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한국어로 노벨문학상을 받았을까?
난 유행에 따르는 것에 대한 저항감이 있다.
그건 독창성에 대한 (허세같은) 추구일 수도 있고, 흐름에 몸을 맡기는 걸 즐기지 않는 성향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게 '남들과 같아야 한다'는 압박이나 '군중심리'로부터 자유로운 나의 삶의 저변에 깔려있나보다.
한강이라는 작가의 성별도 이번에 처음 알았을 정도로 한국문학계 흐름에 둔하기도 하다.
브런치스토리 작가가 되기 전에 이미 알고 있던 (존경하는) 생물학자이자 작가이시기도 한 김영웅 박사님(링크)의 글을 통해 처음 문학적 스타일에 대해 처음 알았다.
https://brunch.co.kr/@youngwoongkim77/854
하지만 실험정신도 강한 편이고 새로 알게 된 지식을 적용하고 실천하는 걸 잘한다.
최근에는 탄수화물에 대한 논란에 주목하게 되며 고기만 먹는 삶을 도전해보고 싶기도 하다. (근데 물가가 비싸다..) 어렸을 때는 반찬으로 고기만 먹었다고 한다. (나의 편식을 용인하신 어머니께 아쉬움을 표한다..)
그래서 '채식주의자'라는 제목은 전혀 나에게 어필이 되지 않았다.
제목은 육식주의자라고 했지만, 성인이 된 지금은 귀여운 동물*을 제외하고는 가리는 거 없이 잘 먹는 잡식성이다. 보편적인 인간이다. 아직도 고기를 잘 먹는다.
(*우리 아이들의 어휘를 빌리자면 멍멍이 야옹이 깡총이 등이 되겠다)
채식주의자가 옹호하는 채식주의에 관한 토론을 한 두 편 본 적이 있다. 나로서는 조금만 더 상상력을 발휘하면 동물이 겪는 고통이나 산업의 잔인함을 식물에게까지 적용가능한 것 같아서 결국은 '또 다른 그룹이 임의로 정한 기준'이라고 다가와서 동참의 의지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채식주의자 친구도 있다.
CELTA라는 영여교육자격증 시험을 공부할 때 함께 수업을 받던 영국친구 M(여성)과 같이 학생들과 '나는 누구일까요'라는 게임을 했다. 자신을 묘사하는 문장을 주고 두 사람이 함께 앞에 나와서 시작한다.
그 중에 Vegetarian 이라는 단어가 있었고 학생들은 나를 골랐다.
이유를 물어보니 내가 통통한 M보다 말라서였다고 한다.
고기를 안 먹는다고 <채식주의자> 속의 주인공처럼 마르지 않는다. 인간은 탄수화물을 지방으로 전환시키는 능력이 있다. 고기 안 먹고 과자 먹으면 살 찔 수 있다
한국에서 노벨문학상이 탄생했다는 건 왠지 어마어마한 일로 다가왔다.
국제적으로 훨씬 더 인기가 많을 것 같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미 받았을까 찾아보니 아니었다.
막상 새로운 현상이라고 하기에도 흐름은 진작에 포착되었다.
영화 <기생충>의 제92회 아카데미상 작품상 수상, BTS의 글로벌히트, 넷플릭스의 <오징어게임> 대히트 등.
그 연장선에서 한국 문학작품이 세계적 인정(?)을 받았다는 것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폴리글롯(PolyGlot)/다중언어자로서 궁금증이 생겼다.
잠깐. 한강 님은 한글로 글을 썼고
심사위원들이 그걸 한글로 그 책을 읽었을리가 없다
(채식주의자의 노벨수상을 바라보며)
그럼 이건 내가 그 책을 한글로 읽는 게 아니라 영어번역본을 읽어야 심사위원들의 시선을 공유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연재글 5화에서도 길게 설명한 바 있지만,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100%번역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건 큰 착각이다.
사물은 가능하지만, 문장은 불가능하다. 한 문장의 '번역률'이 90%라고 하면, 한 문단의 번역률은 80%, 한 장(chapter)의 번역률은 75%, 한 권으로 가면 70%~60% 라고 생각해왔다.
서사(Narrative)는 그 정확도를 높일 수 있겠지만 묘사(description)의 경우 그건 다른 색깔 다른 결일 수 밖에 없다.
