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
조지오웰, 소담출판사(한기찬 옮김)
1984는 디스토피아를 표현한 최초의 작품으로, 가상의 제국인 오세아니아를 통해 디스토피아와 암울한 사회의 군상들을 보여주고 있다.
1984는 긴 세대에 걸쳐 수많은 영화와 문학, 다양한 예술분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빅브라더의 두 눈동자가 지금도 다른 작품들에서 패러디되거나 인용되는 것만 보더라도 이 작품의 존재감이 얼마나 절대적인지 알 수 있다.
전 세계에 새로운 정치적인 흐름이 격동하던 이 시기에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서 소련, 스탈린, 전체주의, 공산주의, 파시즘 체제를 비판하고 인간말살의 위험을 알리고자 하였는데, 이는 작가 자신에게도 매우 위험한 행동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작가는 자신의 본명 대신 ‘조지오웰’이라는 필명을 따로 쓰게 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 작품이 발표된 1948년도 당시에는 1984년이 매우 먼 미래라고 상상하여 1984라는 제목을 정했을지 모른다. 1948의 ‘4’와 ‘8’의 두 숫자를 바꾼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현재 2025년도 기준으로 1984년은 벌써 40년도 넘은 과거가 되어버렸으니, 시간의 무상함과 덧없음을 느끼게 한다.
1948년 당시 세계의 정세는 이념과 제국주의, 전쟁으로 거세게 휘몰아치는 격동의 시기였다. 이 시기에 작가는 오세아니아라는 가공의 세계관을 구상하고 현실감 있게 소설 속에 구현하였는데 그 상상력은 가히 천재적이라 할 만하다.
이 작품 말미에 첨부된 '부록'은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장치 중 하나이고 동시에 [1984] 작품을 구성하는 부분으로서 언어가 사회와 사회 구성원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작가가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알 수 있다.
언어는 단지 의사소통의 도구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언어는 사람들의 머리, 마음에 인식, 깨달음, 영향, 감명을 주는 주체이므로 오세아니아에서는 당연히 경계하고 관찰하여야 하는 대상이다.
단어라고 규정된 것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거나 때로는 의미를 확장하는 것, 생각하고 응용하거나 상상하는 것조차 오세아니아에서는 통제되고 검열되고 수정되고 삭제되어 버린다.
우리나라의 뼈아픈 과거인 일제 강점기에 일제가 우리나라 말과 글을 쓰지 못하게 하였던 것은 말과 글에 사람의 얼, 영혼이 있기 때문이었다.
말과 글을 통해서 사람들은 배우고, 생각하고, 성장하고, 발전하며, 기록으로 후세에 오래도록 남긴다.
이 사실을 알았던 일제는 우리나라 민족의 영혼을 말살하기 위하여 말과 글을 쓰지 못하도록 강제로 짓밟았던 것이다.
목숨을 걸고 우리나라 말과 글을 지켜내려 했던 [조선어학회 사건]이 떠오르고, 조선어학회 사건을 모티브로 제작된 영화 [말모이]로 생각이 이어진다.
다시 [1984] 작품으로 돌아가서 보면, 오세아니아는 언어, 역사, 과학, 예술, 종교 모든 영역을 당의 목적에 맞게 가두어 버리거나 없애 버리고, 개인이 가지는 감정과 인간관계조차 모두 부정하면서 끝내 인간이 인간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가능성, 인격 자체를 말살하는 곳이다.
주인공 윈스턴은 오세아니아의 통제된 사회와 자기 자신에 대하여 인식하고 각성하면서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미약한 힘이라도 보태어 바꾸려는 의지를 가지고 혼자만의 비밀 속에서 고군분투한다.
그러나, 인간은 고통을 감내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으며 허무하게 굴복해버리고 만다. 결국 그는 당의 목적에 맞게 개조되어 껍데기만 남은 무력한 인간이 된다.
인간은 그저 살아있는 것만으로 존재한다고 할 수 있는가.
인간의 존재는 어떤 의미일까.
인간의 본성은 무엇이고 스스로의 의지를 갖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여야 할까.
가족, 우정, 사랑, 헌신, 희생은 무엇일까.
고통 속에서도 나 자신을 온전히 지켜내기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오세아니아와 같은 환경과 체계 안에서는 결국 인간은 윈스턴처럼 무너져버리게 될까.
인간의 본성을 말살하는 사회, 모든 것을 감시하는 부릅뜬 눈동자가 여기에 없다고 할 수 있을까?
또 다른 형태와 모습으로 이미 수많은 눈동자들이 존재하여 어디선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지 모른다.
지금 이 세상이 또 다른 오세아니아는 아닐까?
윈스턴 스미스, 줄리아, 파슨스, 채링턴, 사임, 오브라이언, 빅브라더, 골드스타인...
우리는 이 중 누구의,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존재하는가.
[마음에 드는 문장]
결국 그들은 자기들 손으로 자신들의 완벽함에 구멍 하나를 낸 셈이다. 그들을 증오하며 죽는 것, 그것이 자유였다.
지독하게 추운 날이었다. 바람이 나뭇가지 사이로 소리 내며 지나고 드문드문 나 있는 더러운 크로커스를 흐트러뜨렸다. 그는 그녀의 허리에 팔을 둘렀다.
지면은 쇳덩어리처럼 단단했고 풀은 모두 말라 죽은 것 같았으며 어느 한 곳에서도 새싹은 돋지 않았다. 다만 크로커스 몇 송이만이 올라왔다가 바람 속에 꺾여 버렸다. 손이 얼고 눈에는 눈물이 그렁한 채 걸음을 서두르고 있던 그는 10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서 그녀를 보았다.
그는 처음으로, 비밀을 간직하고 싶다면 스스로에게서도 감춰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비밀이 있다는 사실은 알아야 하지만, 필요하게 될 때까지 절대로, 이름을 부여할 수 있는 형태로 의식의 표면에 떠올려서는 안 된다.
예전 전제 정치 시절의 명령은 ‘하지 말라’였네. 전체주의의 명령은 ‘해야 한다’였지. 우리가 내리는 명령은 ‘그렇게 되거라’라는 것일세.
비록 끝이 고문이라는 것이 확실하더라도 10분 더 살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고, 매 순간 살려고 든다고 여기는 쪽이 훨씬 더 자연스러웠다.
그들의 힘찬 생식기에서 언젠가 반드시 의식화된 한 종족이 나올 것이다. 당신은 죽은 존재다. 그들이야말로 미래였다. 하지만 살아 있기만 하다면 그 미래를 공유할 수 있을 테고, 둘 더하기 둘이 넷이라는 저 비밀스러운 가르침을 전해 주게 될 것이다.
프롤레타리아는 불멸의 존재다. 마당에 있는 저 씩씩한 여자를 보면 그 사실을 의심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그들은 각성하게 될 것이다. 천 년이 걸릴지 모르지만 그 일이 일어날 때까지 그들은 어떤 역경 속에서도 새들처럼, 당이 차지하지도 못하고 죽일 수도 없는 저 생명력을 몸에서 몸으로 이어 가며 살아남을 것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영구적인 평화는 영구적인 전쟁과 같은 것이리라. 당원 대다수가 지나치게 피상적인 의미로만 이해하고 있지만, 이것이 바로 ‘전쟁은 평화’라는 당의 슬로건 안에 감춰진 의미다.
* 밀리의 서재에 포스팅하였던 내용을 수정, 보완하였습니다.
#1984 #조지오웰 #디스토피아
#영화 말모이 #조선어학회 사건 #오세아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