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의 활동 영역이 커지고 있지만, 오프라인 공간에 대한 가치와 수요는 여전합니다. 심지어 코로나19로 상당수의 오프라인 매장 매출이 떨어졌는데, 그럼에도 오프라인 공간은 브랜딩 핵심 요소에서 빠지지 않고 거론돼요. 그만큼 공간이 주는 힘이 크다는 뜻이죠. 코로나 이후엔 타인과의 만남에 목마른 사람들이 오프라인 공간으로 쏟아져 나올 거라는 전망도 있는데요. 그래서 ‘공간을 통해 어떤 경험을 줄까’라는 질문은 정말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번 주에는 공간을 잘 활용해 레벨업 한 브랜드들에게서 한 수 배워 볼까요?
공간 경험을 말하는데 국내 아이웨어 브랜드 ‘젠틀몬스터(Gentle Monster)’를 빼놓을 수 없겠죠? 스타트업으로 론칭한 젠틀몬스터가 사업 초기부터 주목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독특한 매장 모습에 있어요. 이전까지 아이웨어 브랜드 매장이라고 하면, 깔끔한 내부에 수십 가지의 제품이 진열돼 있고, 매장 한편에는 시력 검사실이 있는 모습을 떠올렸어요. 젠틀몬스터는 이런 인식을 완전 뒤집었습니다.
젠틀몬스터는 공간을 통해 고객에게 재미와 예술적인 감각을 선사하는 곳으로 유명한데요. 홍대에서 첫 쇼룸을 열 때는 1층에 제품을 하나도 진열하지 않았대요. 미디어 아트 전시관처럼 꾸며 뒀죠. 그러니까 쇼룸을 처음 방문한 사람들은 안경을 보러 온 게 아니라, 전시를 보러 들어왔던 거예요. 심지어 25일에 한 번씩은 매장 전체를 갈아엎고 새롭게 꾸미는 일을 반복했다고요. 지금은 사라졌지만, 목욕탕을 개조해 만들었던 네 번째 쇼룸 사진을 보면 젠틀몬스터가 얼마나 재밌는 곳인지 알 거예요.
패션 브랜드 ‘아더에러(ADERerror)’도 마찬가지예요. 아더에러는 1인 디자이너 브랜드가 아니라 디자인, 포토, 마케팅, 전시기획 등 각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된 패션 레이블 브랜드인데요. 다양한 크리에이터가 모인 브랜드답게 쇼룸에서도 개성이 느껴져요. 쇼룸을 방문한 고객은 아더에러의 제품을 접하는 동시에 음악과 공간, 그리고 시각적인 요소가 어우러진 전시를 경험하죠. 이렇듯 젠틀몬스터와 아더에러는 쇼룸을 통해 제품 판매보다 자신들의 개성과 재밌는 철학을 전달하려고 해요. 이 두 브랜드가 제품으로만 승부를 봤다면 우리가 두 브랜드를 인식하기까지 조금 더 오래 걸리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 브랜드는 고객에게 어떤 경험을 주고 싶은가?’라는 고민에 대한 답이 명확해야 할 것 같아요. 똑똑한 소비자들은 진품과 모조품을 금세 알아채니까요.
‘집도 물건처럼 써봐야 나한테 맞는지 안 맞는지 알 수 있지 않아?’ 부동산 플랫폼인 ‘직방’의 ‘살아보기 캠페인’은 그런 질문에서 출발했습니다. 이 동네가 나에게 어떤지, 집과 라이프스타일이 맞는지 등을 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것이죠. 이 캠페인이 성공한 건 단순히 보증금과 월세를 지원해 주기 때문이 아닐 겁니다. 살아 보고 싶었던 곳을 실제로 경험하고 싶은 이유가 더 클 거예요. 이렇게 고객은 경험을 통해 결정을 내렸을 때, 더 큰 만족도를 느끼는데요. ‘식스티세컨즈’에는 좋은 제품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식스티세컨즈는 좋은 잠을 위해 수면 제품을 만드는 브랜드예요. 이들이 좋은 잠을 연구하다 보니, 좋은 잠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는 결론이 나왔대요. TV에서 푹신한 매트리스가 좋다고 광고해도 누군가에게는 허리에 무리가 가서 수면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 제품을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합니다. 단순히 침대에 누워 보는 것이 아니고요, 실제 잠을 자볼 수 있어요. 고객이 편안한 쉼을 경험해야 하기 때문에 1:1 예약제로 운영되죠. 나와 맞는 매트리스에 몸을 뉘고, 베개에 머리를 올린 후 포근한 이불을 덮어 푹 자고 나면 지갑이 열릴 것 같지 않나요? 우리 집에서도 잘 자고 싶어서요. 또, 고객의 수면 질을 위한 컨설팅도 해준다고 하네요.