번역가에게 수상금액의 20%를 주어도 된다고 생각할 정도로 이번 수상은 번역가 (역시) 훌륭한 것이다. 데보라 스미스(Deborah Smith)님도 이 불가능한 임무를 수상으로 이끈 공신이기 때문에 한강만큼 (어쩌면 그 이상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연재글 5화 (https://brunch.co.kr/@thewholeiceberg/82)
[10.26 다 읽고 나서 감상] https://brunch.co.kr/@thewholeiceberg/146
아마존에서 검색하니 작가명도 두 개로 나왔다.
하나는 Han Kang, 또 다른 하나는 Kang Han.
동일인물인데 헷갈린다.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라는 표시가 있는 커버의 작품은 $13.**, 표시가 없는 작품은 $10.99이다.
예전버전은 166페이지이고 새커버는 185페이지이다.
설마 본문 수정/추가가 있었을까? 추천사들이 앞에 대거 추가된 걸까?
시높시스를 보니 내가 즐길만한 장르의 소설이란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추리소설을 즐겨 읽던 초중고 시절을 거쳐, 스릴러 영화를 즐겨보던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이 있었지만 책으로 읽고 싶은 장르는 아니다. (스릴러영화는 음악이 절반이다.)
하지만 궁금했다.
아직도 궁금하다.
한글 소설을 어떻게 번역했을지.
업무개시 전 선배와 '전 영어로 읽어볼까 고민 중이에요' 라고 말해놓고 불과 5분도 안되어 충동구매를 도발하는(?) 노란버튼 [Buy now with 1-Click] 을 눌렀다.
물론 더 싼 버전으로.
노벨문화상 수상이라고 세일을 할까? 프리미엄이 붙을까 잠시 고민했지만, 자본주의의 상징적 존재인 아마존은 후자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쇄골과 어깨라인 흉부의 상반부를 찍은 사진의 커버가 좀 애매하지만...어차피 디지털 전자책이다.
(채식주의로 말라비틀어진 사람의 몸이라고 하기엔 지방과 근육이 적당히 있다.)
구매를 한 후, 글을 위해서 이미지 캡처를 하려 보니 ...작가명도 책도 달라졌다.
아침에는 분명 두 개 였던 작가명과 도서가 불과 두 시간도 되지 않아 하나로 통합되었다.
구매가능한 버전은 하나만 남았고, $14.29 가 되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영어본을 읽고 싶으신 독자분을 위해 실험을 해보았다.
내가 구매한 책의 웹페이지 링크를 다른 브라우저로 열어보니 $12.99에 팔고 있다.
(2$ 싸게 구매하시려면 여기서 구매하시면 되겠네요. 링크)
지금 글을 쓰는 이 시간에도 아마존은 열심히 커버를 바꾸며 가격을 올리고 있을지 모른다.
('작별하지 않는다'도 비싼 버전이 업데이트 중)
다른 책들도 있다.
5권이 나온다.
아마존에서 확인된 영어버전
'노벨문학상 수상작' <채식주의자> The Vegetarian: A Novel,
작별하지 않는다 -> We Do Not Part: A Novel
소년이 온다->Human Acts: A Novel
흰 -> The White Book
희랍어 시간 -> Greek Lessons
영어로 번역된 후에는 스페인어로 번역하는 게 만만하다.
스페인어나 포르투갈어나 그게 그거라는 브라질 친구들을 떠오르게 하는 포르투갈어도 보인다.
언론은 편집의 힘으로 메시지를 싣는다.
직접 언론사가 기자의 이름을 내세우며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은 한정되어 있다.
공영방송, 공영언론이 아닌 이상, 결국 광고주와 자본의 힘이 여론을 움직이기 쉽다. 서른이 넘으니 그런 게 보였다. 생각없는 독서가 사람을 바보로 만들기 쉽듯이 뉴스도 마찬가지이다.
이번에는 그게 사진에서 보였다.
인간은 시각적인 존재이다.
언론사 역시 이런 걸 알고 있다.
인터넷에서 본 작가 한강님 하면 지긋이 감으려는 듯 뜨려는 듯, 게슴츠레 라는 부정적인 뉘앙스의 언어를 사용하면 안 될 것 같은 눈매를 포착한 사진이 대부분이다.
