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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가 Feb 18. 2021

엄마라는 부캐

지금 시대는 엄마에게 자기희생과 자기 계발 중 양자택일을 강요한다. 마치 아빠와 엄마 중에 누구를 더 사랑하느냐는 질문만큼 어리석다. 그래서 나는 우문현답으로 엄마는 나의 부캐라고 대답하고 싶다.

다시 말해서 자기희생적이지만 자신을 잃지 않고 또 다른 나를 만나는 기회가 되는 자기 계발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자기 확장적 엄마, 그렇게 엄마라는 부캐가 되기로 결정했다. 

 

아기 키우기 쉬운 세상

"아기 키우기 쉬운 세상이다. 네가 우울한 이유는 여유가 있어서 그런 거야. 나는 우울할 틈도 없었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노는 10개월 차 아기를 돌보며 힘들어하는 나를 보며 엄마세대는 말했다. 

엄마세대 눈에는 공동육아 해. 주. 는. 남편, 육아 퇴근, 대여 가능한 육아용품, 퇴사가 아닌 육아휴직이 있는 삶이 그렇게 해석되었다. 그분들의 육아가 혹독했기에 그 해석이 이해된다.  

시어머니의 육아는 하루 5끼를 밥상을 내고, 천기저귀를 손으로 매일 빠는 스파르타 시집살이였다. 친정어머니의 육아는 저녁 9시가 넘어서 퇴근하는 남편 때문에 아이 3명을 거의 혼자 키우셨고, 처음 육아 퇴근 한 날 혼자 직행버스를 타고 동네 한 바퀴를 도는 것이 전부였을 만큼 고립적인 독박 생활이었다. 과거의 육아에 비교하면 당연하게 말할 수 있는 그 문장이 나에게는 거슬렸다.

그렇다면 나는 아이 키우기 쉬운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일까? 우울은 여유가 있는 엄마들의 투정일까? 

아니. 아니다. 정말 아니다.

 

기승전결 엄마 탓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다양한 얼굴을 바꿔가며 이상적인 엄마를 강요하고 있다. 우리가 다니는 회사들이 마케팅 수단이 바뀔 뿐 더 많은 돈을 벌려고 하는 이치와 비슷하다.  

"김대리, 이번 프로젝트는 무조건 성공해야 해. 알지? 내가 준 자료대로만 하면 되는 거야. 하나라도 실수하면 도미노처럼 무너질 수도 있어. 모든 책임은 혼자 지도록 해."

이렇게 말하는 팀장과 일을 한다면 하루에도 몇 번씩 퇴사 욕구가 폭발할 것이다. 그런 회사에 이런 팀장과 임금체불이 된 상태에서 엄마들은 일하고 있다.

방송, SNS에서 너도나도 "아기에게 정서적 안정감을 주는 방법", "***을 놓치면 평생 건강을 해친다."등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 뒷면에는 전문가인 본인의 논리대로 아기를 키우지 않으면 아이의 미래는 도미노처럼 무너지며 이 모든 탓은 엄마 니 탓이라는 주장이 깔려있다. 


한국에서 나를 포함한 지금 양육자들은 거의 최초로 의학적, 심리학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육아를 하는 기회가 열린 동시에, 모든 책임을 떠안아야 하는 엄청난 부담감을 가지고 있다. 


의학과 심리학 교육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육아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바야흐로 아이는 '만들어질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아이의 결함을 교정하고 소질을 계발할 수 있다는 믿음 아래, 육아는 '양육자가 신중하게 도입하고 의식적으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활동'이 되었다. 
엘리자베트 벡 게른스하임 <모성애의 발명> 147p


수면교육에 실패하면 뇌 발달에 치명적이고, 인격적인 수유를 하지 않으면 아기의 식습관은 파괴될 것이며, 부부싸움을 하면 아기는 공포영화 11편을 연속으로 보는 충격을 받는 기승전결 엄마 탓이라는 벽 앞에 무릎 꿇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래서 한국 여성들은 양극단을 선택하고 있다.

엄마를 내 인생에서 지워버리는 화려한 싱글이나 딩크족으로 살거나, 엄마를 내 인생 전부로 삼는 전업주부로 살거나 이도 저도 아니면 죄책감과 미안함으로 엄마도 나도 아닌 삶을 살거나.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나는 시아버지에게서 명쾌한 답을 얻었다.

 

막창 먹을래? 삼겹살 먹을래? 

저녁 식사 전 시어머니께서 나에게 물으시자 시아버지가 지혜롭게 나의 대답을 대신해주셨다.

"말라고 묻노, 둘 다 꾸버뿌면 되지.(대구 사투리 해석 : 왜 그런 질문을 해? 두 개다 구워서 먹으면 되잖아.)"

그 날 저녁에 나는 꼭 하나를 선택할 필요는 없다는 지혜를 얻었고 막창 삼겹살 모두 맛있게 먹었다.

엄마라는 무게는 음식을 선택하는 무게와 분명 다르지만 받아들이는 태도는 비슷하다. 하나를 포기하기보다 둘 다 구워버리는 방법. 그래서 나는 나라는 존재도 있으면서 새로운, 또 다른 나인 엄마를 받아들는 엄마라는 부캐를 선택하기로 했다.

사실은 이유식 그릇을 바닥에 던지며 웃는 아기에게 화나는 내 모습에 실망하고, SNS에 이쁜 육아를 하는 엄마들과 나를 비교해서 열등감에 빠지고, 다른 아이들보다 발달이 늦은 아이를 보고 초조해하는 10개월 차 초보 엄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또 다른 나를 만들고, 더 나아가 성숙한 나를 만날 것이다. 

지금 나는 세상에서 정해주는 이상적인 엄마가 아니라, 나의 가치관으로 행복을 만드는 건강한 엄마가 되는 과정을 밟고 있다. 나의 인생에서 엄마라는 부캐가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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