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30
이전전 회기에서 선생님께 서운하고 미안하다는 말을 듣고 싶은 일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선생님에게 어떻게 하면 사과를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서 겉을 빙글빙글 도는 말만 하다가 결국에는 답답해서 “선생님, 이날 너무 아프고 서운했어요. 선생님 마음이 듣고 싶어요”라고 말하기로 결심하고 회기에 들어섰다.
회기가 시작하고 선생님이 하고 싶은 말을 다 해보자고 했을 때,
나는 선생님이 나의 외상 기억을 폄하하는 느낌이 들어서 이전 회기 때 너무 아팠다고 말하면서 시작했다. 뒤이어 회기가 어떻게 아팠는지 설명하고 나는 기억의 아픔을 품고 사는 것보다 기억을 드러냈을 때 작아 보이고 폄하당한다고 느꼈을 때 더더욱 아프다고 호소했다.
그랬더니 선생님은 폄하할 의도가 없었고 폄하라는 단어는 없던 일 취급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데 없던 일로 여긴 적이 없었다고 말씀하셨다.
이때, 아 선생님이 느끼는 폄하와 내가 느끼는 폄하의 단어의 느낌에 차이가 있음을 깨달았다.
이어서 나는 내가 열심히 울면서 말하고 내가 느낀 고통을 묘사했는데도 선생님에게 그 고통의 크기가 전달이 안된 것 같아 아팠다고 말했다.
선생님께서 그날 내가 무엇을 원했고 무엇을 바랐는지 말해보라고 하셨다. 그 질문들 듣고 나는
“저는 그날 (트라우마)체인으로 너무 아팠기 때문에 선생님이 들어주고 기다려주기를 바랐어요. 그날만 아니었다면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것 받아들일 수 있었는데 그날은 너무 아팠어요.”
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비로소 선생님께서 드디어 완전한 납득을 하며 사과와 미안한 마음을 흔쾌히 전해주셨다.
아마도 내가 느낀 점을 나의 관점에서 표현하도록 이끌어주시고 나올 때까지 기다린 다음 마음을 표현해주신 듯하다.
선생님께서 앞에서 내가 호소한 세 가지 버전의 말을 분석해주셨다.
1-“선생님이 폄하해서 아팠어요”
2-“제 고통의 크기를 선생님이 작게 느낀 것 같아요”
3-“저는 선생님이 들어주고 기다려주길 바랬는데 그게 좌절됐어요”
이 세 가지 중 3번만이 주어가 나 이고 1,2번은 주어가 선생님이었다.
1, 2번으로 말하면 선생님은 자기 것이 아닌데 내가 들이밀며 이랬다고 말하며 미안함을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3번으로 말하면 내가 그렇게 느낀 것이니 사과하는 것이 맞다고 가르쳐주셨다.
그리고 두 번째로 선생님에게 꼭 말하고 싶었던 말은
전전 회기 이후 균열로 큰 저항을 일으키며 선생님에게 화낸 이후에
“선생님, 저는 선생님 떠나지 않을 건데 선생님도 저 포기하지 말아 주세요.”
라는 말이었다.
“저는 어린 시절 무언가를 잘못해도 이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는 부모가 없었고
내가 무언가를 할 때 갈피를 잡지 못해 궁금해도 물어볼 지도자가 되어줄 어른이 없었어요.
어릴 적 너무 빠르게 철이 들어 모든 것을 알아서 척척해내고 떼써본 적이 없지만,
떼도 써보고 싶고 내가 떼써도 나를 사랑해주고 지도해줄 어른이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목말라했어요. 그 목마름은 간직한 채 어른이 됐어요.
제가 선생님을 만나고 내가 하기 싫다고 해도 내가 못하겠다고 해도 나를 포기하지 않아 줄 어른이 생긴 것 같아 좋았는데
제가 화내고 저항했다고 선생님이 절 포기할 것 같은 마음이 들어 두려웠어요. 그래서 마음의 벽이 생겼어요. 그 마음의 벽 허물고 싶어서 선생님 보러 왔어요. “
이렇게 선생님께 말했다.
내 어린 시절 밥이 먹기 싫어 어른들이 보지 않는 틈을 타 커튼 뒤에 먹던 밥을 수시로 뱉을 때,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던 기억도 열어보면서. 뱉으면서도 수치스러웠고 밥이 먹기 싫은 내 마음을 알아차리고 수용해주는 어른 하나 없어 외로웠던 그 아이를 다독였다.
기억을 듣고 선생님이 내가 느낀 감정을 내가 인식하는 것조차 어려운 게 당연할 것 같다고, 여기까지 오느라 너무 수고했다고, 이제 딱딱한 ‘생 콩’ 같은 내 모습 조금 내려놔도 괜찮다고 말해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