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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인아 Jul 24. 2022

생의 소중함의 상실에서 벗어나기를

오늘의 넋두리가 내일의 소망이 되길

사람 사는 세상에서 모두들 생명은 소중하다 말한다. 갓 태어난 아기는 너무나 소중하고 사랑만 받고 자라도 모자랄 만큼 보물 같다. 하지만 갓 태어나 때 묻지 않아 희고 고운 아이가 자라 청소년이 되고 성인이 되어가는 과정, 그리고 성인이 되었을 때 갓난아기일 적의 소중함은 보존되어지는가 의문을 가져보았다. 곰곰이 생각해보아도 나의 대답은 그렇지 않다는 대답 쪽에 무게가 실린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한 생명임에는 변함은 없지만, 어떤 부모를 만났는가, 어떤 환경이 제공되었는가, 어떤 인연을 만났는가, 등등 여러 가지 요소들이 모여 그 생명이 소중히 여겨졌는가 아닌가 혹은 세상이 살아봄직한 세상으로 느껴질 수 있게 해 주었는가와 아니었는가를 결정하게 된다.


어디선가 자우림의 김윤아가 '이 세상의 어떤 아이도 인간 세상에 태어나길 원해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을 만들어내는 것은 오롯이 부모의 일방적인 욕심으로 시작되며 그렇기 때문에 부모는 이 험난한 세상에 아기가 태어나서 살아갈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어야 할 막중한 책임과 의무를 가진다'라고 말한 것을 읽은 적이 있다. 나는 이 말을 접했을 때, 뼈 아프게 공감하였고, 나는 그 책임을 이행하기에 한없이 부족한 부모를 만났다는 슬픔에 한없이 울었었던 게 기억이 난다. 여기서 말하는 부모의 책임과 의무는 단순히 아이의 의식주뿐만이 아닌, 정서적 편안함과 안녕을 포함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기성세대의 많은 부모들은 의식주가 너무 중요한 시대에 태어나 의식주만 챙겨지면 자식이 저절로 크고 본인이 잘 키웠다고 착각하는 분들이 너무나 많았다. 한 인간의 내면의 목소리는 성인이 되기 전 부모로부터 들었던 수많은 격려의 목소리, 달램의 순간, 행복한 장면들을 통해 구성이 되고, 이를 의지 삼아 성인이 되고 나서도 세상과 맞서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게 된다. 반면 20살이 되기 전에 정서적 충격 장면에서 방치당하고, 때때로 폭력에 노출되며, 부모의 언쟁을 들으며, 부모의 눈물을 보고, 감정 쓰레기통 역할을 강제당하고 살았던 사람들은 절대적인 내면의 목소리의 양이 부족하고 부재하여, 성인이 된 이후에 정서적 충격을 받았을 때, 자신의 마음을 진정시켜줄 수 있는 내재화된 자원이 없어 튀어나올 듯이 뛰는 심장과 파들파들 떨리는 몸을 감당하며 그 순간을 고통스럽게 견디며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나는 나의 부모를 볼 때면 나는 절대로 부모가 되지 않으리라 끊임없이 다짐하게 된다. 내 부모는 한없이 착했지만 무지했고, 자식을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서로의 불협화음을 숨기지 못해 결과가 처참해진 경우이다. 아이가 부모를 잃어버려 정신적인 충격을 받았지만, 울지 않는다는 연유로 괜찮냐는 한마디 물어볼 줄을 몰랐고, 부모 자신의 몸과 정신을 부지하기에 급급해 학교에서 남자아이들에게 맞고 괴롭힘 당한 딸을 돌아볼 방법도 몰랐고 돌아볼 여유도 없었다. 그렇게 마음에 묻어버린 나의 기억들은 얼어붙은 트라우마 기억이 되었고, 자잘하지만 제각기 내 마음에 생채기를 남겼던 수백 가지의 역사는 지금의 내가 재경험을 할 때마다 이유를 모르겠는 숨이 끊어질 듯한 고통을 겪게 만든다. 이리도 살아내기 힘든 생을 살아내고 있는 자신이기 때문에 다른 생이 태어나게 만드리라 상상조차 불가능하며, 생의 탄생을 간절히 기다리는 이 세상의 부모가 되기를 꿈꾸는 사람들의 마음이 참으로 궁금해진다. 아마 나는 내 부모가 보여준 가정의 형태를 기반해서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어 아무리 애를 써도 이해할 수 없으리라. 그저 여러 불행을 겪더라도 세상이 살아봄직하다는 믿음이 내재화되어 있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면서 갖지 못할 보석을 우러러보고 비통해할 뿐이다.


complex-PTSD와 이에서 파생된 우울과 불안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힘겨운 인생이지만, 생명의 신비를 마음 한가득 느끼는 기쁨보다는 생명의 무가치함이 난무하는 노동력 착취, 성폭력 범죄, 학교폭력, 지구온난화의 현장에 자석처럼 끌려 좌절과 절망을 통해 생명의 소중함을 역설적으로 체감하기를 원하는 나이지만, 이런 나의 관념들이 내가 훗날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워져 성숙해졌을 때, 삶을 이끄는 이정표가 되어주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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