물론 미적감각은 주관적이라 내 기준에 잘 나온 사진과 언론사 담당자 기준이 다를 수 있다.
백문이 불여일견.
내 기준에 좋은 인상의 사진들
우연히 핸드폰에서 모바일 웹브라우저에서 뜬 기사를 보니 사진 느낌이 다르다.
작가 한강 님을 비판하는 소설가 김규나 님의 의견을 '소개'하는 신문사의 사진은 다른 것 같다.
물론 언론사에서 확보한 자신들이 찍은 사진을 사용해야하기 때문에 자료 아카이브의 한계일수도 있다. 하지만 왠지 '다른 느낌'의 사진들은 예쁜 사진을 고려주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것 같다. 역시 개인적인 감상의 한계이다.
난 책을 구매하기 전의 작가의 강연들을 찾아보는 습관이 있다.
그래서인지 많은 내용들을 저자의 목소리로 듣고 나서 책을 읽게 되어 초반 몰입도가 떨어지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사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이다.
1) 주로 넌픽션을 구매하는 나에게 저자들의 주장의 근거를 '참조reference'에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문장으로 다듬어진 저자의 생각과 현장에서 구두로 전달되는 문장의 간결도와 구성이 다르다.
3) 유튜브나 팟캐스트에서 이미 많은 걸 얻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응원하는 마음으로 구매하게 된다. 빈 손으로 얻어가면 안될 것 같은 마음이다.
이번에는 호기심으로 구매했다.
언제 읽을 시간이 날지 모르지만 그렇게 작가 한강 님의 책을 충동구매하게 되었다.
책장도 마찬가지이지만 킨들의 Library에서 다 읽지 못한 책이 수두룩하다.
킨들에서 열어보니 역시 눈이 편하다.
한국인이 쓴 소설이 노벨상을 받았다.
이건 한글이 먹혔다가 아니다.
한국인이 쓴 서사/이야기/내러티브가 지금 국제사회의 기준과 맞물렸다는 의미로 해석하고 싶다. 영화 '기생충'도, 소설 '채식주의자'도 모두 훌륭한 작품일 거다. 하지만 국제사회에서의 수상은 잘 만들어졌기 때문에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글의 깊이를 담당하는 건 철학적 깊이만으로는 부족하다.
시대의 정신과 맞물려야 한다.
아마 '소수를 옹호하는' 서구사회의 진보주의 주류 문화가 '한국'이라는 문화권을 선택한 건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거다.
그리고 아마 주목해야 할 것은 봉 감독님도 한 작가님도 모두 'ㅇㅇ상 받아야지!' 라고 결심해서 쓴 게 아닐 거라는 건다.
열정을 쫓아 하다보니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하다보니
무작정 열심히만 하지 않고 - 그 이상의 것을 연구하며 탐구하며 도전을 멈추지 않았더니
이런 미래를 맞이하게 된 게 아닐까.
그런 새로운 시대에서 내가 브런치에서 읽었던 글의 작가님이 또 다른 국제적인 상을 수상하는 미래도 열리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아니, 더 나아가 폭탄이라는 발명품에 대한 죄책감이 깔려있는 서구문명이 주체하는 상 대신 아시아에서 ㅇㅇ상을 만들어서 해외 문학작품을 한글로 번역해서 상을 주면 국제사회에서 자랑스러워하는 새로운 시대도 한 번 멋대로 상상해본다.
적지 않은 비평가들이 우려를 표시하듯이 서구문화는 지금 기울고 있으니 불가능한 미래는 아닐 지도 모른다.
소위 '성공'이 사람을 어떻게 바꾸는지, 그 영향에 대해 늘 예리하게 지켜보고 있는 편이다.
정치계, 경제계는 물론 영화계, 음악계의 부와 권력을 얻은 이들 중 일부는 오만해지고 안하무인이 된다거나 어떤 이들은 극도로 허무함을 느끼고 술과 약물로 그 공허함을 채우려 한다.
한강이라는 작가는 어떨까 주목하게 된다.
의식이 있는 작가라고 생각되는 부분은 기자회견을 거절하는 소감에서 볼 수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순수한 정의감이 계속 유지될 수 있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