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k & Vacation] With 일로오션, 첫번째 글
※ [Work&Vacation]은 일과 휴가에 관한 더웨이브컴퍼니의 생각과 고민을 담은 글을 적어가고 있습니다. 저희는 워케이션 프로그램 '일로오션'을 운영하면서 강릉에 온 여러분께 더 나은 콘텐츠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일과 휴가에 관한 깊은 생각을 [Work & Vacation]에 담았다면 'With 일로오션'에서는 일로오션 프로그램 기간 동안 함께 즐기면 좋을 강릉의 장소와 정보, 공간에 관한 이야기를 담으려고 합니다.
첫번째로 코워킹 스페이스 파도살롱 인근에서 볼 수 있는 특별한 장소와 이야기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파도살롱을 품고 있는 명주동과 근처에 있는 대도호부관아, 그리고 영화 <봄날은 간다>와 <밤의 해변에서 혼자>에 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파도살롱과 명주동
파도살롱은 지난 2019년 5월 1일, 관광으로 느끼는 강릉을 벗어나 일하면서 쉴 수 있는 강릉, 이를 실현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는 목표로 조성되었습니다.
단순히 1회성 관광으로 강릉을 경험하는 게 아닌, 일하는 공간과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도시를 같이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장소를 떠올렸고 지금껏 파도살롱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쉽게 생각해 파도살롱은 강릉을 기반으로 강원도와 동해안 지역에 새로운 물결을 만들고자 마련한 코워킹스페이스입니다.
파도살롱이 있는 명주동은 오랜 역사와 아기자기한 모습이 공존하는 특별한 장소입니다. '바다와 가까운 아늑한 땅'이라는 의미의 '명주(溟州)'는 신라 때부터 강릉을 이르던 옛지명이에요. 강릉시청이 현재 홍제동 청사로 옮겨가기 전까지 명주동은 강릉의 중심이기도 했습니다. 한 때 행정의 중심이었던 기능을 잃고 쇠락한 구도심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수년전부터 강릉을 대표하는 여러 카페와 문화유적, 문화예술 시설이 들어서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고요.
파도살롱은 명주동에서 동네가 갖고 있는 미적 가치와 강릉 원도심의 역사를 함께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가장 '강릉스러운' 동네를 꼽자면 그 중 하나가 명주동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예술, 역사 그리고 커피
강릉에 오면 경포, 안목과 같은 해변가로 향합니다. 하지만 시선을 조금 다른 곳으로 옮기면 고즈넉하고 소담한 매력의 강릉 도심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하슬라로 불리던 삼국시대부터, 명주, 강릉에 이르기까지 강원도와 동해안의 거점 도시 역할을 했던 강릉에서도 명주동은 관아와 주요 시설이 있던 도심지역이었습니다.
도심 한 가운데 위치한 대도호부관아는 고려 시대부터 수도를 제외한 지역 가운데 큰 고을에서 효과적으로 지방행정을 처리하기 위해 세운 관청입니다. 일제 강점기 때 철거된 후 1993년 강릉시청 신청사를 세우기 위해 공사를 진행하다가 수많은 유물과 과거 유적터를 발견하게 되고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했습니다. 도심에서 즐길 수 있는 문화유적인 동시에 시민들의 쉼터이기도 한 대도호부관아에서는 여러 문화 행사가 열리기도 합니다. 뒤에 소개할 영화 <봄날은 간다>도 지난해 제3회 강릉국제영화제 기간 중에 20주년 기념 상영회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명주동은 행정의 중심 기능을 다른 동네로 이전한 뒤, 문화의 메카로 거듭났습니다. 파도살롱 뒤편에 있는 명주예술마당에서는 전시회와 함께 여러 문화행사가 열리고 있고, 횡단보도 건너에 있는 명주동 한가운데에는 옛 교회 건물을 문화시설로 바꾼 '작은 공연장 단'이 있습니다. 남대천을 따라 걷다가 마주한 명주동에서 여러 공연과 전시회를 보며 감상에 빠져보는 건 어떨까요?
명주동은 파도살롱에서 도보로 2분 거리에 있어 점심시간을 이용해 휴식 취하기도 좋습니다. 작은공연장 단과 대도호부관아 건물 인근에는 커피의 도시 강릉답게 특색있는 카페가 많습니다.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의 배경이자, 골목 한편에 자리한 봉봉방앗간을 비롯해, 밝은 웜톤의 목재가 눈에 띄는 카페 오월 커피, 명주동 터줏대감인 고양이 배롱이가 문앞에 있는 명주배롱에서 차한잔과 함께 휴식을 취할 수 있습니다. 고개를 돌려 파도살롱쪽을 보면 새바람이 오는 그늘 카페를 만날 수 있습니다. 파도살롱 이용객이라면 10% 할인 혜택이 있으니 참고하세요. 아 그리고 명주동 골목을 거닐다보면 파운드(Found)와 민트(Meent) 두 곳의 와인샵도 만날 수 있습니다.