이 외에도 따뜻한 제품의 이미지가 잘 느껴지도록 공간 인테리어는 아크릴이나 스틸을 사용해 차가운 느낌을 가미하는 등의 디테일을 살렸어요. 여느 매트리스 매장의 강한 조명과 달리 은은한 조명을 설치하고, 쉼에 좋은 향을 피우고요. 이 모든 게 사용자의 불편함을 없애기 위한 고민에서 나온 결과예요. 어떻게 하면 우리 것을 좋아 보이게 할까, 이전에 어떻게 하면 사용자가 더 편안할까를 고민했죠. 좋은 라이프스타일을 만들고자 하는 브랜드답죠? 실행이 느려도 깊이 고민한 기획은 좋은 반응을 일으킵니다.
공간 전문가들은 좋은 공간의 조건 중 하나로 입지를 꼽기도 합니다. 이때 입지는 교통이 얼마나 편리하고, 지역 상권이 얼마나 발달했느냐를 말하는 게 아니에요. 만들고자 하는 공간과 지역의 특성이 어떻게 어우러지느냐이죠. 앞서 말했던 식스티세컨즈의 경우엔 첫 쇼룸을 대치동 주택가에서 오픈했는데요. 집과 같은 편안함을 추구하는 공간의 목적과 어울리는 위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최근 1년 사이에 근무 환경을 재택근무로 전환하는 회사가 많습니다. 그런데 재택근무가 익숙하지 않은 탓에 일과 생활을 잘 분리하지 못하고, 라이프스타일까지 망쳐버리는 경우가 더러 있더라고요. 그렇다고 집 근처 카페를 가기도 어렵고요. ‘집무실’은 카페처럼 개방적이면서도 집처럼 편안한 코워킹 스페이스인데요. 보통 공유 오피스는 강남이나 광화문과 같은 도심에 위치하는데, 집무실은 이름처럼 집 근처에 위치한다는 게 특이점이에요. 그런데 한 가지 의아한 점이 있는데요. 집무실의 1호점은 주거지와 거리가 먼 정동에 위치한다는 점이에요.
1호점인 만큼 집무실이 지향하는 경험을 최대로 보여줄 수 있는 곳에 집중하고자 했다는데요. 실제로 정동의 위치 덕에 집무실은 고풍스럽고 정돈된 공간 이미지를 만든 것 같아요. 만약 1호점을 서울 숲 부근에 냈다면 다른 인상을 풍겼겠죠? 이후 지점들은 거주 지역인 서울대학교 근처나 석촌동에 위치한다고 하네요. 이렇게 지역 자체가 공간 이미지에 미치는 영향이 큰데요. 좋은 입지를 고르는 안목이 중요하다는 말이 이런 의미인가 봐요. 소위 핫한 동네 대신 동네의 정취나 역사 등을 따져 골라보면 어떨까요?
스테이폴리오(Stayfolio)와 에어비엔비(Airbnb)는 여행지의 숙소를 매개한다는 점에서 같은 지향점을 갖는 듯 보이지만, 핵심적으로는 다릅니다. 에어비엔비가 여행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스테이폴리오는 숙소에 머무는 행위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두 브랜드의 슬로건에서도 확연한 차이를 알 수 있어요. 에어비엔비가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라며 지역 내 다양한 숙소를 중개해 주는 플랫폼 역할을 하는 한편, 스테이폴리오는 ‘머무름 자체로 여행이 되는 곳’을 소개하는 큐레이션 플랫폼 역할을 수행하죠.
스테이폴리오는 호스트의 가치 철학이나 공간의 스토리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스토리가 있는 공간을 선별해 하나의 콘텐츠로 만들죠. 그래서 스테이폴리오에 소개된 다양한 숙소를 보다 보면 스테이폴리오의 이미지가 그려져요. 신기하죠? 이렇게 공간의 이야기를 자세히 알고 방문한 고객들의 만족도는 높을 수밖에 없어요. 단순히 공간에 머무는 게 아니라 공간의 맥락에 공감하며 교감하거든요.
