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나쓰메소세키, 현암사
책을 좋아하는 우리 집 첫째의 권유로 일본의 셰익스피어라고 불리는 나쓰메 소세키의 책을 처음 읽게 되었다.
작가의 연보를 참고하면 친구의 죽음, 하숙생활, 잦은 병치레, 양자로 보내졌다가 다시 본가로 돌아오는 등 여러 가지 작가의 경험을 녹여내어 쓴 자전적인 소설로 보인다.
작가는 평생 신경쇠약증에 시달렸으며 그러한 경험 때문인지 등장인물의 심리를 세밀하고 섬세한 필체로 묘사하였고, 그것이 '마음'이라는 제목으로 지어진 이유일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럼에도 ‘마음’이라는 단어가 이 책에서 직접적으로 표현되지 않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아니, 마음이라는 단어를 굳이 쓰지 않은 작가의 의도가 깔려있는 것일까?
이 책은 선생님과 나, 부모님과 나, 선생님과 유서로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나와 선생님과의 현재, 내가 고향으로 공간을 이동하여 부모님과 함께 하는 시간, 선생님이 유서를 통하여 고백하는 과거를 서술하고 있다.
소설 초반에는 다소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았으나, 선생님의 과거에 대한 나의 호기심, 그리고 유서를 통한 선생님의 고백으로 과거가 밝혀지는 것으로 이야기가 이어지는 과정은 독자로 하여금 궁금증을 이어가며 몰입감을 주어 제법 재미있게 읽힌다.
예전의 나 같으면 ‘이런 책이 왜?’하는 생각이 들면서 재미없고 지루하다고 느꼈을 책이다. ‘소설은 재미없으면 끝이야.’ 라며 공감하지도 못하였을 것이다.
그러다가 ‘이 책은 내 스타일이 아니군.’ 하면서 중간에 이 책을 덮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이 작가가 얼마나 섬세한지, 작가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나 역시 글쓰기를 하다 보니 마음의 세세한 변화와 느낌을 글로 전부 다 풀어내어 표현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우며, 그 과정을 표현한 글을 읽고 독자로 하여금 공감하게 하는 것 또한 얼마나 대단한 필력인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똑같은 책이라도 읽을 때의 내가 다르면, 전혀 다른 책이 된다.
나는 어릴 적 일본 작가들의 단편 소설들을 몇 편 읽고는 ‘일본 소설은 탐미적이고 퇴폐적이고 쾌락적인 면이 있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로 인한 이야기 흐름이나 결말이 너무나 작위적으로 느껴져 거부감이 있었다.
이는 나의 어릴 적 짧은 식견과 안목에 의한 기억으로 사실과 다른 부분도 분명히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또한 몇 년 전 베스트셀러로 히트를 친 일본 추리소설에 대해서도 다소 실망스럽게 느낀 적이 있었다. 그래서 추천을 받고도 이 책을 읽을까 말까 살짝 주저했었다.
일본 작품이라는 이유로 처음부터 독서에서 배제하려 했던 나의 생각은 확실히 잘못된 것이었다.
이미 내가 좋아하는 다른 책들과 영화들도 일본작품이 많지 않았던가.
이 책을 읽게 되고 이 작가의 삶을 엿보게 된 것도 좋았다.
1910년대에 발표한 이 소설이 벌써 100년이 넘은 현재에 이르기까지 고전문학으로 평가되며 나쓰메소세키가 많은 사람들로부터 (특히 일본에서는 국민작가로서) 사랑받는 것을 보면 그럴만한 이유가 다 있다.
다음에는 이 작가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와 '도련님'을 우리 집 첫째 책장에서 빌려와서 읽어봐야겠다.
[마음에 드는 문장]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음
책 원문과 해설 부분(문학평론가 강유정)에서 발췌함
나는 차가운 머리로 새로운 말을 하기보다 뜨거운 혀로 평범한 말을 하는 게 살아 있는 거라고 믿고 있거든. 피의 힘으로 몸이 움직이기 때문이지. 말이 공기에 파동을 전할 뿐 아니라 좀 더 강력한 것에 좀 더 강하게 작용할 수가 있기 때문이야.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검은빛이 내 미래를 관통하고 한순간에 내 앞에 놓인 전 생애를 무섭게 비추었네. 그리고 나는 덜덜 떨기 시작했지. 그래도 나는 끝내 나를 잃을 수 없었네
젊고 아름다운 사람에게 끔찍한 것을 보이면 그 때문에 귀중한 아름다움이 파괴되고 말 것만 같아 두려웠던 거야. 두려움이 머리카락 끄트머리에까지 이르렀을 때조차 나는 그 생각을 도외시할 수 없었네. 그 두려움에는 죄 없는 아름다운 꽃을 함부로 채찍질하는 것과도 같은 불쾌감이 있었거든
마음, 마음이란 발견하지 못한 자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한번 들여다본 이상 나에게 무겁고도 준열한 질문을 던지는 윤리의 맨 얼굴이다. (해설)
* 밀리의 서재에 포스팅하였던 내용을 수정, 보완하였습니다.
#마음 #나쓰메소세키 #일본 셰익스피어
#선생님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