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k & Vacation] 스물네 번째
※ 더웨이브컴퍼니는 서울을 떠나 강릉, 사무실에서 벗어난 해변, 그리고 로컬에서 일하고 활동하면서 새로운 방식으로 일하는 것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서울과 지역 그리고 일과 휴가, 워케이션에 관한 저희의 생각과 고민을 담은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지난번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기업, 지역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돌아가는 일본의 워케이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오늘은 '살기 좋다'라고 하면 먼저 떠오르는 유럽의 워케이션은 어떨지 알아봤습니다.
살기 좋은 도시의 조건
많은 사람들은 살기 좋은 도시, 나라를 떠올릴 때 유럽의 여러 도시를 생각합니다. 일과 휴식, 워케이션에 관한 정보를 찾아보다가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에서 찾은 게시물에도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올해의 워라밸 도시에 관한 이야기였죠.
미국의 소프트웨어 업체 키시(KISI)는 지난 2019년부터 전 세계 도시들의 노동 강도, 제도적 지원, 거주 가능성 등의 데이터를 분석해 <일과 삶의 균형 도시(Cities with the Best Work-Life Balance)>를 발표해오고 있습니다. 해당 데이터를 통해 어떤 도시가 살기 좋은지, 어떤 도시의 과로도가 높은 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세계 주요 도시 100개 가운데 2022년 워라밸 지수가 높은 곳 1위는 노르웨이 오슬로가, 가장 낮은 곳은 아랍에미리트 두바이가 뽑혔습니다.
해당 자료는 '워라밸'이라는 막연한 개념을 원격 근무의 적합성, 업무 강도, 휴일 수당 및 휴가 일수, 성평등, 유급 육아휴직 일수, 문화와 여가활동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 웰빙 수준 등 다양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여 분석해 효과적이고 과학적인 수치로 제공합니다.
우리나라, 특히 서울은 100개 도시 가운데 88위를 기록했습니다. 지난해 30위에서 50계단 이상 곤두박질한 수치입니다. 1위 오슬로와 비교하자면 휴가가 10일 이상 적고, 육아 휴직 등의 날짜 역시 적었습니다. 급격하게 순위가 떨어진 원인에는 원격 근무 적합성 56위(37%), 초과근무 인원 비율은 11위(13.9%), 공기질 99위(71.7), 야외 공간 51위(85.4) 등 대부분 수치가 악화된 부분을 들 수 있습니다. 특히 쾌적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과 관련된 부분에서 특히 낮은 순위를 기록했습니다.
수치에 따르면 서울은 '일은 많은데 휴가는 적고 원격근무를 할 수 있는 여건이 낮은' 업무 환경의 도시라고 보입니다. 전체 순위를 놓고 보았을 때도 우리보다 경제 수준이 좋다고 말하기 어려운 유럽이 많은 도시들이 워라밸 점수에서 더 상위에 랭크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해당 도시들은 휴가가 적더라도 업무 환경과 원격근무 적합성, 멘탈 케어 등 여러 가지 분야에서 우리보다 더 나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러한 수치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앞으로 일을 하는 데 있어 맑은 공기, 야외 공간, 원격근무 적합성 등을 고려해야 하며 이는 곧 사무실에서 앉아서 일만 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결국 워케이션에서 얻을 수 있는 장점들이 앞으로 일하는 데 있어 중요하게 작용할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유럽, 원격근무와 워케이션 사이
유럽은 '워케이션'이라는 정형화된 단어를 쓰기보다 일상생활과 업무에서 워케이션의 방식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워케이션의 일상화'라고 할까요? 디지털 노마드와 원격근무가 활성화되어 있고, 일과 휴식을 구분할 수 있도록 회사, 정부에서 돕습니다.
일본이나 우리나라처럼 '워케이션을 가야지'라는 생각보다 장기 휴가나 거리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원격근무를 이용해 바다나 산, 숲과 같은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워케이션으로 유명한 체코의 프라하,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 스페인 말라가, 이탈리아 바리 등의 도시 역시 워케이션 이전에 휴양지로 널리 알려진 도시이지요. 이처럼 사람들이 많이 찾는 휴양지에서 인터넷, 코워킹 스페이스 등 업무 공간이 갖춰져 워케이션이 가능한, 디지털 노마드로서 원격근무가 가능한 장소가 된 것이 유럽 워케이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함께 유럽에서도 팬데믹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에 따라 재택근무와 원격근무를 장려하는 회사가 늘었고, 거리 제한을 풀면서 다른 지역에서 거주하면서 원격으로 일을 하는 장기 워케이션이 강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올해를 기점으로 코로나가 완화되면서 집 인근에서 재택근무만 하던 분위기에서 먼 곳으로 다시 떠나서 일하는 모습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기업과 기관이 주도하는 일본과 달리, 유럽에서는 자유롭게 휴가를 쓰고 리모트 워크를 하는 분위기의 연장선상에서 워케이션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지난 12월 1일, 퍼스널 투데이는 '유럽 전역에 줌 타운(ZOOM town)이 들어서고 있다. 영국의 워싱, 스토크가 리모트 워크 도시로 알려진 프랑스의 브레스트와 독일의 캠니츠를 제쳤다.'라고 보도했습니다.