서사 없이 공간을 만들었다면, 이제라도 놓친 스토리를 발견해 입혀주는 게 어떨까요? 공간 인근 지역의 이야기부터 건축 과정에서의 에피소드, 입지적 히스토리, 사용된 건축 자재 등을 떠올려 보세요. 같아 보여도 모든 사람이 다르듯, 그 공간에도 특별한 이야기가 있을 거예요.
앞서 얘기했듯이 공간에서도 스토리의 힘은 대단합니다. 그래서 공간에 쌓인 흔적을 활용한 업사이클링 공간을 만드는 이유죠. 여기저기에서 많이 하니까 쉬워 보여도, 기존 이야기를 훼손하지 않고 새로운 맥락을 펼치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 어려운 일을 해낸 ‘해녀의 부엌’을 소개해볼까 해요!
해녀의 부엌은 제주 종달리 부둣가에 위치한 공연장 겸 식당이에요. 20여 년 전에는 생선 경매장이었는데요. 시간이 갈수록 발길이 뜸해지면서 어두운 창고로 변해버렸죠.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출신이자 해녀 집안에서 자란 해녀의 부엌 대표님은 갈수록 해녀의 입지가 주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껴 해녀를 알리고자 했대요. 동시에 제주 해산물을 브랜드화 시키고자 했죠. 예약 프로그램으로 진행되는 이곳에선 150분 동안 해녀 이야기를 주제로 한 연극을 보고, 제주 음식을 맛보고, 실제 해녀들과 대화도 나눌 수 있어요. 정말 흥미로운 곳이죠? 해녀의 부엌의 인기는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식을 줄 모른다네요.
이 인기의 비결이 뭘까요? 제 생각엔 ‘해녀’에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유네스코 무형 유산에 등재될 정도로 가치가 높은 해녀의 이야기를 발굴하고, 그 이야기를 업사이클링 공간에 잘 녹인 것 같아요. 무엇보다 이곳에 가면 실제 해녀를 만날 수 있다는 점이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었다고 보이는데요. 가장 강력한 스토리는 사람의 삶이 아닐까 싶습니다. 공간 스토리가 어렵게 느껴진다면, 그 안에 우리의 삶을 풀어보세요.
공간 브랜딩을 인테리어의 영역으로만 보는 분들이 간혹 계신데요. 공간 브랜딩에서 중요한 건 ① 경험의 명확성 ② 공간에 담긴 이야기입니다. 물론 공간의 위치나 내부의 디테일이 더해지면 더 좋겠죠. 하지만 이 두 가지가 확실하면 가구를 목재로 만들든, 스틸을 사용하든, 강원도에 있든, 서울에 있든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거예요. 참, 코로나 시대를 지나며 공간을 바라보는 방식이 바뀌었다고들 하죠? 사람들의 시선이 외부가 아닌 내부로 향하고 있다는 게 핵심인데요. 너무 멀리서 답을 찾으려 하지 말고, 로컬의 영역에서부터 공간 의미를 찾아보세요!
바쁜 분들을 위한 5줄 요약
1. 젠틀몬스터와 아더에러는 쇼룸을 통해 제품보다 자신들의 감각을 보여주고자 함. 덕분에 두 브랜드 명만 들어도 크리에이티브가 연상됨. 공간을 통해 어떤 경험을 줄 것인가를 명확히 하는 게 중요.
2. 식스티세컨즈는 사용자에게 편안한 쉼을 주는 곳으로 쇼룸을 활용. 그래서 화려한 조명이나 제품 배치 대신 집과 같은 안락한 가구 배치와 무드를 더하는 등 사용자 관점에서 디테일을 더함.
3. 고풍스러운 느낌을 주는 정동에 위치를 선정해 공간 브랜딩을 확고히 한 집무실. 지역의 정취는 공간에 이미지를 입히는 데 도움이 됨.
4. 스토리가 있는 숙소를 발굴해 고객에게 소개하는 스테이폴리오. 스테이폴리오를 통해 공간의 스토리를 접하고 방문한 고객들의 숙소 만족도는 더 높음.
5. 해녀의 삶의 이야기를 공간에 풀어, 힘을 더한 해녀의 부엌. 공간을 스토리로 푸는 일이 어렵다면, 삶을 녹여내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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