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덕후가 되고 싶다

01 취향정리

by thetwentytwelve


어떤 게 제일 좋아?


그동안 어떤 주제든지 위의 질문에 대해 명확하게 답을 내놓지 못했다. 이런 질문에 고민 없이 대답하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하나에 빠져 그 분야를 덕질하는 사람들, 덕후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내 이야기를 하면서 ‘가장 좋아하는’이라고 수식어를 붙인 적이 거의 없다. 예를 들어 가장 좋아하는 색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나는 한 가지 색상을 쉽게 고를 수 없다. 남색도, 흰색도, 검은색도, 하늘색도, 벽돌에 가까운 붉은색도 좋다. 이는 색에 대한 질문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기호에 대해 대략 이런 것들을 좋아한다고 장황하게 말할 수 없어 찾는 중이라고 대답했던 것 같다.


그렇게 색을 고르기도 쉽지 않아 어디나 어울리기 쉬운 흑백사진을 좋아하게 되었다. 여행지에서나 전시를 보고 나서 굿즈를 고를 때 흑백으로 된 엽서가 보이면 먼저 집었다. 첫 퇴직금으로 디자이너 가구를 고를 때도 포인트가 되는 색상을 사라는 조언을 많이 들었지만 결국 검은색 의자를 골랐다. 회사 책상 위를 좋아하는 캐릭터로 꾸미거나 원하는 색상의 키보드, 마우스로 바꾸는 등 각자의 취향대로 꾸미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는 핑계를 대며 책상 위에 아무것도 올리지 않았다. 연필꽂이도 없이 필기구는 서랍에 넣어두고 매일 마시는 커피가 담긴 무채색 텀블러만 올려둔 채 깨끗한 책상으로 지냈다.


Ronchamp(arch. Le Corbusier), Charles Bueb
SE 68 Multi Purpose Chair(Black/Chrome), Wilde+Spieth / Travel Tumbler(Black), KINTO

나만의 색을 찾거나 드러내지 않다 보니 이 자체가 나의 취향이 되었다. 흑백사진, 검은색 의자, 무채색 텀블러,… 그렇게 무채색과 미니멀을 좋아하게 되었다. 실패 없는, 어디에나 어울리는, 모두가 좋아할 수 있는 방향으로 소비하고 수집하다 보니 어느새 타임리스 디자인으로 귀결되었다. 시간이 지나 이제 나에게 타임리스 디자인은 무채색과 미니멀을 넘어 재료 본연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것이 되었다.


요즘과 같이 트렌드가 급변하는 시대에 나만의 기준이 명확하기 않으면 휩쓸리기 쉽다. ‘Money Creates Taste’라는 말처럼 소비가 경험이 되고 취향이 되는 삶을 지향하면서 내 나름대로 좋아하는 범주에 있는 것들이 있는데 그것을 왜 좋아하는지 혹은 어떤 기준에 좋아하는지 모른 채 흐린 경계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앞으로 취향에 대한 글을 쓰면서 흐릿한 점선을 선명한 실선으로 만들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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