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취향정리:영화
당신의 인생영화는 무엇인가요?
누군가에게는 스몰토크의 주제가 될 수 있고 누군가는 소개팅 단골 질문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에게는 친해지고 싶은 사람에게 거의 물어보는 질문이다. 영화만큼 그 사람의 취향을 드러내는 것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같은 영화를 손꼽아도 단순히 재밌거나, 울림을 주었거나, 기억에 오래 남아서 등 이유는 저마다 다를 것이다. 그 선택의 기준 속에 상대방의 관심사를 파악하거나 나와의 공통점을 찾아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다.
어릴 적 아이팟이 생긴 이후로 손바닥보다 작은 화면을 통해 스크린에 걸린 영화가 아닌 내가 선택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분명하지 않은 때에 여러 장르를 접하며 다양한 영화를 섭렵하였다. 언제부턴가 가리는 장르가 생겼고 공포영화나 스릴러물은 예고편 조차 보지 않게 되었다. 나도 모르게 긴장하여 온몸에 힘을 주게 되어 영화가 끝나고서 바로 일어서기 힘들었던 탓이다. 현실에서 받는 스트레스도 충분하여 자극적인 영화보다는 따뜻한 영화를 주로 찾게 되었다.
좋아하는 감독이 생겨 필모그래피를 다 찾아보았고, 계절을 담은 영상미가 좋아 사계절마다 챙겨보는 영화가 생겼다. 계획 없이 만난 친구와 영화관을 찾게 되고, 여유 시간이 생기면 혼자 가볍게 보고 나오기도 했다. 점점 오른 티켓값을 체감할 즈음 다양한 영화를 원하는 시간이나 장소에서 OTT를 통해 쉽게 볼 수 있게 되었다. 대형 스크린이나 음향이 중요하지 않은, 흔히 말하는 영화관에서 꼭 봐야 할 영화가 아닌 이상 영화관으로 쉽게 발걸음이 옮겨지지 않았다.
스크린이 아닌 아이패드로 영화 보는 것이 익숙해지니 유튜브 알고리즘이 영화 소개나 리뷰 영상을 상단에 올렸다. 유튜브 등 짧은 콘텐츠에 익숙해져 더 이상 영화의 긴 러닝타임을 버티기 힘들어졌다. 보고 싶었던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등장인물의 감정선을 따라가기보다는 오른쪽 화살표를 누르며 줄거리 파악하기 바빴다. 그리곤 누군가 남긴 리뷰를 찾아보며 다른 이의 감상을 내 것으로 대체하게 되었다. 영화 한 편을 제대로 보기 힘들어진 것이다. 몇 년 전에는 어떤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면 대부분 본 영화라 신나게 대화했던 것 같은데, 언제부턴가 보고 싶었던 영화라고 답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장거리 비행에서 잠이 오지 않아 영화 한 편을 보게 되었다. 할리우드의 민낯과 필름의 역사를 소재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며 잊고 있던 취미를 상기시켰다. 또는 퇴사 후 여유가 생겨 영화를 찾게 되었을 수도 있다. 알람에 맞춰 일어나지 않아도 되니 쉽게 잠들지 않는 밤이면 보고 싶었던 영화를 한 편씩 섭렵하며 다시 영화를 보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여운이 남는 영화가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옛날에는 성장을 주제로 하는 영화들을 손에 꼽았는데, 요즘은 방황하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직업이나 꿈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서의 고민들이 마치 우리의 인생같이 느껴졌다. 영화 속 인물이 이해되지 않을 때도 있지만, 나 자신도 항상 옳은 선택을 하는 것 아니고 완벽하지 않다. 어쩌면 불완전한 이들을 보고 위로받는 것일 수도 있다.
영화는 ‘가장 좋아하는’보다 ‘인생’이라는 수식어가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그만큼 영화가 보여주는 취향의 무게가 다른 것 아닐까. 재밌게 본 영화를 시간이 지나 또 볼 생각에 설레기도 하고, 좋아하는 영화를 몇 년 뒤 다시 보며 놓친 부분을 보게 될 수도 있다. 그렇게 새로운 감상을 쌓아가면서 ‘인생’이라는 단어를 붙이게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