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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쇼츠, 중독에서 탈출까지(1)

1편 중독기 [중독이라는 현실의 자각]

by 흐르는 강물처럼

1편 중독기(중독이라는 현실의 자각),

2편 탈출기(출. 쇼츠. 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편 중독기

[중독이라는 현실의 자각]



숏폼(Short-form) 대유행, 팝콘 브레인화, 디지털 디톡스의 필요성

15초에서 60초 내외의 짧은 동영상, 숏폼은 릴스, 쇼츠, 틱톡, 클립 등 다양한 형태로 여러 플랫폼에서 시청할 수 있다. 숏폼은 시청의 부담이 적고 손가락으로 넘기며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이점이 있지만, 이로 인해 집중력과 창의성이 저하되고 끊임없이 시각, 청각이 자극되어 도파민에 중독되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콘텐츠의 주제도 점점 자극적인 것으로 바뀌며 사용자들의 시선을 붙잡아 놓는다.

흥미로운 영상을 보면 뇌 전두엽이 반응하여 도파민이 나오는데, 도파민에 중독되면 더 강한 자극을 원하게 된다. 뇌가 자극적이고 빠른 정보에만 반응하고 일상의 소소한 자극에는 반응하지 않으며 더 큰 자극을 원하는 상태가 되면 뇌가 마치 팝콘처럼 겉만 부풀고 속은 비어버린 팝콘 브레인, 뇌 썩음(Brain rot)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이에 대해 우리는 경각심을 가지고 스마트폰, 컴퓨터 사용시간을 제한하고 때로는 잠시 꺼두는 디지털 디톡스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챗지피티 생성 이미지





부끄럽지만, 눈물 나도록 절절한 나의 쇼츠 중독기와 탈출기를 용기 내어 공개하려고 한다.




나라는 사람

나는 무엇이든 좋으면 질릴 때까지 한꺼번에 몰아쳐서 하는 중독 성향이 있다.

열심히 해보다가 안 맞으면 쉽게 포기해 버리는 비겁한 성향도 있다.

아주 어릴 때 오락실이 그랬고, 조금 커서는 만화와 게임이 그랬고, 나중에는 드라마, 영화, 웹툰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1회부터 완결까지 웹툰을 한꺼번에 보려고 3일 동안 잠자지 않은 적도 있었다(이제는 체력이 안 되어 그렇게 하지 못한다).



중독의 시작

유튜브가 재밌다고 남들이 이야기할 때 이러한 나의 성향을 잘 알기에 일부러 유튜브를 보지 않으려 했다. 그러다가 유튜브를 본격적으로 보기 시작한 것은 불과 2년 전쯤이다.

내가 정신적·육체적으로 바닥에 바닥을 치고 스트레스는 극에 달할 때였다. 공부한다고 좁디좁은 곳에 나 자신을 가둬두고 사람들과 만날 수도 없고 만날 시간조차 전혀 없는 감옥과 같은 삶에서 그 무엇도 마음대로 할 자유도, 마음의 여유와 시간도 아무것도 없던 시절이었다.

하루 일과를 끝내고 밤 11시에 집에 돌아오면 아이들이 어지럽혀놓은 엉망진창 부엌을 정리하고, 당장 급한 집안일만 겨우 마무리하였다.

밤 12시쯤 잠잘 준비를 마치고 침대에 누우면 내 마음을 온전히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 하루 중 처음으로 그제야 주어졌다.

그저 모든 것이 허전하고 우울하고 답답했다. 뜻대로 되지 않은 만족스럽지 못한 나날이 이어졌고 그 끝은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그만두고 싶고 모든 것을 때려치우고 싶었다. 그런데 도망치고 싶어도 도망칠 곳은 없었고, 도망칠 수 없어서 절망하고, 괴로웠다.



잠자기 전 스마트폰을 처음 들여다보는 밤 12시는 그날 나에게 처음 허용된 소박한 자유시간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유튜브를 보기 시작했고 쇼츠라는 것을 접하게 되었다.

쇼츠같은 짧은 영상이 유행하면서, 10분 이상 되는 유튜브 영상은 상대적으로 길고 지루하게 느껴졌다.

자정 12시부터 거의 1시간 동안 쇼츠 영상을 보다가 잠들었다.