장면 1. 영화 <봄날은 간다>
명주동을 돌아보면서 떠올릴만한 장면이 있을까 고민해봤습니다. 그리고 이 곳이 잘 나온 두 작품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첫번째 장면은 허진호 감독, 유지태, 이영애 배우 주연의 <봄날은 간다>입니다.
영화에 나온 KBS 강릉 방송국은 명주동 맞은 편 용강동에 위치해 있습니다. 명주동과 용강동, 동네 이름은 다르지만 횡단보도 하나만 건너면 나오는 지척에 있습니다. 언덕 위에 방송수신탑이 보인다면 바로 거기가 오늘 소개한 KBS 강릉 방송국이죠.
명주동에서 방송국쪽으로 걷다보면 예전에 관청으로 쓰였던 대도호부관아 유적이 보입니다. 지난해 10월에 열린 제3회 강릉국제영화제에서는 이 작품과 관련해 특별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영화 개봉 20주년을 기념해 허진호 감독 유지태 배우와 관객들이 대도호부관아 특별 상영관에서 <봄날은 간다>를 함께 보고 이야기를 나눈 시간이었지요.
작품에서 주인공 상우(유지태)는 라디오 방송국에서 일하는 사운드 엔지니어로, 은수(이영애)는 지방 방송국의 라디오 PD로 나옵니다.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프로그램을 만들며 사랑을 이어가죠. 사내커플이다보니 방송국이 주된 사랑의 공간으로 등장합니다.
이 곳은 사랑을 확인하는 동시에 의심하는 장소로 묘사됩니다. 한번은 SUV 차량에 탄 채 어디론가 가는 상우와 그를 붙잡고 이야기하면서 미소짓는 은수의 모습이, 다른 한 번은 은수가 다른 남성과 친하게 지내는 모습을 멀찌감치 지켜보는 상우의 모습이 나오죠.
방송국으로 향하는 길에 영화에 나왔던 사거리를 볼 수 있습니다. 스크린에서 봤던 모습 그대로이지만, 아쉽게도 상우가 아이스크림을 먹던 슈퍼는 지금 없습니다. 대신 그 골목과 근처 명주동에서 익숙함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으실 겁니다.
장면 2.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
홍상수 감독 작품이자 그의 뮤즈로 작품에 출연하고 있는 배우 김민희 씨가 참여한 작품 <밤의 해변에서 혼자>에서도 명주동의 모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영화 시작과 함께 주인공 영희는 함부르크, 코펜하겐, 칼레, 스톡홀름…어딘지 모를 유럽의 한 도시에 머물고 있는 모습이 나옵니다. 영희는 과거의 사랑이 주는 부담감에서 벗어나고자 외국, 어둠이 절반쯤 내려 앉은 해변에 서서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밤의 해변가가 나온 후, 시점이 확 바뀌어 강릉의 신영극장이 등장합니다. 별로 마주치고 싶지 않은 극장 프로그래머 선배 천우(권해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영희. 이어 두 사람은 "봉봉에나 갈까?"라는 말과 함께 명주동에 있는 카페 봉봉방앗간으로 향합니다. 대화를 이어나가는 두 사람, 그리고 영희는 나직이 "모르겠어요. 서울이 좋진 않아요"라고 말합니다
작품에서 봉봉방앗간과 명주동은 조용하지만 편안한, 홀로 생각하기 좋은 공간으로 나옵니다. 영희의 주변 사람들은 그녀를 이해하는 척 하지만,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주인공은 불편한 감정을 숨기고 이내 괜찮은 척, 강릉을 돌아다니죠. 따뜻한 드립커피를 앞에 두고 눈길조차 주지 않는 영희의 모습은 일상에서 불편한게 많지만, 애써 모른척, 아무렇지 않은 척 넘어가는 우리의 모습과 닮았습니다.
명주동의 여러 카페들은 생각보다 자리가 넓진 않습니다. 그만큼 나만의 영역을 유지하면서 생각에 잠기기 유리한 곳이죠. 극중에서 명수(정재영)는 영희에게 "사람은 생각만으로 사는거 아니야"라며 그녀를 질책하지만, 명주동의 곳곳에서 앞에 커피를 두고 생각하는건 이곳에서 누릴 수 있는 작은 특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녀가 가게 앞에서 조용히 내뿜는 담배 연기와 가게 안에서 조금씩 사라지는 커피의 온기처럼 이곳을 찾는 이들의 고민도 함께 사그라들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