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알아가는 방법

01 취향정리:여행

by thetwentytwelve


너 J 아니었어?


누군가와 함께 떠나는 여행이 아닌 혼자 여행할 때는 무계획으로 떠난다. MBTI 마지막이 J로 끝나지만 여행할 때만큼은 P가 된다. 그동안의 여행을 통해 계획을 세워도 그대로 되기 힘들다는 것을 배웠다. 기대했던 곳은 생각만큼은 아니었고 우연히 발견하거나 즉흥적으로 경험한 것이 더 기억에 남았다. 언제부터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하여 첫날은 숙소 근처 동네 구경하고 잠들기 전 내일은 어느 동네 가야지 정도 생각하고 눈을 감았다.



보호자 없이 떠난 첫 여행은 유럽이었다. 다음 학기 독일로 교환학생 간다는 친구가 그전에 함께 여행할 것을 제안했다. 우리는 여름방학의 한 달은 계획하고, 남은 한 달은 미리 정해둔 일정대로 여행했다. 시작부터 끝까지 숙소 및 교통편을 예약해 두었고 한 치의 오차 없이 계획한 대로 머무르고 이동했다. 어렸고 경험이 부족했고 어쩌면 당시 한정적인 정보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저 남들 가는 곳 따라다니기 바빴다. 여행 책자에 나온 스팟을 도장 찍듯이 다니며 마치 내가 계획한 패키지 여행을 다닌 것 같았다.


Shijo Bridge, Kyoto / Hirano Shrine, Kyoto Yoyogi Park, Tokyo / Kichijoji, Tokyo

간사이 지방을 다녀온 후, 일본 여행에 빠져 계절마다 갔다 오기도 했다. 같은 도시여도 벚꽃이 필 때, 단풍이 물들 때 보여주는 풍경이 달라 사계절마다 옆나라를 다녀왔다. 가족 혹은 친구와 갈 때도 있었고, 시간 맞는 이를 찾지 못하면 혼자 다녀오기도 했다. 늦잠 자고 싶으면 더 누워있고, 때가 아니더라도 배고프면 구글맵에서 주변 평점 높은 식당을 찾았다. 즉흥적으로 목적지를 바꾸며 어느새 홀로 떠난 여행이 더 편해졌다. 혼자 다니다 보니 떠나기 전 세운 계획보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움직이는 것이 좋았고 여행 계획은 점점 간소화되었다.


언제는 인턴 기회로 한 달 넘게 암스테르담에서 지내게 되었다. 벼룩시장에서 구매한 자전거 덕분에 퇴근 후 구석구석 놀러 다녔고, 집이 있으니 짐을 쌀 필요 없이 주말에는 근교나 다른 도시를 가볍게 여행할 수 있었다. 익숙해진 거리는 지도 없이 다니게 되었고 매일 들리는 마트, 자주 가는 카페나 맛집이 생겼다. 그렇게 한달살이를 하면서 현지인들의 삶을 이해하는 즐거움을 얻었다.



최근 다녀온 여행도 무계획으로 떠났다. 먼저 가장 가고 싶었던 코펜하겐으로 향했고,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3주 머물며 여러 도시를 여행했다. 빨리빨리가 아닌 느긋하게 한 곳에 최소 일주일 지내며 아쉬움이 남으면 며칠 더 머물렀다. 아침 일찍 세수만 하고 나와 산책하기도 하고, 지내는 동안 단골 카페를 찾는 재미로 다녔다. 햇살이 귀한 곳이라 날씨가 좋으면 공원에서 일광욕하며 멍 때리거나 사람 구경만 해도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혼자 다니다 심심할 때는 숙소에서 친구를 만들어 같이 다니고 동행을 구해 같이 밥 먹기도 했다. 계획이 없으니 다른 여행자나 현지인들이 추천해 준 곳을 유동적으로 다닐 수도 있었다.


사실 나는 그동안 도시로만 떠났다. 다들 한 번쯤 가는 휴양지는 아직 가보지 못했다. 미국에서도 그랜드캐년이나 나이아가라 폭포는 도시만큼 끌리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여행은 투자 같은 느낌이라 매체에서 보던 공간을 직접 경험하는 것에 우선순위에 두었다. 그렇게 보고 싶었던 건축물을 찾아 자연보다는 도시를 여행하게 되었다.


Nuuksio National Park, Espoo

이번 여행도 한 달 넘게 도시만 다니다 보니 다들 추천하는 북유럽의 자연이 궁금해졌다. 그렇게 숲과 호수가 펼쳐진 국립공원이나 산을 찾아다니며 자연이 주는 감동을 뒤늦게 알았다. 있는 그대로의 대자연보다 도심 속 공원을 좋아했는데 이를 계기로 앞으로는 진짜 자연을 찾아다닐 생각이다. 다음 여행은 캐리어가 아닌 배낭을 메고 편안한 운동복으로 채워 떠나고 싶다. 파란 하늘 아래 푸르른 숲 사이 트래킹하는 것을 그려본다.



만약 여유자금이 생긴다면 나는 고민 없이 해외여행이다. 누군가는 한국에서도 하루에 그만큼 쓰면 비슷하게 행복할 것이라고도 한다. 개인적으로 새로운 문화를 배우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낯선 곳에서 얻는 경험은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여행을 하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익숙지 않은 환경에서 어떻게 반응하는지, 예기치 못한 사건사고를 겪었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지 등 이전에는 몰랐던 나를 무수히 발견하게 된다. 여행만큼 나를 알아가는 방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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