새벽 1시에는 다음날을 위해 억지로 잠을 청했다. 둘째가 집에서 먼 학교로 통학하던 때라 새벽 5시에는 일어나 아침준비를 해야 했다. 그런데도 바로 잠들지 못하고 스마트폰을 한 시간이나 만지작 거렸다.


‘아! 차라리 잠을 자라! 제발! 이 시간까지 멍청하게 잠도 안 자고 뭐 하는 거냐!’


이런 내면의 부르짖음은 자괴감이 되어 나를 찌르고 공격했다.

하지만, 잠깐 움찔하고 말았을 뿐 나는 변하지 않고 그대로였다.




본격적인 중독

나는 모든 에너지, 의욕, 추진력을 잃고 무기력한 상태에 있었다.

너무 지쳐 체력이 고갈되었고 아무런 힘과 의지가 없었다.

내 안이 텅 비어있는 느낌. 껍데기만 있는 느낌. 둔중한 살 덩어리인 육체가 허우적거리며 일어나 일정에 따라 움직였고 나의 뇌는 쪼그라들어 바보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작년 5월경 침대에 누워있는 상태가 이어지면서 쇼츠에 더욱 본격적으로 빠져들었다.

쇼츠를 휙휙. 올리며 잠깐 보았다 싶었는데 시청시간을 확인해 보면, 평일 저녁 적게는 3시간, 많게는 5시간, 주말은 10시간을 넘겼다. 나 자신에게 너무나 부끄러웠고 내 인생에 죄스럽기까지 했다.

회사에서 일하는 시간은 쇼츠를 보지 못했다. 정말 다행스러웠다.

그래도 그 시간은 쇼츠를 안 볼 수 있다니, 어쩌면 심각한 중독은 아니었던가.

나는 쉽게 피곤함을 느꼈고 아픈 곳이 많았고 종종 어지러웠다.

주사 맞고 약 먹고 보약 먹고 침 맞고 병원을 돌아다녔다.

피곤하면 그저 휴식을 취해야 하는 것인데 마음 편하게 쉬지도 못했다.

‘휴식 = 침대 = 스마트폰 쇼츠 영상 보기 = 잠들기’는 당연한 순서로 자리매김된 공식 같았다.



쇼츠 시청의 폐해와 위험


쇼츠 시청은 내 머리와 내 마음속 어느 곳에도 아무것도 남긴 것이 없었다.

쇼츠는 도파민 중독으로 이어져 나의 뇌를 녹였고, 나의 시간과 인생을 증발시켰다.

쇼츠는 나의 시간 도둑이었고 인생 도둑이었다. 그런 생활은 몇 달간 계속 이어졌다.

내가 쇼츠에 중독되었다고 인식하는 데에도 시간이 꽤 걸렸고, 인식한 이후에도 생활패턴은 바뀌지 않았다.

최소한의 집안일을 하며 아이들 먹을 것을 준비하고 나는 여전히 침대로 가서 누웠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볼 뿐이었다.

어쩔 때는 지금이 몇 시인지 시계를 보고 확인하는 것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흘러가버린 시간만큼이나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하다고 느껴졌고 또다시 자괴감과 열등감에 빠졌기 때문이다. 악순환은 무한궤도처럼 끝없이 이어졌다.

나라는 존재가 사라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느낌. 내 인생이 이대로 끝날 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

무한반복되어 재생되는 시간 속에 나는 여전히 스마트폰을 붙잡고 흐릿해진 눈동자로 허공을 보며 쇼츠를 끝없이 넘겼다.

그제야 나는 마음속 깊이 인정했다.

멈추고 싶어도 저절로는 멈추지 못한다는 사실을.

나는 쇼츠에 중독되었다는 사실을.

쇼츠에서 벗어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현실의 자각과 탈출의 결심

무의미한 시간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정말 변화가 필요했고 결단의 시간이 임박했다.

멈춤 버튼이 있다면 멈춤 버튼을, 탈출 스위치가 있다면 탈출 스위치를 누르고 싶었다.

나 자신을 우주 한 공간으로 쏘아 올리듯 어디론가 보내버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나는 변화해야겠다고 결심했고 반드시 변화해야 했다.

변화를 위해 하루하루 무엇인가 노력하고 실천하기 위해 조금씩이라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중독 #쇼츠 #유튜브 #스마트폰 #우울


[2편 탈출기(출. 쇼츠. 기)로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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