영국의 대표 채용 플랫폼인 인디드(Indeed)는 "2020년 2월을 기준으로 팬데믹 이전보다 이후의 거리에 관계없이 리모트 워크를 허용하는 비중이 715% 늘었다."라면서 "특히 대도시인 런던과 프랑스 파리 등의 원격근무와 하이브리드 워킹 비율이 늘었지만, 직장인들은 워싱, 브레스트와 같은 한적한 도시에서 리모트 워크를 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는 한 달에서 수개월 동안 해당 지역에 사는 방식으로 연장되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기대심리는 실제 바다, 산, 숲 등을 끼고 있는 도시의 원격근무자 유입을 늘리고 있습니다.
아일랜드와 스웨덴 등의 서유럽, 북유럽 국가에서는 재택근무를 기본 근무 형태 중의 하나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아일랜드의 경우, 2019년부터 2021년까지 취업자 중 처음부터 재택근무를 통해 일을 시작하는 비율이 8% 이상 늘었고, 지역에 따라 재택근무자 비중이 팬데믹 이전보다 4배 이상 늘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들에게 일을 하는 것은 '일하는 사람이 어디에서 일하느냐'보다 '어떤 마음가짐을 갖고 어떤 일을 하고 있느냐'가 중요한 포인트가 되고 있습니다.
또한 팬데믹이 완화되는 분위기가 확산되자 자신이 거주하는 도시를 떠나 다른 곳에서 일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이에 아랍에미리트는 이런 유럽의 리모트 워커들이 워케이션을 할 수 있도록 특별비자를 발행하는 제도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두바이에서 일하고 나서 쉴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자신들의 도시에서 소비하도록 유도하는 효과를 노린 것입니다. 앞서 말한 유럽의 여러 워케이션 도시를 비롯해 새롭게 떠오르는 도시들에도 일하는 사람들이 몰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여전히 거주지 주변을 벗어날 수 없는 이들도 많습니다.
도시를 떠날 수 없는 이들을 위한 워케이션
유럽은 일본의 사례처럼 회사의 제도적 뒷받침에 의해서 워케이션을 가는 경우가 드물고 회사에서 제공한 원격근무와 휴가를 이용해 고객들이 스스로 선택하는 B2C 형태의 워케이션 참가자가 많습니다. 그들에게 워케이션은 제도적 장치라기보다 원격근무에 속하는 하나의 업무형태이자 문화로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유럽의 여러 대도시에서는 코워킹 스페이스나 카페에서 리모트 워크를 하는 사람들이 많고, 인도네시아 발리, 미국 하와이 등에서도 유럽 출신 리모트 워크를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팬데믹이 시작되고 각국의 봉쇄조치가 이어지면서 유럽인들은 사무실을 떠나서 일할 수는 있지만 집을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되었습니다. 이에 주 4일제를 검토하는 국가가 늘고 있습니다. 휴식과 일을 병행하는 워케이션을 현실적으로 시도하기 어려우니 아예 쉬는 날을 조금 더 늘리겠다는 방안입니다.
지난 2월 벨기에가 유럽연합 국가 최초로 주 4일제를 도입한 데 이어 아일랜드, 스웨덴, 영국 등의 국가가 주 4일제 근무를 법으로 보장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워케이션처럼 여유로운 마음으로 일하는 유럽의 업무 시스템은 유럽 전체를 휩쓸고 있습니다.
실제 많은 사람들이 자국의 다른 도시, 타국의 휴양지에서 원격으로 일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 위기와 함께, 가족 동반, 고비용 등을 이유로 해외에서 일하는 것을 포기하는 유럽인들도 많아졌습니다. 이들은 집에서 재택근무를 하는 것에 만족하고 있지만, 코로나가 오랜 기간 이어지면서 피로도가 늘고 있습니다. 이에 런던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워케이션이 선을 보이고 있습니다.
런던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코워킹 스페이스 '서드 도어(Third Door)'는 팬데믹으로 인해 재택근무를 하면서 스트레스받는 직장인들이 늘자, 이를 완화하기 위해서 고안되었습니다. 가까운 곳에서 워케이션의 효과를 누리는 동시에 코워킹 스페이스 공간에서 아이를 돌봐주어 업무에 집중하면서 편히 쉴 수 있는 워케이션의 장점을 그대로 가져가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줌 타운' 역시 글로벌 화상회의 기업 줌과 지방자치단체들이 연계해 가까운 곳에서 휴식을 취하는 동시에 어디서나 원격 화상 회의가 가능하도록 일하는 공간을 제공해 업무효율을 높이고 팬데믹으로 외로움, 소외감이 커진 직장인들의 커뮤니티 연계와 유대감 형성에도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일과 휴식을 바라보는 유럽의 시선
미국, 유럽의 직장인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면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휴가가 많거나 리모트 워크가 잘 보장된다면 워케이션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제도적 장치가 없더라도 ‘워케이션’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요?"
유럽인들은 능동적이고 자율적인 업무 분위기, 일하는 환경을 구축하는데 힘쓰면서 굳이 사무실에 나오지 않아도 효율적이고 끈끈한 협동심을 바탕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시험하고 있습니다. 앞서 말한 워케이션의 형태 역시 개별적으로 널리 이용하고 있거나,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재택근무, 거주지 인근에서 여가와 업무를 균형 있게 배분해 '일상의 워케이션화'를 이뤄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