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봄맞이 대청소

곰돌이 안녕

by 흐르는 강물처럼

봄이 오고 있으니 봄맞이 대청소를 해야겠다.


읽지 않는 오래된 책들, 더 이상 입지 않는 옷들, 천덕꾸러기가 된 인형, 쓰지 않는 물건들이 집안 구석구석 즐비하다.

아이 방에서 내쫓긴 곰 인형이 소파 위에 처량 맞게 앉아 있다.

예쁘고 귀여운데 자리는 많이 차지하고 조만간 입양이 되지 않는다면 쓰레기가 될 운명이다.

곰 인형은 커다란 눈망울, 큼직한 아이보리색 리본을 달고 입가에는 미소를 머금고 있다.

나무랄 데 없는 외모에 깨끗한 상태라 당근에 나눔으로 올리면 가져가겠다고 바로 연락이 올 줄 알았더니 그렇지 않았다. 당근에는 이미 나 같은 사람들이 올린 인형들로 포화상태에 있었던 것이다. 며칠이 걸려 겨우 나눔에 성공하여 이제 곰 인형은 새로운 가족에게 입양되었다.

깨끗하고 말짱한 곰 인형을 쓰레기봉투에 버리게 되면 아깝고 속상할 것 같았는데, 그렇지 않게 되어 다행으로 여겼다.

곰 인형을 입양 보내지 못하고 버리게 되었다면 감당해야 했을 죄책감대신에 곰 인형을 데려간 가족으로부터 감사한 마음을 받으니 이 얼마나 수지맞는 장사인가.

공간을 비우고 마음까지 받으니 기분이 좋다.

이렇게 비우고 버리는 것이 정리의 시작인데 그것을 알면서도 실행하는 것은 쉽지가 않다.




한동안 하다가 그만두었던 서예 도구들, 그림 그리고 싶어서 장만했던 색연필들, 혼자서 연습 삼아 끄적거렸던 캘리그래피 사인펜들, 순간의 욕심에 취하여 구매한 책들과 옷들, 운동용품, 그 밖에 다양한 물건들.

어쩌면 전부 나의 욕망 덩어리들.

아직은 뭔가 의미가 있을 것 같아서 버리기는 아깝고 남 주기도 싫다.

언젠가 다시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더욱 묵혀두게 된다. 하지만 나 역시 알고 있다.

기약이 없는 먼 미래의 나의 욕구들에 속해 있는 부산물들일뿐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번에 다시 안 볼 것 같은 오래된 책들과 물건들을 정리하였지만 그것들(미래의 나의 욕구들에 속한 부산물들)은 그대로 남겨져 또다시 살아남았다. 이미 5년 넘는 시간 동안 손대지 않고 방치되어 있었는데 앞으로 다가올 5년 이내 꺼내서 마주할 가능성이 있기는 할까.

모두 무의미한 다짐이고, 부질없는 미련과 욕심일 뿐인데...




그림책 ‘봄맞이 대청소’ (한림출판사-코이데 탄 글, 코이데 야스코 그림)


아이들을 위해서 샀던 그림책이지만 내가 참 좋아했던 그림책이다.

쥐 세 마리가 봄맞이 대청소를 하기 위해 자신들의 물건들을 마당에 내놓았는데, 이웃들이 그것들을 탐을 내며 갖고 싶어 하자 쥐 세 마리는 아낌없이, 그러나 거의 빼앗기듯 나누어 준다. 정리가 끝난 뒤 텅 비어버린 공간에서 쥐 세 마리는 얼마 남지 않은 세간살이에 앉아 따뜻한 봄 햇살을 받으며 차 한잔을 마신다. 오소리아저씨가 심어놓았던 장미가 빨갛게 피어나자 이웃들이 먹을 것을 들고 찾아와서 마당에서 즐거운 시간을 지내는 것으로 그림책 이야기는 따뜻하게 마무리된다.

나눔은 또 다른 나눔으로 이어지고, 더불어 기쁨과 즐거움은 물감이 번지듯 아름답게 퍼진다.

나도 저렇게 아낌없이 남들에게 나누어줄 수 있을까.

베풀고 나누는 기쁨을 온전히 누리고 여유를 즐길 수 있을까. 나누어주면서도 나도 모르게 상대방에게 생색내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본다.


다시 한번 눈을 크게 뜨고 찾아봐야겠다.

나눌 것이 있는지, 안 쓰고 버릴 것인지, 아니면 꺼내서 잘 쓰고 활용할지 봄맞이 대청소를 하며 정리하려고 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