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은 물에, 감사는 돌에
이 공책 <Notion to Motion>은 분류상 기획없이 떠오르는 생각을 흐름대로 기록합니다. 있는 척하면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한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냥 자유로운 글쓰기이자 퇴고할 시간이 부족한 외벌이 애 셋 아빠의 글이라서 입니다.
1. 내가 쓰는 글들을 '쓰고 싶은 글'과 '써야 하는 글'로 나눠야 한다면 오늘의 글은 어느 한 쪽으로 분류하기 어렵다.
난 많은 예술가들에게 있는 '자기 표현 (self-expression)'의 욕구가 강하지 않은 편인 것 같기도 하고, 그런 자기 표현은 주로 음악으로 해소 되어왔기 때문에 글은 기록과 소통의 '도구'로 활용해온 것 같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의 경우는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싶은 목적성이 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흔한 오해를 발견하고 그 오해를 풀어서 좀 더 나은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싶은 마음)
반면에 내가 써야 하는 글의 경우는 '기록하지 않으면 사라져버릴 것 같은' 잊고 싶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이다.
세상에 태어나서 많은 걸 겪으며 청소년기를 지나 성인이 되고 결국 상상해본 적 없는 부모의 삶을 이끌게 되었다.
그 기간동안 내가 받은 수많은 친절(kindness)은 기록 하지 않으면 점점 옅어져서 잊혀질까 두렵다. 그렇게 감사해야할 것들을 잊게 되면 감사하는 마음을 내려놓은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 하는 경계심(?노파심?)이 있다. 그래서 가지게 된 '원칙'이 있다. 한국 속담을 약간 변형한 말로 표현해본다:
슬픔은 물에 새기고 감사는 돌에 새기자
- 빙산 -
언어에 민감한 사람은 이렇게 물을 수 있겠다:
'왜 슬픔과 기쁨, 불평과 감사의 대조가 아닌가요?'
슬픔은 내가 겪는 기분이고 불평은 행위이다. 기록하지 않아도 하게 된다. 하게 되면 기억하게 된다. 노력이 필요한 과정이 아니다.
기쁨 역시 기분이지만, 기쁨의 경우 기록하지 않으면 잊혀지기 쉽다. 감사의 행위는 노력이 필요하고 배워야 하게 된다. 아이를 키우면서 자주 경험한다.
("감사합니다~" 라고 해야하는 걸 가르치지 않으면 아이들은 그냥 받고 쌩~ 하기 일쑤이다.)
이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날은 7월 17일.
첫째 아이가 유치원에서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에 있는 '디자인 놀이터'로 현장체험을 간 날이다.
어차피 아이를 위해서 오후는 집에서 보내는데 오후 세시까지 아이가 돌아오는 걸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 폭우와 침수가 자주 보도 되는 때이기도 했다. 아이가 유치원 버스를 타고 와도 되는 걸 굳이 둘째를 데리고 나와 차로 함께 이동했다. (집에 두고 가면 엄마가 셋째랑 같이 재워야 하니 난이도가 올라간다)
이런 저런 구경을 하다가 환경보호 관련 전시공간에 들어갔다.
작업복을 입은 나이가 지긋하신 분께서 다가오셨다.
아이들은 선물이 있단다.
그렇게 뜬금없이 공책과 지우개를 선물 받은 우리 집 아이들.
작가분이신 것 같다고 생각하던 중에 넌지시 말씀하셨다.
스테들러社(Steadler)가 전시회 소식을 듣고 지우개를 보내왔다고.
'이 분 유명하신가보다-' 했는데 '그린 디자이너(Green Designer)'로 알려지신 윤호섭(1943~) 님이셨다.
https://www.youtube.com/watch?v=E_gkE7ZKB98
전시회의 이름은 Greencanvas in DDP 이고, 2024.09.29까지 이다. (링크)
아이들 키우며 이런 친절을 아주 많이 만나왔다.
회사 근처에서 찾은 신혼집은 건너편에 공원이 있는 빌라였다.
주변엔 많은 식당들이 있지만 공원 옆의 나름대로 조용한 '제3종 일반거주지역'에 위치한다.
거기서 살며 보낸 3년 반 동안 두 세 가게의 '단골손님'이 되었다.
이사가 잦았던 삶을 살아온 내게 평생 없었던 일이다.
(아, 단골미용실은 있었다. 선불로 10만원 결제하고 쓰던)
마스크 없이 인사를 하며 지내다가 마스크 없이는 들어갈 수 없는 시절도 겪게되었다.
코로나19로 소상공인경제가 안 좋다니 괜히 매일 퇴근길에 들러 빵을 샀다.
(미용실의 선불지급금은 코로나19가 끝날 때까지 쓰지 않겠다며 매번 결제를 했다)
빵집 사장님 부부와도 익숙해졌다.
배가 부른 아내와 함께 갔다가 아이를 안고 가며 안부를 묻게 되었다.
배달비를 아낄 겸 주변의 식당에선 늘 포장으로 가져갔다.
아이들에게 인사성 교육한다며 조금 더 용기를 내어 인사를 하고
태생적으로 부족한 '스몰토크(small talk)' 능력을 끌어올려 한 두 마디 더 하며 아이들도 인사를 시켰다.
면을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공원 건너편의 칼국수집의 사장님 부부도 또래 손주들이 있다며 말을 걸어주신다. 아내가 산후조리기에 맛을 들이기 시작한 동네 맛집 순대국집도 오고 가며 사장님과 인사를 했다. 그렇게 아내와 아이의 안부를 묻는 사장님께 아이들의 사진도 보여드리며 정겨운 이웃이 되었다.
그렇게 내게 처음으로 '이웃'들이 있는 동네가 생겼다.
