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돋보기요' 하고 티 내지 않는 세련된 안경테를 골랐다. 돋보기, 즉 원시 안경을 맞추는 일이 서글플 줄 알았는데 막상 써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나만의 새로운 세상을 만난 듯하여 재밌기까지 하다.
에어팟을 처음 착용했을 때가 떠오른다. 버튼 하나로 주변의 소음이 차단되고, 내가 선택한 소리에만 오롯이 집중할 수 있게 되는 그 고요함. 돋보기는 내게 그 경험의 시각 버전을 선물했다. 돋보기는 내 시각 에어팟이다.
아직 이 도구에 익숙해지는 단계지만, 그 효용을 제대로 느껴보고 싶어 서울에서의 마지막 밤 일부러 편안한 옷을 입고 숙소 옆 카페에 가 책을 읽었다. 돋보기를 쓰자 눈앞의 활자들이 놀라울 정도로 크고 선명하게 펼쳐졌다. 그렇게 선명한 활자를 안 볼 수는 없으니, 나는 자연스럽게 글에 집중했다.
이 도구의 진짜 힘은 다른 곳에 있었다. 나도 모르게 먼 곳을 보려고 고개를 들면 모든 게 울렁거리고 흐릿하게 보였다. 그 선명하지 않은 풍경은 내게 "지금은 저곳에 신경 쓸 때가 아니야"라고 말해주는 듯했다. 나는 얼른 시선을 거두어 다시 눈앞의 또렷한 활자로 고정했다. 돋보기는 단순히 글씨를 잘 보이게 하는 수동적인 도구가 아니었다. 주변의 시각적 소음을 강제로 차단하고, 내가 선택한 세계에만 몰입하게 만드는 능동적인 집중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돋보기를 한참 쓰다가 벗으면, 마치 나만의 세계에서 빠져나온 듯한 느낌이 든다.
몇 개월간 중단해야 했던 필사를 이제 맘껏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가장 반갑다. 나의 필사는 영어로 이루어진다. 영어에 대한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함이고, 단어의 쓰임이나 새로운 표현을 발견하는 즐거움도 크다. 무엇보다 내 전문 분야의 소식을 따라잡으며 한 자 한 자 집중하고 나면 일종의 카타르시스마저 느껴진다.
돋보기는 내게 단순히 더 잘 보는 눈을 준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가장 깊이 있는 지적, 감정적 만족을 얻는 그 순간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해주는 관문이자 나만의 세계로 들어가는 스위치가 되어 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