비록 우리 입만에 맞는 소품을 제작하기 힘들었다. 어영부여 시간만 허비하다 결국 공연날을 일주일 남겨둔 날이 되었다. 


급해서 좋은 생각이 났는지, 아니면 막무가내로 밀어붙여서 궁지에서 생각이 난 건지 지금도 어떻게 소품을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튼튼하면서 이동이 쉬울 정도로 가벼운 침대 플라스틱 프레임을 사용하기로 한 것이다. 오히려 플라스틱으로만 되어 있어 가벼움이 너무 커서 그 뒤에 합판을 덧대어 사용하기로 했다. 완성된 소품은 기대보다 성공적이었다. 옮기는 것도 자유로웠고, 튼튼하기까지 했다. 


무대에서는 상상하지 못하는 사건이 생겨나기도 한다. 필요한 소품을 들고 들어가지 못해서 칼 대신 파를 들고 들어가야 될 만큼 당황스러운 일도 생길 수 있다. 소품이라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고, 소중한 것이다 보니 준비하는 한 순간들이 소중하다. 


연기 연습을 하는 날이 아닌 어느 날. 

연습실 바닥에 앉아 한지를 붙이던 어느 날, 

평상을 만들어 보겠다고 처음 써 본 전동 드라이버를 쓰던 어느 날.

그런 날들이 쌓여 연극 단원 사이의 관계도 깊게 쌓인다. 

새해에 누군가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쫓아 살아보겠다는 마음을 먹을 수 있다. 그중에서 연기를 하고 싶어 연극을 하고 싶거나 뮤지컬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 도움이 되는 글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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