빵집에서는 아이들이 초등학생이 되어 필요 없게 된 인형과 책들을 잔뜩 주셨다.
그렇게 아빠 책으로 가득하던 책장은 아이들 책으로 채워졌다.
칼국수 집에서는 자주 사먹는다며 1인분 가격에 곱배기의 양을 채워주셨다.
순대국 집에서도 단골이라며 순대국에 서비스로 순대를 따로 포장해주셨다.
이게 도시화 되기 전 한국 '마을' 문화였을까?
집이 투자대상이 아닌 거주지였던 시절의 한 동네에서 오래 동안 얼굴보며 살아가던 사람들 사이에서 피어나는 정인걸까?
셋째가 생겨 이사를 고려하게 되었을 때, 사실 가장 마음이 쓰였던 것은 '이웃의 상실'이었다.
회사 근방에는 그 집 보다 넓은 가격대의 집으로 가는 게 불가능했다.
그래서 두 개 구를 건너 통근거리를 늘리고 아내가 원하던 낮에 햇볕이 들고 하늘을 볼 수 있는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아이들과는 종종 차를 타고 옛 동네 놀이터에 가고 빵집에 가서 인연을 이어가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난 꽤나 '객관적인' 사람이다.
우리 집 애라고 더 예뻐 보이지 않고, 내가 쓴 글에 라이킷이 늘어난다고 내가 글을 더 잘 쓰게 된 게 아니란 걸 잘 인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 잘 쓰시는 작가님들의 칭찬과 격려에는 큰 힘을 얻는다.
유튜브에 올려 브런치에 공개한 곡들도 (나도 알고 있는) 프로의 기준으로 보면 한없이 부족하지만, 또 그런 곡들에도 칭찬을 해주시는 분들을 보며 내 안에 잠자고 있을 지 모를 1%의 가능성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나는 사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재능과 노력의 비율을 뒤바꿔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90%재능과 10%의 노력이 아닌 10%의 재능과 90%의 노력이 성과를 낸다고 믿는다.
노력할 수 있는 것도 재능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무튼 그런 내가 쓴 글이 아무리 허접해보여도 창작에 대한 기초훈련으로 삼고 있다.
독자가 있다는 건 그런 것 같다.
'어차피 아무도 안 읽을 거' 라고 생각하며 쓰는 글과 '누군가는 읽고 있어' 라고 생각하며 쓰는 글은 다르다.
의의로 지인들을 독자로 두고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썼던 글들은 글쓴이를 더 공허하고 외롭게 한다.
그 곳에서의 사진 하나에 달린 '하트/이모티콘'은 100개 정도 되어야 브런치스토리의 댓글 하나의 무게와 따뜻함이 있다. (수년전 부터 잘 안쓰고 있지만, 페북 친구 250명 대의 내 평균 '좋아요'수는 10개 미만이다..)
아무튼 그런 따뜻한 공간인 브런치스토리에서도 특히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셨던 '작가명미정'/'파리외곽 한국여자'님은 인상이 깊다.
내가 쓰는 글 누가 읽을까...싶었는데 '시의적절하게' 다가왔다고 하셨다.
그 때 내 글을 읽는 이가 있다는 걸 실감했다.
여름이 되어 '파리사리' 시즌2에서 필력을 뽐내기 시작하다 싶었는데, 파리올림픽 기간 중 아무 예고도 없이 홀연히 사라지셔서 좀 걱정이 되었다.
내 직업병 때문일까. 사진을 볼 때 늘 우려가 있었다.
현장(?)의 사진을 찍으실 때, 행인들의 초상권 문제로 시비가 붙으시면 어떡하지?
혹시 그래서 사진에 찍힌 분의 항의로 글을 지우고 계정을 삭제하셨나?
최근 글에 너무 사적인 내용들을 적으시고 또 거기에 사람들과 댓글로 소통하는 걸 보고 ... 괜찮을까? 싶기도 했다. 내가 단 글도 신경쓰였다. 혹시 나의 의견이 어떤 불편함을 드리지 않았을까... 하는.
브런치스토리 안에서 만난 류귀복 작가님, 달콤묘(Sweet Little Kitty) 작가님, 곤충의 이름을 버리고 사람이 되신 김소이 작가님, 가죽으로 꽃을 만들어내는 손가락으로 예술의 장소에 대한 글을 나눠주시는 꽃보다 예쁜 작가님, 융합형 인재의 가능성을 단어로 표현해주신 민트별펭귄 작가님, 인문학과 짝사랑이 아닌 열애를 하고 계신 게 분명한 멋진 아빠 최재운 교수님/작가님, 저와 관심사와 사유과정이 비슷해 신기한 바람꽃 작가님, 제 부족한 음악에 감동도 받아주시는(?) 곽현 작가님 등 여러 작가님들도 '빙산'이라는 흐물흐물한 새싹에 물을 부어주고 계신 감사의 대상입니다.
가망성 없는 새싹은 뽑아버려..야 하는 선택과 집중의 시대가 아닌 가 싶지만, 감사합니다
언젠가 책이 나오게 되면.
언젠가 앨범 비스무리하는 게 혹시+만약에 탄생하게 된다면.
아마 speacial thanks to... 라는 흔한 제목 아래 이름이 올라가겠지요.
심사위원의 냉철하고 정직한 평가가 아니라 친절이란 걸 알면서도 격려가 되고 힘이 됩니다.
우리 아이들이 칭찬을 먹고 자라듯 저도 그렇겠지요.
어른이 된 제가 비평을 듣기는 어려우니 제 스스로 자아교정과 자기발전에 힘을 쏟아야겠지요.
구조도 흐름도 없는 이 글은 이렇게 마치려 합니다.
이제 좀 선선한 바람이 부는 밤과 아침이 되돌아오고 있네요.
환절기가 올 것 같습니다.
감기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