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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가 Feb 26. 2021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을 것이다.

자기희생 vs 자기 계발

나는 엄마처럼 살지 못한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 다른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많은 딸들이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을 것이다."라고 다짐하고 엄마처럼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는 다른 시대에 같은 어려움인 육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가족 관련 정책부터 육아 아이템까지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아직까지 육아의 어려움을 "해결했다"한 국가는 에덴동산 때부터 없었다. 이런 육아 환경 속에서 나는 그 흔한 사랑을 택했다. 그 사랑은 자기희생이나 자기 계발이 아니다. 바로 자아 영역을 확대하는 자아 확장이다. 


정(正) : 자기희생  

엄마의 30대 삶은 자기희생적이었다.  80~90년대 어머니들은 가족 구성원 중 철저하게 자신을 희생하면서 이 사회를 지탱했다. 그 희생의 결과가 지금의 나이고 우리이다. 그러므로 누가 그 인생을 어떻게 잘못된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는 말은 엄마의 삶이 틀렸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만큼 과거에 사회구조적으로 가족 구성원들 중 암묵적으로 엄마가 희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같은 여자로서 굉장히 죄송스럽고 존경하는 마음이 가득하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살 수 없다. 왜냐하면 시대가 변했기 때문이다.


반(反) : 자기 계발

위와 같이 엄마세대는 자기희생은 했지만 인류 최초로 부모를 부양하면서 자식에게 부양을 받지 못한다. 그리고 나의 세대는 자기 계발은 하고 있지만 인류 최초로 자기 계발 시간 대비 평생직장 개념은 사라지고 덩달아 고용불안이 매우 심각한 현실이다. 그래서 육아와 동시에, 업무적으로 뒤쳐지면 안 되고 연예인처럼 이쁘고 날씬한 몸매를 가져야 자기 관리를 잘한다고 인정받는 워킹맘이 되어야 한다. 정책부터 매스컴, SNS가 그렇게 우리 세대 엄마들을 압박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육아는 고용 불안이 촉발되는 출산율 저하의 근본 원인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合) : 자기 확장

어느 날 저녁, 아기는 하루 종일 울었고 이런 상황에 지친 나도 같이 울었다. 몇 개월간 하루 3시간 이상 자지 못했고 모유수유 때문에 가슴에 총 맞은 것처럼 윗옷이 축축하고 젖비린내가 났다. 나는 출산 전 내가 아니었고 그저 아기 밥 주는 식당 존재처럼 여겨졌다. 그때 당시 나는 스스로를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눕혀놓고 완전히 자기희생하지 않는 나쁜 엄마, 자기 계발하지 않는 게으른 여성이라고 단정 지었다. 그 침대는 꽤나 나에게 컸고 또 작았다. 그래서 벗어나고자 발버둥 쳤다. 그리고 독서를 통해 내가 하고 있는 육아의 패러다임을 침대에서 사랑으로 바꿨다.


참사랑의 경험은 인간 한계의 확장을 가져오므로 그 경험은 역시 자아 경계와 연관돼 있다. 인간의 한계가 인간의 자아 경계다. 사랑을 통해 한계를 확장할 때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의 성장을 돕기를 소망하면서 그 대상을 향해 다가가기 때문에 그러한 일이 가능해진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우선 사랑하는 대상에게 사랑을 느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자아 경계를 넘어서서 우리 밖에 있는 대상에 끌려야 하고 자신을 투자하고 완전히 헌신해야만 한다. 정신과 의사들은 이러한 끌림과 투자와 헌신하는 현상을 '애착'이라고 부르고 사랑하는 대상에 '애착한다'라고 말한다. 자신밖에 있는 대상에 애착할 때 우리는 심리적으로 그 대상의 상징을 자신과 일치시킨다.   M 스캇 펙, <아직도 가야 할 길> 중


아이를 사랑한다는 패러다임은 지극히 진부하고 당연하지만 그 사랑의 의미가 자기 경계 확장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철저한 자기희생으로 과감한 자기 계발이 가능한 자기 (경계) 확장이 나의 육아 패러다임이다.

나는 예민한 완벽주의자다. 그래서 삶의 계획에 오차가 생기면 못 견디고 고슴도치처럼 변해서 나와 주변을 괴롭힌다. 이런 내가 삶의 계획을 오차 없이 세워야 한다는 완벽성을 버리고 나의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괜찮다는 유연성을 훈련하고 있는 중이다. 당연히 한참 멀었고 더 해야 하지만 그 시작점이라고 소개하고 싶다.

나는 교만하게도 스스로 완벽한 계획이 있는 똘똘한 예비맘이라고 자신했다. 엄청난 경쟁을 뚫고 예약한 산후조리원, 회사와 협의하여 가장 좋은 출산휴가일 확정 등의 계획은 스스로 만족할 만큼 철저했다. 하지만 임신성 고혈압으로 내일 당장 발작을 일으켜도 이상하지 않고, 혈소판 수치가 낮아져서 지혈이 되지 않아 죽을 수도 있다는 담당 교수님의 협박(?)에 대학병원에서 2개월 일찍 아기를 출산했다. 나의 완벽한 계획은 완벽하게 도미노처럼 무너졌고 유리파편처럼 깨어졌다. 그런 좌절과 실패감을 딛고 지금은 육아를 통해 계획의 유연성을 키우는 중이다. 그 키우는 마음을 나는 원대한 꿈이라고 별명한다.


"여보, 지유가 밤 9시에 자면 저녁 뉴스 보면서 요거트 한잔 어때? 너무 원대한 꿈인가?"


아기가 있으면 나의 계획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그 계획의 틈 사이로 생기는 시간들이 엄청 소중해진다. 더 중요한 점은 그 틈이 생기면 정말 좋지만 생기지 않아도 괜찮다는 의미로 "원대한 꿈"이 생겼다는 것이다. 사실 그날 요거트를 먹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리 아니 될지라도 마음을 지킬 줄 아는 여유가 조금씩 생기고 있다. 철저히 나의 시간을 희생하고 있지만 그만큼 시간에 대한 여유로운 마음,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괜찮다는 의연함을 익히는 자기 계발을 동시에 하고 있는 샘이다. 지극히 결과적이고 과정적으로 나는 매일 자기 확장을 하고 있다.  


나는 우리 엄마처럼 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내 딸도 나처럼 살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내 딸이 나처럼 살지 않고, 자신만의 자기 확장을 하며 살아갔으면 좋겠다. 그 삶이 독신이거나 엄마이거나 상관없이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자기의 확대가 어떤 것인지 삶을 통해 딸에게 보여주고 싶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밤도 아이가 자는 밤을 틈타 글을 쓰고 있다.

그래서 말인데 제발 새벽에 깨지 말아라 아가. 엄마도 좀 자자.


출처  M 스캇 펙, <아직도 가야 할 길>, 율리시스, 2011, 133-13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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